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김정은의 ‘문화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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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정영: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하기로 되어 있던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친선공연이 무산된 지 나흘이 지나도록 북한 매체들은 아직까지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남웹사이트에 올렸던 기사들까지 모두 삭제했는데요. 이 두 단체가 9일 평양을 출발할 때는 요란스럽게 보도했는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아 북한 청취자 분들도 상당히 궁금해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석: 정영기자, 지난 12일 모란봉 악단이 중국공연을 중단하고 돌아간 소식, 주말 내내 세계 토픽 뉴스가 되었지요? 그런데 북한 매체가 이에 대해 보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구요?

정영: 북한은 모란봉 악단과 국가공훈합창단의 중국으로 떠날 때는 크게 보도했지요. 조선중앙통신은 8일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이 10일부터 15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을 친선 방문해 공연을 진행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중앙텔레비전은 김기남 노동당 선전비서가 평양 역을 출발하는 예술단원들을 직접 배웅했다고 보도했지요. 당시 예술단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공연이 무산되어 평양으로 돌아가는 단원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아무튼 모란봉악단 단원들에게 아주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최민석: 모란봉악단이 이번에 처음 외국공연 나갔다고 했지요?

정영: 예, 올해 초에 청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러시아에서 공연했다는 보도는 있었는데요, 모란봉악단은 외국공연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 간 단원들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외부 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무산된 후에는 웃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오랜만에 중국인들에게 자신들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사라진 겁니다.

최민석: 그런데 왜 갑자기 중국 공연이 무산됐습니까,

정영: 지난 12일 낮 12시경에 모란봉악단 단원들이 자신들이 묵었던 민쭈호텔을 빠져 나와 베이징 공항으로 가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아, 공연장으로 가서 훈련을 하겠지"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악단은 그날 저녁 7시에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국가대극원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행이 극장으로 향한 게 아니라 짐을 챙겨가지고 공항으로 가서는 오후 4시에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공연을 하기로 한 몇 시간 앞두고 아예 돌아가버린 거예요. 중국측이 황당했겠네요.

정영: 진짜 황당했던 것은 진짜 공연이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 왔던 베이징 시민들인데요, "이게 뭐야? 놀리는 거냐?"고 화가 났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원래 극장의 좌석 수는 2천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당국은 이 2천석 좌석표를 전량 다 구매해가지고 당과 국가의 지도급 간부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이게 일반 행사가 아니라 국가차원의 행사군요. 이런 게 잘못 되면 큰일이지요.

정영: 그래서 중국 간부들이 관람할 예정이었고, 혹간 표를 얻은 사람들은 아는 사람에게서 얻었거나, 암표를 구입했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표 한 장 가격이 얼마인지 아세요?

최민석: 공시가격이요? 얼마 정도 했습니까,

정영: 한국 언론이 보도한 데 따르면 암표 한 장에 중국 돈 1만위안(미화 1,500달러)이 넘었다고 합니다.

최민석: 엄청 비싼 겁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보면 슈퍼볼 티켓보다 더 비싼 겁니다.

정영: 중국에 그만큼 부자가 많다는 소리지요. 그만큼 모란봉악단 공연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기심이 높았다는 소린데요, 하지만, 공연이 무산되고 북한 악단이 돌아갔다는 소리에 베이징 시민들은 허탈해했고, 인터넷에는 북한을 욕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하는데요, 김 제1비서를 비하하는 중국 말인 '진싼팡', 즉 '김씨네 세 번째 돼지'라는 속어를 써가면서 비난했습니다.

최민석: 그런데 북한이 공연을 포기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정영: 아직까지 북한과 중국 정부가 둘 다 밝히지 않기 때문에 원인이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언론에서 나오는 보도를 보면 김정은 제1비서가 얼마 전에 평천 혁명사적지인가 찾아가서 '수소폭탄'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중국 측이 화가 나서 공연을 참관하는 중국정부 인사의 격을 확 낮췄다는 설과 모란봉악단 단원 중 2명이 망명했다는 설, 그리고, 김정은 제1비서의 옛 애인으로 알려진 현송월이 모란봉 단장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가 외부에 너무 주목을 받아서 김정은이 화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한국 국정원이 밝힌 내용인데, 중국측이 모란봉악단 공연 내용을 보다가 김정은 우상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좀 빼라고 하자, 북한이 반발해 공연을 취소하고 돌아갔다고 파악한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도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 원인과 관련해 "공작(업무)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 연결에 원인이 있다"고 전했지만, 그 '소통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중 당국이 밝히지 않으면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지 않겠냐는 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이번 공연을 김정은 제1비서가 단단히 벼루고 준비하지 않았나요?

정영: 김정은 제1비서가 아마 중국을 향해 '문화외교'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과거 중국과 미국이 '핑퐁외교'로 외교관계를 풀었다고 알려지지 않습니까. 때문에 북한도 그동안 중국과 껄끄러웠던 관계를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을 보내서 다 털어버리고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었는데, 실패한 겁니다. 김정은 제1비서도 100명이 넘는 악단을 보내서 자기가 강한 지도자임을 과시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집권 4년이 지나도록 가지 못한 중국에 가려고 했었는데, 안된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 지도부도 저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국제관례도 무시하고 막가는 김 제1비서를 좋아할 리 없을 거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예 그렇습니다. 북한이 김정은 제1비서의 위상을 띄우려고 대규모 예술단을 파견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북한의 외교적 결례가 다시 한번 증명됐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