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북, 이집트· 튀니지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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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진실과 허구를 파헤쳐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최근 아프리카 북부 일대와 중동지역을 휩쓴 민주화 바람이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장기집권에 권력세습을 꾀하던 권력자들이 연이어 민중 시위대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미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던 벤 알리 튀니지(뜌니지. 북한 표현) 대통령이 해외로 망명했고, 이집트(에짚트)의 장기 집권자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모함마드 후쓰니 무바라크) 대통령도 축출 위기에 처했습니다.

튀니지 발 민주혁명은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이 특대 사건들을 매일같이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꼭 숨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죠.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 사실들을 아직까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매체들은 현재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북한 언론매체들이 이 중대한 사건에 침묵하고 있을까,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 언론이 전하지 않는 북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혁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일명 '재스민 혁명'으로 알려진 튀니지 사태.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의 자그마한 도시 시디 부 지드의 한 거리에서는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린 청년이 분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26)라고 부르는 한 대학 졸업자가 직장이 없어 청과물 장사를 하던 중 경찰이 단속하자, 항거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입니다.

화염에 싸인 청년은 즉시 병원에 실려 갔지만, 목숨을 건질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찼습니다.

그의 죽음은 부싯돌이 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사망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졌고, 분노한 튀니지 국민들은 1월 8일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자,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변했습니다.

바빠 맞은 벤 알리 대통령은 사태수습을 위해 "일자리 30만개를 만들겠다" "내각을 해산하고 6개월 뒤에 조기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여러 얼림 수를 썼지만, 성난 국민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시위대에 밀린 벤 알리 대통령은 일가족을 데리고 14일 밤에 몰래 해외로 도망쳤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이 결국 대통령을 해외로 내쫓은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제 튀니지 과도정부는 해외로 도망간 대통령과 일가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국제경찰)에 수배를 요청했습니다.

튀니지 사태가 터진지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시민혁명'의 불길이 이웃나라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올해 1월 25일 이집트(에짚트)에서는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습니다.

이유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권력 세습, 경제적 빈곤이었습니다. 이집트 인구 8천만 명 중 40%가 빈곤층이고, 젊은 층 가운데 절반이 직장이 없을 정도로 실업률이 높았습니다. 국민 소득은 세계적으로 137번째로 낮았습니다.

그래서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30대 미만의 청년들은 "이집트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 갈아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집트가 왜 경제적으로 어려울까,

60~70년대만 해도 이집트는 아랍 세계에서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영국과 식민지 해방을 위해 싸웠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언제나 아랍나라들 가운데서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집트는 중동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에즈 운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간 선박 통과비용으로 만도 50억 달러를 챙기고 또 하루 9만 배럴 이상 석유를 생산할 만큼 자연부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 자유와 개방을 시도하던 안와르 사다트가 암살되면서 권력을 잡은 무바라크는 개방정책을 펴겠다고 말만했지 결국 입에 침 발린 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집권 30년 동안 전체 국가를 병영 속에 집어넣고, 권력연장에만 몰두했습니다. 더욱이 이집트 국민들을 성나게 한 것은 그의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항상 적자에 시달려왔습니다. 대신 무바라크 대통령은 큰돈을 챙겼습니다. 그는 미국의 원조로 매년 근 20억 달러를 챙겼고, 수에즈 운하 관세수입으로 50억 달러, 그리고 관광수입으로 100억 달러를 벌었다고 합니다. 이 돈은 대부분 권력 유지에 이용됐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자, 시위대가 수도 카이로에 모였습니다. 바빠 맞은 무바라크 대통령도 "빈곤층을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성난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경찰 탄압에 숨졌지만,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시위대는 "무바라크는 떠나라. 게임은 끝났다"고 외칩니다.

점점 기력을 잃은 정부는 무정부 상태로 빠져듭니다. 군대들도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무바라크에 등을 돌려댑니다.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무바라크 정권이 해체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바빠 맞은 호스니 무바라크는 급기야 2일 새벽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북 아프리카 나라들의 민주혁명.

이 민주혁명은 다른 아랍 국가들에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는 지난 28일 2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알제리, 리비아, 요르단 등지에서도 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민주혁명이 북한에 던져주는 의미는 아주 큽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북한에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평안북도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는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보낸 선물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북한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기념관을 건설해주었습니다.

그런 무바라크가 이집트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주기가 껄끄러울 것입니다. 이번 북아프리카 사태를 보면서 북한당국도 속이 뜨끔할 것입니다. 북한은 이집트보다 더 심한 3대 세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북아프리카의 '도미노 시민 혁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튀니지의 지도자 벤 알리는 23년 장기 집권을 하다가 축출됐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30년을 했습니다. 이에 비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은 63년 장기 독재를 하고도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평소에 아무런 저항을 못하는 인민들을 가리켜 "참 좋은 인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좋은 인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굶주리는 북 주민, 대대손손 ‘수령복’ ‘대장복’을 누린다?

최근 북한 언론매체들이 후계자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 TV가 지난달 31일 보도한 김정일의 함흥시 용성기계연합기업소 시찰 현장에는 ‘대장복’이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 ‘대장복’이란 올해 27살 난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웠기 때문에 인민들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소립니다.

물론 인민들이 진짜로 잘 산다면 대장복을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 주민들의 살림이 어떻습니까,

하루 세끼 강냉이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 영양부족으로 발육이 부진한 어린이들, 심지어 군대가 식량이 없어 민가를 습격하러 다닙니다. 한 끼 밥을 마련하겠다고 모질음을 쓰는 그런 인민들이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가난한 이유 중 하나는 개인숭배 때문입니다. 내년 2012년에는 김일성 생일 100돌을 맞습니다. 김정일의 70돌 생일도 끼어 있습니다. 거기에 김정은의 생일까지 합치면 북한 주민들은 수령 생일만 해도 3개를 치러야 합니다.

이 명절에 진행하는 정치 행사만 하자고 해도 그 야말로 뽕 빠집니다. 속담에 “제사 덕에 이밥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3대 수령 생일날 고깃국에 이밥이라도 실컷 먹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비상식적인 3대 세습을 보노라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 전 수상 리콴유(李光耀·87)인데요, 그는 얼마 전 자기가 세상을 뜨면 자신이 살던 집을 ‘국가 성지’로 하지 말고 헐어버리라고 했습니다.

60년대에 가난하고 부패했던 싱가포르를 맡아 1인당 국민소득(GDP) 4만 달러로 만든 리관유.

그는 ‘청렴한 독재자’란 말을 들었을지언정 결코 인민의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그의 겸허함은 100년이 넘은 집에서 70년 동안 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돌아가는 인간의 참 모습은 분명 북한의 수령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