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전번 시간에는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이 북한 간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이어서 태 공사의 망명이 북한 간부들에게 어떤 선택을 암시하는지, 그리고 북한 간부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전면부정하고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집요하게 추구하는지 이야기를 계속 나눠보겠습니다.
최민석: 정영기자, 지난 시간에 이어 태 공사의 망명이 북한 간부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정영: 전 시간에 우리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이 북한 사람들에게 '당신도 탈북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고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태공사의 망명은 북한 간부들에게 '당신들도 개혁개방을 할 수 있다" "당신들은 수령과의 끈을 끊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봅니다.
왜냐면 현재 북한 간부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하는 대로 가다가는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겁니다. 태공사의 망명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이 자녀의 미래 때문이었다는 한국언론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보도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채널 A 녹취: 북한 김정은은 최근 해외주재 외교관의 25세 이상 자녀들에 대해 본국 소환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급작스런 자녀 귀환 명령으로 인한 신변 위협이 태공사 망명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 셈입니다.
외국에서 자유로움을 보고 자란 애들이 북한의 열악한 환경에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없거니와, 또 쩍하면 끔찍하게 처형하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도 저마다 귀국을 꺼리고 있다는 겁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취재한 데 따르면 현재 대부분 북한 외교관들은 절대 북한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지난해 유럽의 어느 한 북한 대사는 작년 8월 평양을 다녀오고는 동료들에게 "절대 조국에 들어가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합니다. 왜냐면, 당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최영건 내각 부총리, 대동강 자라공장 지배인 등 100여명의 간부들이 4신 고사기관총에 맞아 처형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인민군 중장은 그 처형 장면을 보고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북한 외교관들은 한평생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했지만, 지금은 김정은은 도저히 충성할 수 없다고 치를 떨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김정은의 공포통치 아래서 살 수 없다는 게 외교관들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정영: 현재 북한의 식자층은 "우리 나라엔 미래가 없다" "과연 조선(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고 탄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민석: 굉장히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건데요. 왜요?
정영: 먼저 왜 미래가 없다고 보는가 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하는 걸 보면 구체적인 전략이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일방적인 감정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인데요,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북한이 1인 독재 하에 비상식적인 의사 결정 체계라는 점과 김정은의 성격이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위협이 현실화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간부들도 김정은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데 대해 상당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 건설된 위락시설 아파트들은 김정은의 독단적인 지시에 따라 건설된 것입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책임 있는 간부들을 처형합니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민주국가에서는 충분히 검증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습니까, 설사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이라도 민주국가에서는 4~5년만 기다리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지만, 북한 경우에는 이제 김정은의 나이가 30대이기 때문에 그가 죽을 때까지30~40년 더 통치한다고 보면 자기네는 물론 자녀 대에도 미래가 없다고 탄식하는 겁니다.
둘째로, 북한 간부들은 현재 자기네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금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펑펑 쏘면서 주변국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국은 모두 최강대국이 아닙니까,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이 나라들은 모두 세계 경제대국들이고 군사대국들입니다. 거기서 북한이 살려면 지형학적 이점을 이용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쓸데없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걸 통감합니다. 저런 식으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망하겠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외부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북한 간부들의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고위 북한 간부들은 나름 북한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겁니다. 5천년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해온 한민족이 김씨 일가 집권 70년 사이에 저렇게 황폐화 되고, 굶어 죽고 총에 맞아 죽는 암흑사회가 된 걸 통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잘사는 나라를 후대들에게 물려줄까 하고 말입니다.
최민석: 그러자면 개방하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정영: 그 개혁개방이 왜 힘든가 하면 개방하는 순간 수령체제가 무너진다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못합니다. 그래서 개혁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수령제도와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등소평도 모택동이 죽은 다음에 개혁 개방하지 않았습니까, 등소평은 모택동과 인간적으로 엮인 게 없기 때문에 모택동 사망 이후에 곧 개혁개방을 시작했습니다.
최민석: 중국처럼 집단지도체제를 하면 되는 거죠.
정영: 중국이 개혁개방을 했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지 않습니까, 중국인들의 일반 소득도 현재 연간 5~6천달러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인민이 사는 길은 개혁개방이요, 수령이 사는 길은 핵과 미사일 개발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통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 웬만한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이 과연 백두혈통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면 장성택 김경희 숙청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한 간부들은 김일성-김정일-김경희 라인을 백두혈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정일의 공식부인의 자녀가 아니라 첩의 자녀인데다, 생모인 고용희는 북한에서도 출신 성분이 천한 적대계층인 째포(재일동포)의 자녀라는 사실을 웬만한 간부들은 알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래서 김일성 주석 흉내를 내고 있군요.
정영: 김정은은 생전에 할아버지 김일성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 고위층 탈북자가 말했습니다. 왜냐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은 관계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 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저는 오히려 김정은은 김정일이 아버지인 김일성에게 알려질 까봐 꽁꽁 숨겨놓았던 아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정영: 그래서 김정은이 한때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일성이 마치 환생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30대 김일성이 했던 가르마 머리 스타일을 고집하고, 뿔 테 안경을 쓰고, 살을 찌우고, 목소리도 김일성처럼 만들었습니다.
최민석: 그리고 현재 북한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부정하지 않습니까,
정영: 며칠 전 평양에서 열린 제9차 청년동맹 대회에서 청년동맹의 명칭이 바뀌었는데요, 원래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이었던 것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바꾸었습니다.
노동당뿐 아니라, 청년동맹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 구호를 없앴습니다. 결국 북한이 건국초기에 내걸었던 -근로인민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한다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공적 목표는 사라지고, 대신 김씨 왕조국가를 건설하는- 사적 목표를 실현하는- 왕조로 변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민석: 그걸 보는 북한 간부들도 썩 좋지는 안겠군요.
정영: 그래서 북한 간부들은 이 수령제도라는 끈을 놓고 싶지만, 그 끈을 놔버리는 순간 자신들의 기득권과 자녀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수령이라는 울타리에서 딴 꿈을 꾸면서 밖을 내다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 태영호 공사를 비롯한 몇몇 고위간부들이 과감하게 그 울타리를 뛰어 넘었습니다.
최민석: 태공사의 망명이 북한 간부들에게 '당신들도 개혁 개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령의 울타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녀들에게 더 좋은 미래와 삶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단호하게 결별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봅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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