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0년 2월 19일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는 1m가 넘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111년 만에 폭설 기록을 깬 이번 눈으로 교통이 마비되는 등 혼란이 좀 있긴 했지만, 한쪽으로는 올해 농사가 또 잘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이 눈이 북한의 논밭에 내렸더라면 올해 농사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오늘 시간 시작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노동신문에 소개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냉이밥'에 대한 발언과 비날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2월 1일자 노동신문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아직 우리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들에게 흰 쌀밥을 먹이고 밀가루로 만든 빵이랑 칼제비국(칼국수)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지난 1월 9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인민들에게 강냉이밥을 먹이는 게 가슴 아프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굶주리는 자식들을 잘 먹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근심처럼 들립니다. 원래 "흰쌀밥에 고깃국"은 고 김일성 주석 때부터 바라던 것입니다. 농경시대 조선 농민의 소박한 꿈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데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반세기가 넘도록 아직 '흰쌀밥에 고깃국' 염원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남한에서는 70년대까지 북한과 경제규모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최첨단 지식경제 대국 대열에 들어서서 국민들의 물질 문화적 수준은 향상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남한 사람들은 "흰쌀밥에 고깃국"을 그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처럼 세계화의 시대에 인민들에게 강냉이밥도 먹이지 못하는 게 안쓰러운지 요즘 북한 언론들은 김 위원장이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다음에는 거의 매일같이 인민군 부대와 산업시설들을 현지지도 하는 모습을 보도합니다.
인민들이 입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김 위원장은 지난 8일과 9일 이틀째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찾아가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날론 솜을 보면서 "나는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왜 주민생활은 개선이 없을까요? 지금도 북한 인민들은 자기들이 못사는 원인이 "중간단위 간부들이 거짓보고를 해서 장군님이 모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박남기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처럼 나쁜 놈들이 있어 인민들이 못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97년도 서관히 농업담당비서가 평양시민들 앞에서 나라의 농업정책을 방해한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던 경우와 비슷하게 아마 지금 박남기 부장도 화폐개혁 파괴분자로 욕을 먹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중간 간부들이 진짜 장군님을 속인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노동당과 군, 행정이 수직종속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령이 군 관련 사건이나 크고 작은 행정업무를 일일이 검토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간부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3~4개 정보선을 통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우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일보체계가 있습니다. 이 일보체계는 각 도, 시, 군당까지 체계화되어 어느 간부가 어느 단위에 내려와서 어떤 발언을 하고 갔다는 것까지 시시각각 중앙으로 보고됩니다.
그리고 보위부 정보체계가 있습니다. 보위부 지도원들이 주민 1천 명당 40~50명의 정보원들을 거느리고 내부 민심동향과 동태를 일일이 알아내 국가보위부로 보고합니다. 이 보고 역시 지도자께로 집중됩니다.
이외에 인민보안성 안전소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안원들이 인민반장을 단위로 구역에서 제기되는 사소한 비행도 모조리 보고받아 인민보안성으로 보고합니다. 이 정보 또한 누구에게로 가는지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렇게 3중으로 된 정보선이 있어 아마 지도자는 "어느 농촌마을에서 수탉이 알을 낳았다(?)"는 정보까지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화폐개혁을 최종적으로 지시한 사람이 누구라는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북한의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인민행보에 부쩍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북한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로 판단됩니다. 화폐개혁 이후에 물가는 20배 이상 폭등하고 화폐가치는 다른 외화에 비해 10배 이상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장마당 쌀 단속을 하는 보안원들에게 인민들이 맞서 항거하는 사건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폭동이라도 일어날까봐 지도자가 직접 나서 인민을 달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소개됐습니다. 작년에 중국세관을 거쳐 북한으로 들여간 사치품이 월 평균 1천1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이 사치품 중에는 철갑상어알과 바닷가재, 고급 자동차와 TV, 컴퓨터, 비디오, 양주, 양담배 등 기호품, 가죽제품, 의류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사치품들은 모두 인민들이 먹는 일반 식재료와는 달리 최고급들입니다. 13년간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의 말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던 90년대 중반에도 김정일은 캐비어(철갑상어알), 야자상어날개탕, 자라요리 등을 먹으면서 수상스키를 즐겼다고 자기의 수기에서 썼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지도자와 특권층들은 고급요리를 먹고, 북한의 '갱생' 지프차 대신에 독일제 벤츠를 타고, '평양술' 대신에 양주를 마시고, '금강산' 려과담배 대신에 양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지도자가 값비싼 외제 음식을 먹는 반면, 한쪽에서는 인민들이 강냉이밥도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김정일이 인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말합니다. 지도자가 진정으로 인민에게 이밥을 먹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비핵화를 선언하고 국제사회, 특히 남한이 경제를 살리라고 제공하는 지원을 받으면 됩니다.
자기 체제를 위해 핵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서 자력갱생으로 인민들에게 이밥을 먹이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핵을 가지고 있으면 북한의 지도자는 평생토록 인민들에게 이밥을 먹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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