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먼저 간추린 내용을 알아봅니다.
- '세계 평화의 전도사' 로 불리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일행이 현재 평양 방문 중에 있습니다. 전직 국가수반. 대통령들로 구성된 '엘더스' 그룹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 다음 주제입니다. 앞에서는 테러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북한이 뒤에서는 한국을 향해 사이버 테러를 집요하게 감행해 앞뒤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 북한이 한국에서 일어난 4.19봉기를 '반미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라고 본질을 왜곡해 선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이상 3가지 주제를 가지고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단장으로 하는 '엘더스' 그룹이 2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26일 조선중앙텔레비전도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녹취: 북한 중앙TV]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를 단장으로 하는 엘더즈 대표단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중앙텔레비전은 지미 카터 일행이 도착한 소식을 간단히 전했을 뿐, 이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엘더스' 그룹은 어떤 모임이고, 화제의 인물인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엘더스'는 영어단어 '손윗사람들'에서 따온 말로 원로라는 뜻입니다. 즉 퇴임한 전직 대통령과 국가수반들의 모임으로, 엘더스는 세계 평화정착과 인권증진을 목적으로 합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의 여든아홉 번째 생일을 맞아 공식출범한 이 모임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브룬트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회원으로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중동과 수단, 미얀마(버마) 등 세계 각지에서 민주주의와 남여 평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엘더스 그룹이 평양에 간 것은 21세기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또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하는데 기여하겠다는 의지에서 방북 길에 나선 것입니다.
이번 방북에서 핵심 화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이 과연 엘더스 그룹을 만나겠는지 입니다.
왜냐면 한반도 핵문제의 열쇠는 김 위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이미 현직을 떠난 몸이고, 또 북한에서 '저승사자'로 소문난 인물이어서 과연 김정일이 그를 만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화제의 인물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지미 카터 대통령은 북한에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1994년 북핵 사태로 전쟁전야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를 중재했던 외교가이자, 고 김일성 주석을 처음으로 만난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 알려졌는데요,
그에 대한 소문은 진실보다는 억측이 많습니다. "카터가 지나간 곳에는 전쟁과 모략, 반란이 있었다", "그를 만나 본 사람은 대부분 일찍이 죽었다"이러한 루머입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북한 사람들은 '귀신같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에서는 "카터가 모략을 꾸며서 수령님이 서거했다"는 억측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지미 카터는 누구일까요,
지미 카터는 1924년 10월 생으로 올해 87살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땅콩 농장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카터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거쳐 원자력잠수함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1962년 민주당 소속으로 조지아 주 상원의원에 선출되었고, 1970년에는 조지아주 주지사가 됐습니다. 1976년 11월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시 대통령 포드를 누르고, 39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는 재임 중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소련과의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공시킵니다. 하지만 국내정치에는 실패해 미국인들로부터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퇴임 후에 카터 센터를 설립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평화 안정에 기여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세계 분쟁지역에 뛰어 들어 평화를 중재하고, 선거 감시 활동을 벌이고, 빈곤 국가들에 집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에 핵위기가 터졌던 1994년에는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재 노력으로 카터는 2002년 10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력을 가진 카터 전 대통령이 현재 평양에 있습니다. 세계 언론은 카터 일행이 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날 수 있겠는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에 나서기 전에 김정일 부자를 만나길 희망했고, 또 북한의 가장 큰 문제인 식량지원을 호소해 북한의 관심을 끌만도 합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1994년 카터 방북 당시에도 그를 만나지 않았고, 지난해 8월에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평양 출신의 한 탈북자는 94년에 카터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에서 돌았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카터가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이 나라에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고 하는데 한 사람 더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김정일은 "난 수령을 모시는 전사이지 수령이 아니다"라고 겸양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8월 카터가 북한에 갔을 때도 김정일은 중국 방문을 핑계로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미신을 잘 믿는 김정일이 소문에 '저승사자'로 알려진 카터를 두려워하지 않냐는 의문을 낳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김정일이 엘더스 그룹을 만나 통이 크게 핵문제를 논의할 지는 두고 봐야하겠지만, 김정일도 이젠 원로급에 속하는 나이인데 '엘더스' 그룹에 가입해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봅니다.
