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북, “남조선 해외 이민자도 탈남자”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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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북한 매체의 보도내용을 뒤집어 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 16일 북한 조국통일연구원에서 ‘남조선인권 백서’라는 것을 발표했는데요, 백서에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까지 모두 ‘탈남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한국의 이민자와 탈남자의 차이에 대해 미국 이민법 전문가인 전종준 변호사를 통해 알아봅니다.

- 지난 4월 20일 북한 매체는 버마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보도를 하면서도 최근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속한 변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변하는 버마의 변화, 이어지는 순서에서 알아봅니다.

첫 번째 주제입니다. 지난 16일 북한 조국통일연구원 이라는 곳에서 ‘남조선인권 백서’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백서는 “남조선에서 해외로 나간 이민자들도 사실상 남조선 사회를 저주하면서 탈출한 탈남자들”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했습니다.

요즘 탈북자문제로 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북한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하게 되자, “남쪽에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모양새입니다.

북한 백서는 “1962년부터 2007년까지 40년 동안 망명, 이민, 국제결혼, 유학 등 명목으로 남조선을 등지고 해외로 떠나간 이민자가 무려 3백만 명에 달한다”면서 “이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필사적으로 남조선을 탈출한 사실상의 탈남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외국에서 살고 싶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62년에 ‘해외이주법’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해외로 나간 이민자들은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해외 이민자 추세에 대해 미국 워싱턴 지역 이민법 전문가인 전종준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뷰 전종준 변호사]: “1950년대 보릿고개에서 춥고 배고플 때 다른 나라에 가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라고 해서 떠난 적이 있을 수 있었고요, 그리고 군사정권 시대에 정치적인 탄압으로 나갔을 수 있지만, 오늘날 해외로 나가서 살기를 원하는 이민자들은 탈남자로 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생계형 이민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뷰 전종준 변호사]: “지금은 국제화 시대, 세계화 시대, 또 세계시민을 주장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탈남자와는 구분이 되고요, 특히 또 요즘에는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해외에 나가서 더 많은 선진기술을 배우는 이민자 형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자: 미국에 오는 분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여기 와서 잘 삽니까,

[인터뷰 전종준 변호사]: “처음에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장벽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은근과 끈기가 미국사회에서 효력을 발휘해서 그 사람들이 밑바닥부터 생활터전을 마련해서 장사도 하고, 직장도 구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훌륭한 대학에도 보내고, 그런 것을 통해서 비록 자기세대에는 고생을 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녀들에게 미래를 주고 꿈을 열어주는 힘든 생활을 통해서도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탈남자와 탈북자의 경우는 어떻게 다릅니까,

[인터뷰 전종준 변호사]: “탈북자의 경우에는 춥고 배고프고, 1950년대 남한의 보릿고개를 연상하는 경제적 이유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북한 정권에 대해서 반대하고 정치적으로 박해를 반대해서 생존권을 위해서 북한을 탈출하는 그런 사람들이 탈북자라고 봅니다. 남한 사람들을 탈남자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이, 남한 사람들이 남한을 떠난다 하더라도, 설사 ‘탈남자’라고 해도 다시 돌아오면 정치적 탄압이 없기 때문에 탈남자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탈북자의 경우, 강제 북송되면 고초와 죽음까지 당하지만, 그에 비해 남한의 이민자는 처벌이나 정치적인 박해가 없기 때문에 ‘탈남자’로 표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한국에 온 이주민의 수는 약 120~140만 명에 달합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증대되고 있는데요,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필리핀 출신의 30대 여성은 외국이주민들을 대변하는 의미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또 중국이나, 방글라데시, 베트남과 같은 나라 국민들은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옵니다.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서 3년만 부지런히 일하면 아파트 한 채 산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애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만은 나라 문을 꽁꽁 닫아걸고 인민들이 굶어죽어도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굶어죽어도 북한을 부둥켜안고 애국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몰래 나오는 탈북자도 생겼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잡힌 탈북자 문제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한데, 북한이 “남쪽에도 탈남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방 택한 버마와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

근 50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미얀마, 즉 버마 군사정권이 민간에 정권을 이양한 이후 민주화의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고위 관리가 버마를 방문한 데 이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버마를 방문했습니다.

먼저 지난해 말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버마를 방문한 것은 군사정권이 집권한 1962년 이후 처음입니다.

[녹취: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미국은 버마(미얀마)의 동반자가 되길 원합니다. 더 나은 민주화를 위해 함께하길 원합니다.”

클린턴 장관은 버마 정부가 민주화와 개방 의지를 확실하게 보이려면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소수 민족 탄압을 중단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중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결과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20년간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클린턴 장관은 버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외교관계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 “미얀마 정부의 역사적인 개혁 노력에 반하는 이들에게는 제재가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버마는 어떤 역사의 길을 걸었을까요,

북한에도 잘 알려진 버마는 지난 50년간 군사정권이 집권해왔습니다.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아웅산 수치여사를 20년 동안 가택 연금시켰습니다. 하지만, 버마 군사정권이 남긴 것은 가난한 경제적 낙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저항뿐이었습니다.

특히 군 당국이 북한과 군사적으로 결탁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와 감시는 날로 심화됐습니다.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버마는 2010년 개방과 민주화를 표방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테인 세인 버마 대통령은 경제를 개방하고, 민주선거를 하는 등 개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연합은 제재를 완화하고 지원도 대폭 늘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버마 고위 관료에 대한 비자 발급을 금지시켜왔으나, 그것을 해제했고 앞으로 2년간 1억5000만 유로(약 2천300억원)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한국 정부도 이명박 대통령의 버마방문에 맞춰 연간 무상원조 규모를 300만 달러 규모에서 1천만 달러로 3~4배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통령 버마 방문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들으시겠습니다.

[녹취: KBS]: “이명박 대통령이 미얀마 국빈방문을 위해 수도 네피도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방문 당시 발생한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이후 한국 정상으로는 29년 만의 방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983년 10월 북한이 감행한 아웅산 폭탄테러 현장에도 가보았습니다. 아웅산 폭탄 테러는 북한이 아웅산 묘지를 참배하는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공작원 3명을 파견해 버마 국립묘지를 파괴한 행위입니다.

버마 정부는 아웅산 폭탄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1983년 11월 국교를 단절했고 랑군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48시간 내에 추방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버마와 다시 수교한 것은 2007년. 양국이 군사적 결탁을 강화하자, 국제사회는 핵과 미사일 거래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미국과 한국이 버마에 경제지원을 약속하면서 먼저 요구한 것은 북한과의 군사적 거래를 끊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이명박 대통령이 거둔 성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버마 정부에 탈북자 문제에 협조를 요청한 겁니다.

당시 버마에는 감옥에 갇혔던 탈북자 1명이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앞으로 버마가 탈북자문제에 협조적일 경우, 이 나라를 거쳐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탈북자들이 동남아를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데는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버마 경내로 잘 못 알고 들어갈 경우, 버마는 탈북자를 체포해 감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버마가 탈북자 문제에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만큼 탈출 통로가 넓어지게 됩니다.

결국 북한과는 멀어지고, 한국과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는 소립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동남아에 있던 우방을 하나 또 잃는 셈이 됐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