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홍수가 쓸고 간 북 “왜 국제사회에 손 안 내밀까?”

평양에서 원산을 연결하는 도로가 유실돼 주민들이 복구작업에 나섰다.
평양에서 원산을 연결하는 도로가 유실돼 주민들이 복구작업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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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최근 북한 언론매체들이 북한의 전반적 지역을 휩쓴 홍수 피해 사실에 대해 우유부단하게 보도하고 국제사회에 긴급지원 요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북한의 전반적 지역을 강타한 무더기 비에 의한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한을 비롯한 외국의 언론매체들은 굳게 닫긴 북한의 ‘철의 장막’을 뚫고 어렵사리 취재해 북한의 홍수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있습니다.

북한 언론매체들은 외부 언론이 북한의 홍수 피해를 보도하는 것에 대해 ‘반공화국 모략책동’, ‘흑색선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북한의 홍수 피해를 잘 알고 있는 북한 언론매체들은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늑장 보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에서 첫 홍수 피해가 난 직후인 7월 23일 밤 12시에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평안북도 운산군과 자강도 지역에 200mm의 폭우가 쏟아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서 29일 밤에는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개성지역에 324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면서 홍수 피해를 입은 개성시와 함경남도 신흥군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이어 8월 5일 조선중앙통신은 구체적인 인명피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전국적으로 5천560여세대의 살림집과 350여동의 공공건물, 생산시설이 파괴 및 침수되고 1만 4천850여 정보의 농경지가 침수, 매몰, 류실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대로 5천 여세대의 살림집과 수백채의 공공건물이 파괴되고 1만 4천여 정보의 농경지가 침수되었다면 적지 않은 인명피해가 났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피해가 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까지 국제사회에 긴급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이번 홍수 피해 사실에 대해 신속하게 보도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을 했어야 했습니다. 홍수 피해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긴급 구호물자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명분이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머뭇거리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입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수해복구에 나선 주민들은 기계장비 하나 제대로 없어 삽이나, 가래, 맞들이(두 명이 짐을 나르는 도구)등 원시적인 도구를 가지고 복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사태에 집을 잃은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피해보상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장마철에 수질이 오염되면 설사병이나, 파라티푸스와 같은 각종 질병이 발생해 면역이 약한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긴급 구호지원은 지진이나, 홍수, 쓰나미(바다 해일)와 같이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을 당한 나라나 단체들이 국제사회에 직접 요청해야 받을 수 있는 구호품입니다. 만약 피해를 당한 국가가 피해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국제사회는 그 나라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북한이 과거에도 이처럼 긴급 구호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006년과 2007년에 홍수피해 사실을 신속하게 보도해 남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07년에 남한 정부는 시멘트 10만 톤, 철근 5천 톤, 트럭 80대를 비롯해 493억 원(미화 4천800만 달러)에 달하는 긴급 구호물자와 수해복구 장비를 북한에 보냈고, 유엔도 미화 2천만 달러에 달하는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아직까지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자존심’때문일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냉각되고, 최근 미국과 남한이 동서해상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기 때문에 북한은 외부와의 연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은 1995년 대홍수가 발생했던 시기와 닮았습니다. 당시 북한은 3년간에 걸치는 ‘고난의 행군’이 자연재해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수해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면 얼마든지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대사고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이른바 ‘사회주의 조선의 체면’이 깎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더욱이 남북간이 체제 경쟁을 하던 시기에 수해를 당했다고 남쪽에 손을 내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책임 속에서 북한에는 1995~97년 사이에 매해 홍수가 겹치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식량배급이 끊기자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 죽었습니다.

장사도 할 줄 모르고 배급에만 매달려 살던 충실한 노동당원 5만 명을 비롯해 북한 체제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북한이 체면을 중시했던 탓에 체제를 약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당국이 선전하는 대로 자연재해 때문에 ‘고난의 행군’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그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북한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동안, 불쌍한 인민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