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주민 물난리 겪을때 김정일은 공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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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겉과 속입니다. 최근 북한 언론매체들이 압록강물이 불어나 신의주 일대 주민들이 물난리를 겪고 있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간부들을 대동하고 예술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자연재해 현장에서 인민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외국의 지도자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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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립연극단이 새로 만든 경희극 '산울림'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영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8월 21일 북-중 국경지역의 압록강물이 갑자기 범람해 신의주와 의주군 일대가 온통 물에 잠겼습니다.


<조선중앙 TV 녹음>

“지난 19일과 20일 중국 동북지방에 예년에 없이 내린 폭우로 해서 20일 0시부터 압록강 수위가 갑자기 높아져서 신의주시 상단리, 하단리, 다지리 의주군 서호리, 어적도, 막사도가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물에 완전히 침수된 농촌 가옥들과 가까스로 구조된 피해지역 주민들이 제방 둑에 서서 물에 잠긴 자신들의 집을 참담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방영했습니다.

신의주 현지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다 잠들었던 새벽 12시에 갑자기 물이 집에 밀려들어와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면서 “목숨도 건지기 어려운데, 재산이고 뭐고 건질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말해 주민들의 재산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신의주 인근에서 곡창지대로 알려진 상단리와 하단리 등 2천458정보의 농경지가 몽땅 물에 잠기면서 농작물을 하나도 건질 수 없게 되어 내년도 식량형편도 아주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북한 언론매체들의 홍수피해 보도가 24일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23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군 산하 예술단체들의 음악무용대공연 ‘선군승리 천만리’를 관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TV 녹음>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음악무용 대공연 '선군승리 천만리'를 관람하시였습니다."

이날 김 위원장이 본 공연은 수령우상화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공훈국가합창단과 조선인민군협주단, 조선인민군군악단, 해군사령부협주단, 공군사령부협주단을 비롯해 북한군 산하 육해공군 예술단체들을 총 망라한 대규모 공연이었습니다. 공연관람에는 최영림 총리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총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쪽에서 물난리가 나서 야단인데, 지도자는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태평스럽게 예술 공연을 보았다는 소립니다. 물론 '예술 공연 사랑'은 김 위원장의 특기이자, 취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촉즉발의 전쟁위험까지 갔던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때에도 김 위원장은 여유롭게 음악을 감상하거나 예술 공연을 지도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연 관람이 취미라고 하더라도 인민들이 자연재해를 당해 울고불고 하는 마당에 지도자가 한가하게 공연을 봤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지도자도 많지만, 재해를 당한 국가 지도자가 여유롭게 음악을 감상하고, 해외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는 흔치 않습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 지도자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는 국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대지진 소식을 접한 뒤, 바로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직접 메가폰을 잡고 대중연설을 통해 숯덩이가 된 피해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즉각 재난구조를 위한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녹음은 중국 공산당 호금도 총서기와 온가보 총리가 지난 2008년 사천성에서 발생한 대지진 현장을 찾아가 재난민들을 위로하는 목소리입니다. 당시 온가보 총리는 재난 구조를 위해 헌신의 지도력을 발휘해 국민들로부터 ‘인민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올해 4월 중국 청해성에서 발생한 대지진 때는 호금도 주석이 해외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재난 현장을 찾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 지도자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을 보더라도 ‘천안함’이 침몰되었을 때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군장병들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을 지도했습니다.

지난 4월 남미에서 발생한 아이티 지진현장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찾아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에서 발생한 재해현장을 찾았다는 보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할 때는 항상 이용하던 신의주-단동 노선으로 가지 않고 자강도 만포를 경유해 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번 신의주 수해 때문에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러 갔다는 추측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자기의 셋째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뇌졸중을 앓고 있는 김 위원장이 하루 빨리 권력을 삼남에게 물려주기 위해 중국 지도자들에게 아들을 인사시키려 데리고 갔다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남한 일부 네티즌들은 홍수피해를 당한 인민을 위로해주진 못할망정 예술 공연을 보는가 하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홍수피해 현장을 피해 다니는 지도자를 무책임한 '지도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