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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 겉과 속입니다. 중국의 경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소 싫어하던 ‘개혁 개방’을 거론하며 중국을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언론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개방’ 발언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8월 30일. 김정일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중국 도문역을 넘어 남양(함북 온성군)에 들어서자, 북한 언론매체들과 중국 언론들은 그의 방중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
조선중앙TV 보도
) “김정일 위원장 동지와 호금도 주석이 27일 장춘시에서 뜨겁게 상봉해 회담하셨습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매일 저녁 정규 보도시간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성과를 크게 보도했고, 노동신문도 중국의 경제성과를 이례적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중국의 신화통신도 4박 5일간에 거친 김정일 위원장의 비밀스런 방문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개혁 개방’에 대한 김 위원장의 찬사였습니다.
(
중국 CCTV 보도
) “개혁 개방이후 중국은 신속한 발전을 이룩하여 곳곳에서 생기가 느껴집니다. 나는 이 력사의 증견자입니다. 이것은 중국 당과 정부가 제시한 사회주의 조화 사회 건설정책이 아주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언론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개방’ 발언 소식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9월 2일자 노동신문도 김 위원장의 ‘개방’ 발언 내용을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 건설성과’라고 평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면 왜 북한 언론들이 ‘개혁 개방’이라는 단어에 이처럼 인색할까요?
그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자체가 ‘개혁개방’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이를 강하게 비난한 사람은 김 위원장이었습니다.
그가 북한에서 후계자의 지위를 공식 확인받은 후인 1983년 6월 인사차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등소평, 호요방 등 중국 지도자들의 활기찬 개혁 개방 정책을 보고 돌아온 김 위원장은 비공개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제 중국 공산당에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없다. 있는 건 수정주의뿐”이라며 중국을 비난했습니다.
며칠 후 이 소식이 중국에 알려지자 등소평은 “철부지(黃嘴郞)가 조선의 운명을 쥐고 있다”며 크게 개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김 위원장은 등소평이 서거하자,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도 조문을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개혁 개방에 부정적이던 김정일 위원장이 이례적인 칭찬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개방 찬사를 쏟아낸 것은 아무래도 중국의 경제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당장 후계세습을 앞둔 상황에서 주민들의 영세한 삶을 안정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지난 5월에 이어 불과 4달 만에 중국으로 날아갔고, 마음에 없는 칭찬까지 해가면서 중국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도 이젠 무턱대고 북한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더 강하게 개혁개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지금까지 북한을 의식해 정상회담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삼갔지만, 이제는 개혁 개방을 대놓고 권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온가보 총리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건설 경험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번에 호금도 총서기는 김 위원장에게 한술 더 떠서 ‘시장구조(메커니즘)’, ‘대외협력’ 등 시장경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자력갱생도 중요하지만 경제 발전은 대외협력과 분리될 수 없다”며 개혁 개방의 요구 수준을 높였습니다.
중국의 평론가들은 중국 지도부의 이러한 설득을 두고 “북한 더러 이젠 선군(先軍) 정치를 포기하고 인민생활을 개선하려면 대외 개방에 나서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 지도부가 보기에는 “누구나 골고루 먹고 산다는 사회주의가 최소한 백성들 배만은 곯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북한은 중국에서 대규모 무상 원조를 못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2005년 중국이 대안친선유리 공장을 지어줄 때 “대규모 무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중국도 과거처럼 북한을 무턱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젠 소위 “물고기 잡는 방법을 배워준다”면서 “경제 지원을 받으려면 중국처럼 개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당장 개혁개방을 할 수도 없고, 또 최대한 버티고 싶겠지만 중국의 요구를 아예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한때 시장을 확대하고, 공장, 기업소에 자율권을 주는 등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다 “자본주의 물이 들어온다”며 그만둔 북한 지도부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