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 언론의 겉과 속입니다. 얼마 전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김정일 체제 찬양과 대남선전에 이용되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소개했습니다.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장기수들은 마음에 없는 수령찬양으로 2중고를 겪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동영상 음악>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결사 옹위하자! 천만이 총폭탄 되어 결사옹위하리라”
이 영상은 올해 2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맞아 비전향 장기수들이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은정각’에서 벌인 ‘충성의 노래모임’ 장면입니다.
남한의 대북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가 최근 공개한 이 영상에는 비전향 장기수 22명이 나옵니다. 인민군 출신으로 남하했다가 45년 동안 복역했던 김선명 씨, 특히 북한에 올라가 결혼한 이재룡씨는 김정일 위원장이 ‘축복’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딸을 데리고 나와 ‘축복받은 나의 삶’을 노래 부릅니다.
이날 공연에 참가했던 장기수들의 나이는 대부분 80~90살이 넘는 고령자들이지만, 자기들보다 손아래뻘인 김정일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영원히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북한 체제 선전을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김중종씨는 “(북한에)올라가기 전에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 가봤는데, 1950년대보다 낙후돼 있었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공화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녀 봤는데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대로 기와집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 날을 기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조선중앙텔레비전에 공개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좌담회.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공개한 좌담회에서 장기수들은 “남조선에 김정일 장군님을 찬양하는 열풍이 불고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장군님을 따르거나, 또 본보기나 영상을 모시는 것이 하나의 열풍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보면 젊은이들이 장군님이 입고 다니는 잠바를 ‘김정일 잠바’라고 입고 다니고 있고 유행의 선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남한의 한 대학 벽보판에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처럼 그림이 나오면서 장기수의 발언이 이어집니다.
“대학가에 가면 큰 ‘대자보’에 상간에 장군님의 영상을 모시고, 거기에 장군님의 약력을 소상히 밝히고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이 대학의 하나의 유행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큰 백화점에 가보면 안내원들이 인민군 군복을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중앙텔레비전은 남한의 한 대형 백화점 앞에 북한군 복장을 한 마네킹이 서있는 모습을 내보내기도 합니다. 이 장기수는 남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본뜨거나, 초상휘장을 모시려는 풍조가 하나의 사회적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고 현실을 왜곡합니다.
장기수의 발언: “제가 남한의 모 대학에 갔을 때 정중히 장군님의 대형 영상을 모시고 저마다 사진을 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자기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사진을 가슴에 달고 다니면서 친한 친구들에게 기념으로 준다고 합니다.” 한때 한국 사회에는 김정일 옷차림에 대한 관심이 반짝 상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6.15정상회담 때 한국 언론들이 김정일을 가리켜 ‘통 큰 지도자’, ‘대화가 되는 지도자’라고 띄워주자, 일부 사람들 속에서 김정일의 ‘곱슬머리’ ‘잠바’ ‘키 높이 구두’에 관심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신드롬(효과)은 반짝 떴다가 사그라졌습니다. 한국에는 유명한 연예인이 한번 떴다하면 사람들이 막 열광하는 습관이 있는데, 한국 언론이 김정일을 한순간에 연예인처럼 띄워준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호금도 중국주석이나,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장소까지 잠바차림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비난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 비전향 장기수들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북한 체제의 선전도구가 되었을까,
비전향 장기수들이 한국에 있을 때 만나 본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정책연구원은 그들의 눈빛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감옥에서 나와서는 굉장히 자유롭게 있었거든요. 제가 그분들 표정을 유심히 보면서 느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약간 긴장되어 있고, 저에게 혁명이나 통일을 말씀하실 때 상당히 표정이 밝았는데, 영상을 통해서 본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판단하기로는 두 가지인데, 실상을 알 기회조차 차단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보지요. 최소한의 알 자유가 없다는 것을 뜻하니까”
이두균, 김선명 등 비전향 장기수들이 한국에 있을 때 직접 만나본 최홍재 연구원은 장기수들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들의 가슴속에 정말 큰 분노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분들은 정말 인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정말 인민을 사랑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몇 십 년 동안 감옥에서 자기 신념을 버리지 않았지요. 인민의 처참한 상황을 목도하면서 거기서 치미는 분노가 있을 것이고, 또 개념적으로 속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북한에 올라갈 당시 입었던 편한 평상복 차림은 벗겨지고, 북한에서 제공하는 단체복을 갈아입고 체제선전에 동원된 것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충성의 노래모임’도 남한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라 규칙적이고 딱딱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남쪽에서 자유로웠던 행동은 사라지고, 조직적으로 결박된 것입니다.
평양 출신 탈북자들은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2007년 대남공작 기관에서 근무하다 한국에 나온 한 평양출신 탈북자는 평양에 올라간 비전향 장기수들이 겉으론 행복해보이지만 그들 역시 말 못할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비전향 장기수들은 노동당 대남기관에서 공급해주는 부식물을 먹고 사는데 2007년 당시 대남연락소에도 후방물자가 부족해 장기수 한 가구당 돼지고기 1kg씩 공급했다고 말했습니다. 부식물 공급이 한심해지자, 장기들은 “남한의 슈퍼마켓에도 고기는 넘쳐났는데…”라며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남한의 일반 동네 상점에 나가도 고기와 달걀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데, 인민의 낙원이라는 북한에서 영웅대접을 받는 자신들도 고기를 풍족히 못 먹으니 다른 일반 주민생활은 한심하다는 말이지요.
그나마 장기수들은 북한에 올라갈 때 가지고 갔던 미국 달러를 모두 당비로 바쳤다고 합니다. 세포비서를 맡은 한 장기수가 “지금까지 (노동당)당비를 내지 못했으니, 가지고 온 달러를 당비로 바치자”고 궐기하자, 매 사람이 3천 달러씩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의사를 지냈던 한 비전향 장기수는 끝내 달러를 바치지 않아 사상비판을 받았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장기수들은 불만이 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북한당국이 써주는 대로 들고 나가 김정일 찬양을 해야 하고, 남한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인민들에게 대남 적대심리를 주기 위해 “50년대 보다 못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