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는 어떤 주제를 풀어볼까요?
정영: 남북고위급 대화가 끝나고 남북 합의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대표단은 평양에 돌아가 유감표명을 한 지뢰도발 사건에 대해 '근거 없는 사건'이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회담할 때는 분명 사과하고 돌아가서는 '근거 없는 사건'으로 표현한 것은 나름 체면을 살리기 위한 수사에 불과한데요. 앞으로 이를 김정은 위대성 업적에 어떻게 이용할지도 궁금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뢰도발 유감표명을 북한 매체가 어떻게 뒤집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3박 4일 동안 이어 달리기를 해온 남북고위급 회담이 최종 타결되고 공동 합의문이 나왔습니다. 북한이 또 관례대로 기본 내용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정영기자, 북한이 이를 어떻게 주민들에게 알렸습니까,
정영: 남과 북의 고위급 대표단이 각자 헤어진 다음 서로 다른 해석을 했는데요, 먼저 남북 고위급 접촉에 북측 수석 대표로 참석했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발표를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둘째로,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 것입니다.
황 총정치국장이 낭독한 이 부분은 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발표한 내용과 똑 같습니다. 하지만, 이 합의문을 부연 설명하는 부분에 가서는 딴 소리를 했습니다. 이것도 들어보시겠습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인 판단하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 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입니다.
정영: 남북합의문 2항 내용은 북한 노동신문 25일 자에도 원문 그대로 실렸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황 총정치국장이 딴 소리를 한 것은 아마 주민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지뢰사건은 우리 소행이 아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해왔는데, 그것을 한국에 나가서 인정하고 왔다고 하면 자기들의 체면이 안 서기 때문에 딴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회담을 하고 곧바로 올라가서 주민들을 향해서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거군요. 그러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어떻게 발표했습니까,
정영: 그것도 한번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정영: 이를 두고 남한에서는 실제로 남한 대표단이 북한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냈느냐, 아니면 양보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요, 유감과 사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최민석: 혹시 남한이 북한측을 배려해서 외교적 수사를 써서 사과를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요?
정영: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에서 보시다시피 분명 사과를 받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유감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적혀 있고, 사과라는 사전적 정의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남측은 이번 합의문에 사과라는 단어를 넣기 위해서 상당히 신경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데요, 하지만, 북한 당국자들을 배려해서 사과라는 표현보다는 유감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북한이 사과했다고 하면 완전히 북한으로서는 항복한 거나 다름 없는 거죠.
정영: 왜냐면 이 문구를 사과로 밝힐 경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리더십, 즉 지도력에 상당히 큰 타격이 되기 때문에 북한도 이를 결사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겁니다. 또 회담 당사자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김양건 비서도 돌아가면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과 대신 유감 표명이라는 단어를 넣긴 했지만, 사실상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는 게 한국정부의 해명입니다.
김관진 국가안보 실장도 이번 회담에서 논의과정이 지속되자,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북측을 압박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북한도 처음에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얼렁뚱땅 넘기려다가 남한의 강력한 요구에 이기지 못하고 지뢰도발의 주체임을 문구에 밝혔다는 겁니다.
최민석: 사실 이번 남북고위급 회담은 남한에게 상당히 유리한 환경이 아니겠습니까,
정영: 일단 이번 사건에서 남한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 한 뜻이 되었다는 겁니다. 북한의 도발에 강력 대처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하나로 모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중국도 9월3일 항일승전 70주년 행사를 코앞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은 큰 잔치를 앞두고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불쾌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남한에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입지였습니다. 그래서 남한 정부가 주도권을 쥐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때문에 일부 한국 국민들 속에서는 "북한을 제대로 항복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민석: 이번 남북고위급 대화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영: 북한 주민들은 준전시가 선포된 바로 다음 날,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의한 데 대해 상당히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번엔 제대로 한 판 붙는가부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주민들도 궁금증이 있었다는 건가요?
정영: 또 대화에 매달리니까, 어떻게 된 것인가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4일 뒤에 남북회담 결과를 들고나와 지뢰도발에 유감표명을 했다고 발표하자, 지뢰도발의 주체임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다고 설왕설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민석: 북한당국이 앞으로 이걸 어떻게 주민들에게 이해시킬 지 궁금해집니다.
정영: 북한은 김정은 우상화에 흠집이 날까 봐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나서서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기 때문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결국 과거처럼 말로만 전쟁한다고 했다가 말 전쟁으로 끝났으니 주민들이 허탈했다는 겁니다.
최민석: 북한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전쟁을 원하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
정영: 북한 주민들은 근 70년 동안 김씨 정권하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하루빨리 해방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자체 봉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고 하니까, 제발 미국이나 한국이 와서 좀 해방시켜 주기를 원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내부 주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 주민들은 제발 전쟁이라도 해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장내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북한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김정은 우상화에 이용할 지 의문입니다. 북한이 이번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할 때부터 김정은 위대성 업적을 높이 선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전당국도 이걸 어떻게 우상화로 만들어갈 지 고심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아무리 북한 정부가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해도 이제는 북한 주민들도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영기자,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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