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진실과 허구를 파헤쳐 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G2, 즉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지도자간에 정상회담이 진행됐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이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은 당연히 지구촌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북한 관영매체들은 후진타오(호금도) 주석의 미국 방문이 끝난 22일에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내용, 즉 "북한의 추가 도발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합의한 내용을 빼고 두루뭉술하게 원론적인 보도만 했습니다.
중앙통신은 미중 공동성명에서 밝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데 대해서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제 입맛에 맞게 보도하는 북한 언론의 아전인수식 보도 행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 청취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중 정상회담의 이모저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경제문제를 비롯해 양국 교류 정상화 확대 문제, 지역 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간 이해관계 등이 토론되었습니다.
당연히 북핵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양국 지도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대화를 촉구했습니다. 무엇보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북한 핵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북한도 평화적 핵 이용권리가 있다", "사실관계가 명확치 않다"고 북한을 감싸고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도는 아주 전향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뜨인 것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수도 워싱턴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를 맞이한 워싱턴 시내는 붉은색으로 단장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는 빨간색 드레스 옷을 입고 환영 장소에 나왔습니다. 빨간색을 특별히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 주석에게 중국어로 '환영'이라고 말을 건네는가 하면, 한참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9살 난 오바마 대통령의 딸도 후 주석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환영행사는 미국 역사상 드물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역대 미국을 방문한 중국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후진타오 주석만큼 열렬한 환대를 받은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미국이 후 주석을 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 후 주석을 환대한 이면에는 달러의 힘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통 큰 수입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45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항공기 200대를 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 중국 사람들은 돈을 잘 법니다. 번 돈을 잘 쓰지 않고 저축을 하는데, 중국 사람의 집에는 '누더기 속에도 돈이 있다'고 할 만큼 돈을 악착스레 모읍니다.
그러면, 과거 중국 지도자들의 미국 방문은 어땠을까요?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방문은 중국 지도자로서 8번째 공식방문이자, 3번째 국빈방문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의 미국 방문이 시작된 것은 1979년, 당시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선포하고 외국 방문 행선지로 미국을 택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겪은 뒤에 사회적 분열과 낙후한 경제구조를 가진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등소평의 미국 방문은 한마디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편입되려는 청탁자의 방문이었습니다. 등소평은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 개방에 대한 확신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등소평이 미국을 방문하자, 북한은 '수정주의'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등소평이 미국에 가서 여색 작전에 걸려 미국의 꼭두각시가 됐다"는 루머도 나돌았습니다.
하지만, 등소평은 과학기술협정, 문화협정, 상호 영사관 개설 등 개혁 개방에 필요한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맺은 협정이나 성명들은 모두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미중 관계가 달리지기 시작 한 것은 20년 뒤인 1997년. 장쩌민(강택민) 주석의 미국방문 부터였습니다. 등소평이 개척한 개혁 개방 노선을 따라 중국은 이미 10%대의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질풍같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택민 주석은 당시 30억 달러어치의 보잉 여객기를 구매하면서 미국을 향해 돈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 후진타오 주석은 450억 달러어치를 사겠다고 해서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번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 방문으로 미국은 약 23만5천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재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호재로 작용될 전망입니다.
결국 미국을 감동시킨 것은 중국의 경제적 위력이었습니다. 30년 전, 구걸 보따리 들고 태평양을 건넜던 중국 지도자가 이젠 미국에 와서 돈을 쓰는 강대국이 됐다는 소립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떻습니까,
인간관계에서도 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대접을 받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어디 가도 대접을 받지만, 남의 물건을 빼앗고 괴롭히는 사람은 왕따, 따돌림을 당합니다.
지금 중국의 모습을 보면 북한의 모습도 떠올리게 됩니다. 중국 지도자가 돈을 들고 태평양 건너 경쟁자를 감동시킬 때 북한은 핵무기를 들고 남한을 힘으로 위협합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어느 하나 남의 나라를 상대로 도발한 게 아니라, 같은 민족을 향해 행패를 부립니다.
중국의 모습은 강성대국이 되자면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 줍니다.
= 김정은이 아버지 모자까지 흉내 낸다?
최근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1월 23일 김정일 부자가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녹취: 북한 중앙 TV> 사진 속 김정은은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밤색 털모자를 썼습니다. 북쪽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강한 한파 때문인지, 김정은은 1월 내내 김정일과 꼭 같은 모자를 쓰고 등장했습니다.
김정일의 겨울모자는 일명 ‘헌팅캡(사냥모자)’로 통합니다. 90년대 중반 대아사가 발생하고, 극도의 체제 위기감으로 떨던 김정일이 이 모자를 쓰고 나타나 난데없이 “미국 놈을 잡는 사냥꾼 모자”라는 말을 남긴 다음부터, 이 모자는 김정일의 전용 모자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김정일 만의 특허품이 되었습니다. ‘미국 놈을 잡는다’던 사냥꾼 모자의 주인공은 그 후 수백만 명의 죄 없는 인민들만 굶겨죽였습니다. 이제 또 그 사냥꾼 모자를 쓴 김정은이 얼마나 많은 인민들을 해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김정은도 아버지 김정일을 흉내 내느라 똑 같은 사냥꾼 모자를 썼나봅니다. 인민 앞에 처음 나타날 때는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보이려고 살을 찌우고, 이제는 아버지 김정일처럼 만들려고 같은 모자를 쓰고 나옵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지요, “겉만 번지르르 할 게 아니라 속이 여물어야 한다는 말”.
= 김정일, 아프리카 재벌에게 가운데 자리 내줬다?
북한 조선중앙 텔레비전이 지난 24일 김정일 위원장이 이집트(에짚트)의 오라스콤 전기통신회사 회장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 TV보도>
김정일이 사위리스 회장을 만나 회담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북한 TV는 보도했습니다. 중앙 TV가 공개한 사진에는 사위리스 회장이 가운데 서있고, 왼쪽에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오른쪽에는 김정일이 서있습니다.
항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던 김정일이 외국의 재벌에게 중앙 자리를 내준 셈이 됐습니다. 한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오라스콤의 외자를 더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전기통신 회사 회장은 200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0대 부자’에 속한 세계적인 부자입니다.
그는 이미 2008년에 75%의 지분(북한 체신성 25%)을 가진 ‘고려링크’를 평양에 설립하고 휴대전화, 손 전화를 개통했습니다. 작년에 가입자 30만 명을 돌파할 만큼 손전화가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오라스콤 덕분에 근 20년 동안 흉물스런 거물로 서있던 류경호텔도 최근 외부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권 후 처음으로 외국인 재벌을 독대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