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진상을 파헤쳐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지금 중동의 리비아에서는 카다피 정권의 시위대 유혈 진압을 막기 위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제 연합군의 군사행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녹취: 현장 사운드>
17일 유엔안보리가 리비아 내전에 유엔의 군사적 개입을 승인한 결의안을 채택한 뒤, 19일 프랑스의 주도로 카다피 세력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해 그동안 리비아 사태에 침묵하고 있던 북한이 입을 열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22일 "주권국가의 자주권과 영토완정에 대한 란폭한 침해로 단죄한다"는 내용의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성명에서 미국이 리비아의 내란을 조장하고, 유엔 안보리의 권능을 도용해 무차별 무력간섭에 나섰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연합군의 카다피군 공격에 대해서는 '침략'이라고 규탄하면서도, 카다피 부대가 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 언론이 전하지 않는 리비아 공격의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녹취: 한국 언론>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이 시작되었지만, 사실 이 군사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습니다. 국제사회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전합니다. 카다피가 시민군의 마지막 거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마침내 연합군이 응징차원에서 군사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리비아 시민군의 마지막 거점인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솟구칩니다. 카다피 군대가 반군과 휴전을 하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저항세력을 공격한 겁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파리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의 긴급회의가 열렸고 군사작전이 결정됐습니다. 카다피군을 저지시키지 않으면 민간인 대량 학살극이 벌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또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지역에서 번지고 있는 민주화의 바람이 꺼질 수 있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한국 언론은 분석했습니다.
그러면 리비아에서 내전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리비아는 겉으론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500여개의 부족으로 이뤄진 다부족 국가입니다. 이 부족들 가운데 카다피가 속한 카다파, 그리고 와르팔라, 주와야 부족이 3대 부족으로, 리비아의 인구 640만 명 중 3분에 1을 차지합니다.
카다파 부족의 리더인 카다피는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정권을 탈취하고, 주요 부족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적들을 숙청하면서 철권통치를 해왔습니다. 현재 리비아 내전의 대결 구도는 카다파 대 와르팔라, 주와야 등 소수 부족입니다.
카다피는 리비아의 정치, 경제, 금융 등 주요 핵심 부분을 자기 아들들에게 넘겨주면서 리비아에 '영원한 카다피 소왕국'을 차리려 했습니다.
처음 리비아에서 일어난 시위는 카다피의 장기집권과 독재를 반대하고, 카다피가 구속한 정치범들을 석방하라는 민주화 시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족간 갈등은 내전으로 변질됐습니다.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가 갑자기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는 극한 대결로 돌변한 것은 이런 부족 간 대결심리가 폭발한 것입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과 달리 괴팍한 성미의 카다피는 자기 국민을 '쥐새끼'에 비유하면서 무차별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카다피는 땅크(탱크)와 미사일로 시위대를 공격하면서 "쥐새끼들(반군을 지칭)에겐 항복이나 도주, 두 가지 길이 있다"며 "만일 서방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성전(聖戰)을 치를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수천대의 탱크와 장갑차, 미그-23 전투기로 무장한 카다피 부대는 반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카다피의 막내아들 카미스가 이끄는 32여단은 최정예 특수부대로, 그는 반군을 향해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사살하겠다'는 살인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의 만행을 규탄하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가만있으면 우리 리비아인 다 죽어요. 오바마가 가만있으면 우린 다 죽어요"
더욱이 카다피는 자기 국민을 학살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에서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특히, 리비아에서 유혈 사태가 시작된 뒤 하루 미화 2천 달러 이상을 준다는 광고가 나면서 아프리카 각지에서 용병 수천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리비아 현지에서는 북한인 용병이 나타났다는 말도 돌았고, 북한군 고문단이 훈련시킨 짐바브웨 대통령 의 친위부대가 투입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카다피는 외화를 팔아 자기 국민을 치고 있다는 소립니다.
카디피가 보유한 금괴는 약 143톤. 미화 약 65억 달러입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 정도의 금 보유고는 카다피가 앞으로 수년간 용병에게 보수를 지급하는데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교활한 카다피는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틈을 타서 대대적인 반군 공격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왜 이런 카다피를 옹호하고 나섰을까요?
북한과 리비아의 독재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다피는 42년간 독재를 했고, 김일성, 김정일은 63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습니다. 북한은 그것도 모자라 20대의 철부지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 독재자들이 한결 같이 인민을 무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카다피는 자기 국민을 '쥐새끼'에 비유했고, 북한은 인민을 '하늘'이라고 듣기 좋게 말해놓고는 '그 하늘의 태양은 수령'이라고 인민 위에 올려놓고 김 씨 왕조를 섬기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인민들은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발이 있어도 여행할 수 없고,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수도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는 '국민의 저항권'이라는 헌법 조항이 있습니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그 복종을 거부하거나 실력행사를 통해 저항할 수 있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이유도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국민은 행동으로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떻습니까,
시위는커녕, 김 씨 왕조 가문을 시비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갑니다. 배고파 국경을 넘으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갑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리비아는 북한보다 훨씬 더 나은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리비아 사태를 지켜보면서 북한 당국자들은 핵개발 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북한에서 리비아 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리비아 사태에서 보았듯이 독재자 카다피는 자기 국민을 학살하는 데 탱크와 장갑차, 미사일을 동원했고, 나라의 자원인 외화까지 팔아 고용병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북한의 독재자들은 탱크나 미사일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핵무기까지 쏘지 않았을까 우려됩니다.
=사라진 김정일 현지지도 사진
이젠 화제를 바꿔 북한의 사진 정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서 1호 사진은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주민들이 대대손손 가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 부자가 다녀간 곳 치고 사진을 남기지 않는 곳이 없고, 또 주민들 역시 1호 사진을 찍지 못하면 못내 아쉬워합니다.
그래서 김일성 김정일은 자기와 사진 찍는 주민들에게 마치 최상의 영광을 돌려주는 것처럼 활용해왔습니다. 더욱이 김정일처럼 평생 연설을 하지 않는 지도자에겐 자신을 신격화 시키는데 더 없이 중요한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16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일이 해군 제597군부대 산하 공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하면서 김정일의 사진을 내보내지 않아 궁금증을 낳게 합니다.
중앙텔레비전은 고 김일성 주석이 1961년에 이 공장을 찾았던 사진만 한 장 공개하고 정작 주인공인 김정일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는데요, 한국의 언론은 김정일의 건강악화 때문에 비공개로 처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최근 리비아 사태 등 급박한 세계정세 속에서 칩거에 들어간 김정일의 건재를 알리기 위해 '연막보도'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신문의 지면을 늘여가면서 김정일 위원장 소개에 열을 올리던 북한 매체들이 사진을 뺀 것을 보면 뭔가 비정상이지 않습니까,
RFA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