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주체 조국’의 비굴한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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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언론매체들이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한국전 참전 60돌을 맞아 양국 친선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정은 대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고 본 북한 지도부의 사대주의 근성이라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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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피바다가극단이 개작한 중국의 전통가극 `량산백과 축영대'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량산백과 축영대' 공연의 한 장면. 연합뉴스 제공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중앙TV 녹음>

요즘 북한 중앙텔레비전이 방영하고 있는 중국예술인들의 공연 모습입니다. 지난 10월 초부터 방영되는 중국텔레비전 연속극 ‘잠복’도 주민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중국인민지원군 황계광, 라성교를 기리는 특집 영상물들도 집중 방영되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들에 실리는 북중 관련 기사에는 ‘피로써 맺어진 친선’, ‘로세대 혁명가들이 손수 키워온 전통적 친선관계’라고 역사적 전통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에 대한 집착은 최근 이상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피바다 가극단’에서 재창작한 중국 전통가극 ‘량산백과 축영대’를 관람하고 크게 감탄했다고 북한 텔레비전이 보도했습니다.

<북한 중앙TV 녹음>

김 위원장은 가극을 보고 “중국 인민지원군의 조선전선참전 60돌이 되는 때 중국 동지들의 협조를 받아 또 한 편의 가극을 완성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해에도 ‘피바다가극단’에서 재창작한 중국 전통가극 ‘홍루몽’을 원자바오(온가보. 溫家寶) 중국 총리와 함께 보고 북중 친선의 돈독함을 과시했습니다.

북한에서 북중 관계가 오늘처럼 강조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한때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수정주의’를 한다”고 비난하던 북한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입니다.

최근에만도 두 편의 중국의 고전가극이 북한에서 재창작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에서 중국 가극이 창작될까,

원래 피바다 가극단은 김 위원장의 지도아래 혁명가극 ‘피바다’를 만들면서 생겨난 북한 최고의 가극단입니다. 이 가극단의 임무도 김일성 항일빨치산 시절 창작된 작품을 혁명가극으로 각색해 주민들에게 보급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극단이 중국 가극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올해에 들어서만 2차례나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5월 방중 때는 천안함 사건에 공동 대응하자고 중국에 부탁했고, 8월 방문 때는 셋째 아들 김정은의 후계세습을 허락받았습니다.

이에 중국도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엄연하게 북한 소행으로 드러났는데도 중국은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서 북한의 이름을 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 된 뒤에는 후진타오(호금도)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바로 “새로 선출된 북한 지도부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밀착되는 북중 관계를 두고 사람들은 ‘순치관계’ 또는 ‘혈맹관계’라고 말합니다. 순치관계란 이와 입술의 관계라는 말로, 이가 시리면 입술로 감싸준다는 소립니다.

그러면 북중 관계가 실제로 순치관계일까요?

중국의 모택동, 주은래, 북한의 김일성 등 과거 1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는 적어도 ‘순치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중국은 이미 1980년대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습니다. 30년 동안 초고속 성장을 이룬 중국은 지금 세계 제2의 부자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30년 전에 석탄덩어리나 까고, 물감장사나 하며 지지리 못살던 중국인들은 지금 돈주머니를 차고 서울의 명동거리에 와서 쇼핑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목표는 앞으로 2021년까지 국민 대부분이 잘사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경제성장을 하자면 안보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동쪽 변방을 지켜주는 북한을 끌어안고 가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1천400km나 되는 중국의 동쪽 변두리를 북한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대신 북한의 목적은 김 씨 왕조체제를 대대손손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핵을 만들었고, 온 나라를 군사화 했습니다. 비대칭 군사력을 유지하느라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북한은 중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북중 관계는 ‘순치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서로 이해관계로 결탁된 장사꾼의 관계입니다. 김정은 체제에 가서도 북한은 중국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현준 한국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입니다. “생필품의 90%, 식량, 원유 이런 것들이 중국에서 들어가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살 수 없지 않나요. 그리고 정치적으로 후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다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는데, 중국이라도 그렇게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가극을 만들고 북한 텔레비전이 중국 영상물을 방영하는 것도 중국 지도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또 중국 국민들의 친북 정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