‘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선진 의료기술을 익혀 몽골의 환자를 돌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칭기즈칸 후예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몽골은 유목민의 나라잖아요. 목축을 업으로 삼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만능 의료기술을 배워 사람들을 돕는 의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한 달 뒷면 몽골인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씨가 한국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 일 년이 됩니다.
몽골 유학생으로선 처음이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의학대학교 신장내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2004년에 한국으로 유학 온 지 5년 만에 이루어낸 쾌거였습니다.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저는 의사입니다.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어디 가서 공부하면 가장 적절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2000년에 의과대학 공부를 마쳤는데요, 졸업한 이후 곧바로 취직을 했지만 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웃한 러시아나 멀리 호주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다른 몽골 학생들과 달리, 오돈구아 씨는 솔롱고스, 즉 ‘무지개가 뜨는 나라’인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의 연세대학교가 1994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몽골 연세친선병원’을 설립하면서 몽골 의학계에 불기 시작한 소위 ‘한류’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의학 분야는요,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힘들게 공부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서 공부하면 일단 환자도 아시아 사람으로 비슷한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몽골인의 질병이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것과 다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갈까, 미국으로 갈까, 아니면 한국으로 갈까? 깊이 고민했습니다. ‘가장 적당한 나라는 한국이다,’ 이런 결론이 났습니다. 한국의 의학기술은 아시아에서도 인정하고 수준도 높습니다. 의학기술이 아주 앞선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몽골에 의학기술을 전수하는 데는 오히려 한국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골에서 더 배울 게 없어서 한국에 왔지만, 꿈에 그리던 유학생활은 간단치 않았습니다. 몽골어가 아닌 한국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데다 쓸 돈은 늘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모르는 한국어 단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넘기다 책을 베개 삼아 잠들기를 수백 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유배달, 피자가게 종업원 등 안 해 본 임시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과 공부를 절대 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 된 비결이 도대체 무엇일까 물어봤더니, 오돈구아 씨는 잠시 뜸을 들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장경제 체제의 전환으로 하는 수 없이 눈물의 빵을 먹어야 했던 경험 덕분이라는 겁니다.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제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할 무렵이었습니다. 몽골 경제가 가장 어려웠을 때 제가 대학생활을 보냈어요. 제일 어려웠던 점은 먹을 거였어요. 어... 정말 배가 고파 고향집에 전화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궁리 끝에 당시 한국 돈 16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20원에 파는 길거리 장사를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면 한 개에 4원의 이익이 남았는데요, 돈을 벌기 위해서 한겨울에도 바깥에서 벌벌 떨면서 서서 팔았어요. 최소한 100개를 팔아야 버스 값이 나왔죠.
오돈구아 씨는 사실 그 어렵다는 서울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바로 몽골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 의료 장비, 의약품을 포함해 모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가면 현지 의사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다며 서울대병원에서 더 공부하고 있습니다.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몽골에는 특히 기계가 없습니다. 1950년대, 1960년데 기계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최신형은 전부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겁니다. 이러다 보니 환자들이 진료차 외국으로 많이 갑니다. 사실 환자들은 제 나라에서 아프고 제 나라에서 진료 받아야죠.
아닌 게 아니라 몽골의 의료 수준은 상당히 낙후돼 있습니다. 단적으로 신부전증 치료에 필요한 혈액투석기가 전국에 걸쳐 손꼽을 정도입니다. 고가인 새 의료기기 수입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또 채식을 하지 않고 양고기, 말고기 등 육식을 즐기는 몽골 사람들 중에는 심혈관계 질환, 위장 질환, 간 질환 환자가 넘쳐나는 데도 제대로 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 결과, 몽골인의 평균 수명은 65.2세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비싼 병원비를 지급하더라도 보다 나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겠다는 의지는 날로 강해지고, 일부 부유층 인사들은 미국과 유럽, 중국, 그리고 한국으로 건너가 건강검진까지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연수 중인 오돈구아 씨 덕분에, 이 병원을 찾는 몽골의 부유층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몽골 최고위층 인사가 최근 수술을 받았고, 서울대 의료진이 울란바토르로 왕진하기도 했습니다.
선진 의료기술을 익혀 모국의 환자들을 돌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굳이 솔롱고스행을 택한 칭기즈칸의 후예, 오돈구아 씨. 그녀는 하루속히 고국에 돌아가 신장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병원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며, 오늘도 서울대병원 어디선가 인생의 계단을 향해 한 걸음 더 성큼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