= 앞에선 ‘반테로’, 뒤에선 ‘사이버 테러’
다음 주제입니다. 북한이 테러를 반대한다고 앞에서는 말하지만, 뒤에서는 한국을 향해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 통신은 18일 “어떤 경우에도 반테러전의 미명하에 주권국가들을 무력 침공하는 행위들이 묵인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국제 테러 유엔특별위원회에 참가한 북한 대표가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통신은 “공화국 정부는 온갖 형태의 테러와 그에 대한 어떤 지원도 견결히 반대하는 시종일관한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모든 형태의 테러를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겉으론 테러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같은 동족인 한국을 향해 각종 테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밤중에 몰래 바다로 기어들어와 천안함을 폭침하는가 하면 시퍼런 대낮에 주민들이 사는 섬에 포사격을 해댔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한국의 농민협동 조합 은행격인 농협 웹사이트를 공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SBS 뉴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농협 전산망 마비사태를 불러온 노트북에 경로가 의심스러운 중국발 인터넷주소, 즉 IP로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특히 이 IP가 북한에서 중국을 경유해 접속됐을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009년에도 한국의 청와대와 국방부, 통일부 등 정부기관을 DDoS 공격했습니다. 당시 공격 주체는 중국에 있는 북한 체신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4일 일어났던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도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이버 테러는 폭격이나 암살과 같이 행동으로 하는 테러와는 달리, 컴퓨터망을 통해 하는 테러로 막대한 금전 손실을 발생시킵니다. 특히 국가기관, 금융기관의 전산망을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줍니다.
북한이 공격대상으로 하는 금융 전산망은 군사 시설이나 정보기관이 아닙니다. 이번에 공격당한 농협은행은 3천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이용하는 거대한 민간 금융기관이었습니다.
이런 민간 기관을 파괴하기 위해 북한은 대규모 해킹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21세기는 정보전쟁”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해킹 전문 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학이 북한군 총참모부 산하 정보 전자전 대학인 미림대학인데요, 한해에 약 100명씩 ‘해킹 전사’들을 졸업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들을 중국에 내보내 아지트를 정하고, 한국의 주요 기관들에 수시로 접속해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테러 행위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당국은 이런 수재들을 뽑아가지고는 김책공대나, 미림대학 같은 곳에서 공부 시켜 남쪽을 공격하는 ‘테러분자’로 키우고 있습니다. 아까운 국가의 인재를 남의 영업이나 방해하는 도둑놈으로 키우고 있다는 소립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북한은 남쪽이 잘사는 모습에 배가 아픈 모양입니다.
= 4.19 본질 ‘반미시위’로 왜곡
다음 주제입니다. 북한 매체가 얼마 전 4.19봉기를 “반미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라고 본질을 왜곡해 선전했습니다.
이에 관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보도입니다.
[녹취: 북한 중앙TV] “4.19봉기는 남조선의 이승만 독재를 반대해 들고 일어나 싸운 반미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었습니다.”
북한의 중앙계급교양관 강사는 수십 명의 참관자들 앞에서 “장군님의 선군 영도 따라 조국통일을 기어이 앞당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4.19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남한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표를 조작하자, 청년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들고 일어나 승리한 민중 혁명입니다.
거기에 민중 시위에 참가했던 한 대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시신이 발견되면서 붙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습니다. 결국 4월 19일 대학생들이 청와대, 당시 경무대로 달려가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했고 결국 하야 성명을 받아낸 것입니다.
여기에 반미 구호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고등중학교와 대학교 교육에서도 ‘4.19봉기는 미제를 반대하고 이승만 정권을 반대해 싸운 남조선 인민들의 반미 반파쇼 투쟁’이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19봉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관련된 숨겨진 일화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민주화 운동기념사업회라는 곳에서 4.19혁명을 경험한 사람들의 구술이 공개됐는데, 거기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결심하게 된 뒷 애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송요찬 계엄 사령관의 부관으로 있던 김운용(80)씨는 “계엄사령관이 이 대통령을 찾아가 ‘시위자들에게 발포하지 않으면 사태가 수습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발포는 안돼, 국민이 원하는 게 뭔가’고 물었다”고 합니다. 송 사령관이 “대통령 하야”라고 말하자 , 이승만은 “그럼 하야 하지”라고 담담히 말했다고 합니다.
4.19봉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하지 않고, 냉정하게 사태를 수습했기 때문이라고 증언자들은 말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국민의 민심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중동의 튀니지 대통령이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도 국민의 항거에 부딪치자, 더 이상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순순히 자리를 비웠습니다.
인민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면서도 인민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3대째 권력을 세습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독재자들과는 대조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