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이모’ 둔 김정은 생모 선전 난관

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정영: 12월 24일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할머니 김정숙의 생일입니다. 이날을 맞아 북한 관영매체들이 김정숙을 대대적으로 띄우고 있는데요, 이는 김정은 제1비서가 자신의 친모인 고영희(고용희)를 전혀 소개하지 않는 것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희의 친동생 부부가 남한 언론에 등장해 탈북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김 제1비서가 자신의 친어머니를 선전하기가 더 어려워 질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석: 12월 24일은 김정은 제1비서의 할머니 생일이지요. 이날을 맞아 북한에서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정영: 12월 24일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닙니까, 이날을 맞아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명절분위기인데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12월 24일은 김정숙의 생일입니다. 매년 이날이 되면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 탄생 기념일'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정치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김정숙 제사공장 책임자의 말을 통해 김정숙을 찬양했습니다. 한번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북한중앙 TV 녹취: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 동지의 친어머니 사랑과 정은 오늘 어머님의 숭고한 염원이 꽃펴난 공장의 모습 속에 뜨겁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외 노동신문을 비롯한 매체들도 김정숙을 가리켜 '사랑과 헌신의 빛나는 귀감', '겨레의 마음 속에 영생하고 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김정숙의 올해 나이가 1917년생이니까, 지금 살아 있다면 97세, 사망은 1949년이기 때문에 서거 66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계속 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정은 제1비서는 생모에 대해 전혀 선전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최민석: 할머니도 저렇게 챙기는데, 그러면 김 제1비서가 어머니에 대해서도 선전을 해야 하지 않나요?

정영: 이미 북한의 청취자 분들도 그 이유를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김 제1비서가 친모를 인민들 앞에 선뜻 소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 귀국자 출신(재포)라는 데도 있지만, 친척이 백두혈통이 아닌 탈북자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좀 많이 걸리는 군요. 김정은이 생모를 소개하려면 그의 일가 친척을 쭉 소개해야 하는데, 탈북한 사람까지 있군요. 이거 좀 쉽지 않지요.

정영: 오늘 방송에서는 고영희 선전을 왜 못하냐를 따지기 앞서 고영숙(고용숙)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순서일듯합니다. 지난 12월 초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 부부가 남한의 탈북자 3명을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한동안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민석: 예, 언론에서 한때 화제가 되었던 소송사건이 있었지요. 북한 청취자 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영: 지난 12월 초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특이한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중년 부부가 한국의 탈북자 3명을 상대로 낸 소송인데요, 원고가 바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과 이모부 리강이라는 사람이 원고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한국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전직 북한 국가보위부 요원과 북한 전 총리의 사위, 전직 외교관 이렇게 탈북자 3명을 피고로 지목했습니다.

이유는 고영숙이 김정은의 형 김정남을 쫓아냈고,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도박하거나 성형을 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시켰다는 겁니다. 허위사실을 유포시켰기 때문에 3명의 탈북자에게 미화 6만 달러 상당을 배상하라고 청구했습니다.

최민석: 미국에 사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모가 탈북자를 고소했다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들도 미국에서 한국 텔레비전을 자주 본다는 소리네요?

정영: 이들 부부는 미국에 살며 한국 TV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즘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 탈북자들이 많이 출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탈북자들이 방송에 출연해서 근거 없는 말을 하는데 대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고영숙 부부는 한국 언론에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고영숙 부부가 미국으로 망명할 때 김정일 비자금 30만 달러를 훔쳐 가져갔다, 미국에 가서 성형수술을 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걸 봐서는 이들이 한국 TV를 자주 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겠죠.

최민석: 궁금한 게 있는데요, 고영숙 부부는 왜 미국으로 갔다고 합니까,

정영: 고영숙의 남편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스위스에 파견되어 김정은, 김여정 등 어린 조카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 김정은과 김여정이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때 이들 부부가 돌봐주었다는 겁니다.

당시 언니인 고영희가 유방암을 앓고 있었는데, 프랑스 등 병원에 가봐도 낫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영숙은 '혹시 미국에 가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언니의 병치료를 주선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고 밝혔습니다.

최민석: 만약 고영희가 동생의 주선대로 미국에 병치료 받으러 왔다면 김정은 제1비서도 미국으로 올 수 있는 확률이 있었다는 거군요. 굳이 미국으로 망명이 아니더라도 들려볼 수는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정영: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요. 하지만, 유선암 진단을 받은 고영희는 2004년 6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고영숙 부부가 미국으로 갈 당시 북한은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숨지고, 당시 고영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거덜난 경제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무서워서 외국으로 망명할 생각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에 의해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민석: 김씨, 백두혈통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북한을 버릴 생각까지 했었다는 거군요.

정영: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도 김정은과 김여정 등 아이들을 모두 스위스로 유학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북한땅에는 김정일 위원장 혼자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딴 나라로 망명할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때 남한에서 햇볕정책이 있지 않았습니까,

최민석: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김정일을 살린 셈이지요.

정영: 1998년부터 남한에서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요, 그때 남한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북한 체제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들의 전망도 나왔습니다.

최민석: 고영숙 부부가 언니의 치료를 위해서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사실이 좀 납득이 가지 않는데요,

정영: 그들은 김정일 위원장 옆에서 거의 20년을 보내며 "권력의 비정함을 느꼈다"고 밝혔는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보고, 언니인 고영희와 가까이 있는 게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망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최민석: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백두혈통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가족 중에도 탈북자가 있습니다. 이제는 탈북자들을 그만 괴롭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