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얼마전 "잔류 일본인들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생존해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시기나 조건이 되면 본인의 의향에 따라 공개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나팔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신보가 이처럼 이례적으로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존재를 밝힌 것은 일본정부를 떠보기 위한 협상카드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즉시 분석했습니다.
잔류일본인 문제는 트럼프 정부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일본의 아베정부를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왜 북한이 갑자기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교섭 문제에 선수를 치고 나오는지 진상을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느닷없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정부간 교섭의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습니다. 그것도 북한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일본 조총련 조선신보가 보도했다는 점이 흥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정영기자, 먼저 북한이 어떻게 보도했습니까?
정영: 12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일본인 유골발굴과 확인사업에 관여했다는 '일본 연구소 상급 연구원 조희승 박사'를 인용해 "잔류일본인이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민석: 그러면 조선신보에 대해서 청취자분들에게 어떤 매체인지 잠간 설명해드릴까요?
정영: 조선신보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외 선전매체로 일본 도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일본 조총련이 운영한다고 하지만,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신보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본 조선인 60만 동포들에게 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애 등을 함양시킨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지역신문으로 출발했는데요, 하지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다수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신문은 1990년대 말까지 종이신문만 나오다가, 지금은 디지털 방식, 그러니까, 웹사이트로 기사를 올리고 있는데 처음에는 독자들이 다 들어와 볼 수 있도록 개방했다가 몇 년 전에는 회원제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구독할 수 없게 만들었는데, 조선신보 사이트에서 일본인 생존자가 있다고 보도한 것은 모름지기 일본정부에 뭔가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정설일 것 같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일부러 일본에 기반을 둔 매체에 슬쩍 정보를 흘린 것은 일본정부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거군요.
정영: 북한에서 일본과의 교섭 문제, 일본과의 관계 개선문제는 일반 북한 주민들은 알 필요가 없는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데요. 왜냐면 거기에 일본인 납치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공작원들을 보내서 10명이 넘는 일본인들을 납치해다가 대남공작 기관에서 일본어 교사로 쓴다든가, 강제로 결혼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반인륜적 범죄에 속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규탄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주민들에게도 숨겨왔습니다.
일본정부와 관계개선 과정을 주민들에게 보도하면, 그러면 주민들은 "우리 나라와 일본과 무슨 납치 문제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할 것이고, 김정은 정권에도 나쁜 인상이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일제 침략자들에게 계속 당해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같은데 일본납치 문제를 다루면 일본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감 같은 것이 확산되고 북한 정부에는 납치국가라는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북한은 대중매체에 "북일정부간 교섭이 있었다"고 짦막한 기사만 내보내고 전후 사연은 다 빼는 거지요.
최민석: 그렇군요. 그러면 북한이 먼저 "잔류 일본인 생존자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이게 왜 일본정부를 떠보기라는 거죠?
정영: 청취자분들 중에도 2년전 북일 교섭회담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2014년 7월부터 북한과 일본 정부는 북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일본에 식민지 배상금과 경제재제 완화, 외교관계개선 등을 노리고 있었고, 일본정부는 북한이 끌어간 일본인 납치자 생존 확인과 송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를 집중 요청했고, 북한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 특별조사 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했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는 국방위원회와 국가안전보위부, 보안부, 인민무력부 등 핵심기관이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이 요청하는 납치자 문제는 처리하지 않고, 북한에 생존해 있는 일본인 신상 파악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때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은 일본인들이 아직 살고 있습니다. 북한은 일본인들의 유골이나,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명단을 일본에 건넸습니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이게 아니라 납치해간 사람들의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인 납치자 12명에 대해 언제 북한에 들어갔는지, 왜 들어갔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이 납치자에 대한 자료는 건네지 않고 다른 것을 내대니까 북일정부간 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거기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장기간 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에 "잔류 일본인이 함흥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겁니다.
최민석: 그러면 북한이 여기서 뭔가를 원하는가요?
정영: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조급해하는 이유는 36년간 일제 식민지배상금을 받아내겠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일제식민지 배상금으로 약 100억달러를 받을 게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대북경제제재 고삐를 풀어야 무역을 해서 외화를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그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송이버섯과 해삼, 털게, 성게알 같은 고급 수산물을 일본에 직접 넘겨야 외화를 많이 벌텐데, 지금 일본이 경제 제재를 하기 때문에 중국에 헐값으로 넘겨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최민석: 요즘 김정은 통치자금이 턱없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외화 쓸일은 많은데 쓸 돈이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든 벌고 싶은 것이군요.
정영: 현재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유엔과 미국과 남한, 일본 등이 대북제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유엔도 결의안을 발표했고, 한미일은 모두 독자제재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북한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는데요, 이런 대북제재망에 구멍을 내야 살아 갈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개선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아주 강하게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를 내세워 일본정부와 연결하는 메신저로 쓴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 일본인 요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인 요리사로 10년 이상 북한에서 일할 때, 어린 김정은의 놀이상대가 되어주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올해 초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김정은이 자기더러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중간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는데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최민석: 그래도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김정은도 납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만 돌파구라는 게 생길수 있을 테데 말이지요.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다음주에도 왜 북한이 잔류일본인 카드를 뽑아들었는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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