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김정일 방중 ‘007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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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진실과 거짓을 되짚어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먼저 오늘 전해드릴 간추린 내용입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오늘로 중국방문 7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한 주일 동안 나라를 비우고 해외 나들이를 갔는데도 북한 언론 매체들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 로버트 킹 미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현재 북한을 방문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매체들은 킹 특사를 소개할 때 '북한인권특사'란 직함을 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왜 뺐는지, 이상 북한 언론이 숨기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 소식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국경을 넘은 것은 지난 20일 새벽 5시경. 북한 매체와 중국 언론들이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 방중 소식은 한국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 "가장 먼저 로이터 통신은 북한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AP통신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북한의 식량난과 국제사회의 핵 폐기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고 전했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편벽한 국경마을인 남양역을 경유해 중국 땅에 들어선 김 위원장은 목단강-할빈-장춘을 순회했습니다. 할빈에서 한 호텔에 머문 것 외에는 줄곧 열차에서 숙식을 하면서 동북 3성을 돌았습니다.

또 30시간 이상 '논스톱'으로 2천km를 열차를 타고 강택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살고 있는 강소성 양주시로 달려갔습니다.

이번까지 7번째로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베이징에 들러 정상회담을 마친 뒤, 북한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간 다음에나 북한 매체들이 보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왜 김정일 위원장은 비공식 방문만 할까요?

과거 고 김일성 주석은 중국이나 소련을 방문할 때는 노동신문에 공개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중앙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중국 공산당 총서기 호요방동지의 초청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방문하게 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공개 보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비공식 방문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은둔형 지도자로 소문났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갈 때는 야밤이나 새벽을 틈타 몰래 강을 넘어가는가 하면, 돌아올 때도 해외언론의 이목을 다른 데로 집중시키고 몰래 돌아옵니다.

미국의 유명한 '007작전'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합니다. 그럼 왜 김정일이 숨어 다닐까요.

이유는 인민들이 무서워 생긴 지나친 '노파심'이라는 지적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김정일의 중국 방문 사진들은 일본 기자들과 중국 사람들이 몰래 촬영한 것입니다. 외부에서 김정일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만한 거리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미국의 정찰 위성이 김정일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암살이나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에게 관심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적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노리고 있다"느니,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위협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듯 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는 노동자, 대학생, 군인들이 동원해 김일성 연구실과 동상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적들의 파괴책동으로부터 보위한다"는 것입니다.

평양출신 한 탈북자는 김정일이 외국 방문 때마다 '아버지 없는 나라를 잘 지켜야 한다'면서 김일성 동상과 연구실 보초를 세웠다고 추억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아마도 김정일이 북한 땅에 들어서는 순간,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시였다"라고 보도할 것입니다.

<녹취: 북한중앙TV>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수십 명의 북한 기자들이 따라갔습니다. 강소성 양주시의 한 대형 할인매장 앞에서는 김정일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북한 기자들은 이렇게 찍은 사진을 가지고 가서 편집을 하고, 장중한 음악을 깔고 기록영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에서 중국인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과연 숨어 다니는 김정일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 보도>"네티즌들의 목격담이 시시각각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김 위원장의 행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글에는 김 위원장이 이른바 '뚱보'라고 지칭되는 등 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 네티즌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 때문에 기차표 시간이 뒤죽박죽되고 있고 예고 없는 교통통제로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중국 인터넷 사용자(網民)는 "독재자는 왜 숨어 다니는가, 그래도 출국방문인가, 왜 쥐새끼처럼 햇빛을 못 보는가(独裁者为什么总是要搞得神神秘秘,不就是出国访问吗,干嘛和只老鼠似的见不得光)"고 비웃었고, 또 다른 인터넷 사용자는 "북한은 세계에서 중국의 세력 내에 있는 중국의 '꼬맹이' 국가이다. 당연히 돌봐줘야지 (世界上属于中国的"势力范围"不多,是中国的"小弟",自然要照顾一下"라고 깔보고 있습니다.

자, 이젠 김정일 위원장이 왜 중국에 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외국 언론은 김정일의 방중 목적을 경제지원 요청과 김정은 후계구도 승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지지통신은 양국의 경제 협력과 핵 문제가 이번 방문의 초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밖에 김 위원장이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김정일 위원장의 최고 목표는 삼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안정적으로 물려주는데 있습니다. 내년도 강성대국을 선포하는 동시에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합니다. 김정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를 끌어내자면 선물을 듬뿍 안겨줘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구걸하러 갔다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북한은 황금평과 나선지구를 중국에 50년 동안 빌려주는 대가로 수억 위안의 돈을 받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땅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 3대 째 권력을 대물림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 개방은 뒤에 미루고, 중국이라는 큰 그림자 뒤에 붙어 연명하는 지도자를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권력의 머슴꾼'이라고 비난합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이젠 별로 기대도,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왜냐면 개방할 것처럼 말하고 돌아 와서는 '꿩 구어 먹은 자리'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은 2001년 상해에 갔을 때도 '천지개벽'이라고 말했고, 2006년 1월 광주, 주해시를 방문했을 때도 "광동성의 전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폐쇄정책만 고수했습니다.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왜 중국에 갔는지 총화도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김정일이 아무리 혼자 몰래 다니려고 해도 이 개명 천지에 어떻게 숨길 수 있겠습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두만강을 넘는 순간 그의 행적이 세상에 공개됩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김정일이 중국에 갔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아마 지금쯤 예전엔 정보 통신이 발달되지 못해 김정일이 며칠씩 중국에 가 있어도 잘 몰랐지만, 이젠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럴 바치고는 김 위원장도 이젠 차라리 인민들에게 알리고나 나라를 비우는 게 어떨까요?

= 북,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명칭 빼고 보도

다음 소식입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이 평양을 방문 중인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를 소개할 때 ‘북한인권특사’라는 직함을 빼고 그냥 인권특사라고 소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로버트 킹 인권 및 인도주의 담당 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무부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중앙텔레비전은 로버트 킹 특사를 ‘인권 및 인도주의 담당’ 미국무부 관리라고 두루뭉술하게 소개했습니다.

그러면 왜 북한 매체가 북한인권특사라는 소개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은 자기 나라에는 인권유린 같은 것이 없다고 항변해왔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진행된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제8차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체제전복’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또 한국 정치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움직임을 두고 “전쟁을 부르는 북한 인권 소동”이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북한 인권에 대해 가장 문제 제기를 많이 하는 미국의 인권담당 관리를 받아들인데 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가 평양에 간 것은 배고픔이라는 원초적인 인권유린을 당하는 주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섭니다.

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SBS>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가 24일 북한 식량평가팀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킹 특사는 오는 28일까지 북한에 머물면서,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국 국장 등을 만난 뒤, 식량 사정이 열악한 함경북도 청진 등을 둘러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북한은 식량과 외화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 관리들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감시를 받겠으니 식량을 좀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 식량이 모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년도 강성대국 잔치를 하기 위해 식량을 모으고 있다는 것입니다.

쌀을 달라고, 적대국의 인권특사를 초청하면서도 북한매체는 자기들의 모순된 행동이 주민들에게 알려질까 봐 직함까지 속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