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인민은 가뭄과 전쟁, 지도자는 유희장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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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북한 매체의 동향을 뒤집어 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 50년 만에 들이닥친 ‘왕가물’로 북한 전 주민이 총동원되어 가뭄과의 전쟁에 나섰지만, 정작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동물원과 놀이터 참관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민을 잘살게 하겠다고 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약속, 과연 지켜질지 의문이 되고 있습니다.

- 북한이 한국정부로부터 제공받은 쌀 차관을 갚아야 날짜가 한 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한국에 갚아야 할 부채를 얼마나 안고 있는지 이어지는 순서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젭니다.

50년 만에 찾아온 ‘왕가물’때문에 말라 죽는 곡식을 살리느라 북한 농민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정규 보도시간에 황해북도와 황해남도 일대의 농민들이 갈라터진 논밭에 물을 주느라 분투하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 중앙TV>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5일 “계속되는 가뭄으로 강냉이 영양단지 모 옮겨심기와 모내기가 지장을 받고 있으며, 이미 심은 밀, 보리, 감자 등 여러 농작물이 피해를 받기 시작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도 25일 “서해안 지방에 계속되고 있는 가뭄은 50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 기상수문국 관계자의 이야기입니다.

<녹취: 북한 기상수문국 관계자> “최근 우리나라 전반적 지방, 특히 서해안 지방에서 심한 가물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데다가 4월 30일 이래 온도가 제일 높고, 북쪽의 찬 기운이 내려오지 못하고….다시 말하여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부딪쳐야 하는데, 그런 조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평양에 지국을 둔 AP통신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강냉이 모들이 노랗게 말라 죽고, 밭은 거북이 잔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북한도 가물과의 전쟁에 전체 주민들을 총동원했습니다. 북한 텔레비전은 “간부들이 가뭄피해를 막기 위한 사업을 전투적으로 작전하고 완강하게 내밀어야 한다”며 “물 원천을 모조리 찾아내고 보막이와 강바닥파기를 적극 내밀어 흐르는 물을 모조리 잡아 포전(논)에 대야 한다”고 독려했습니다.

사실상 가뭄과의 전투를 선포한 셈입니다. 대북 소식통들은 중학생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밥숟가락 드는 사람들은 모두 물통을 들고 밭에 나가 물을 긷는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물이 없어 수백, 수천 미터를 이동해 강이나 개울에 나가 물을 긷는다고 하니, 메마른 하늘이 야속할 뿐입니다.

하지만, 정작 ‘가뭄과의 전쟁’터에 앞장서야 할 북한 최고 지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뭄이 한창인 지난 2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간부들을 데리고 개선청년공원 유희장과 한참 건설 중인 류경원, 인민야외 빙상장을 찾았습니다.

현지지도 대상이 민생현장이 아닌 유희장이나, 동물원과 같은 놀이장입니다.

그것도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다녀간 지 하루도 안 되어 기록영화로 만들어 신속하게 돌리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 기록영화> “우리당과 인민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중앙동물원을 ....”

이를 두고 한국 언론은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북한이 기록영화도 신속하게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작금의 김 1위원장의 행적을 보면 과연 그가 인민생활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 자체에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의 업적을 만들기 위해 그의 현지지도 시찰 소식을 전하지만, 정작 인민생활과는 동떨어진 놀이장 등 특권층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가물이 한창이던 지난 5월 9일에 김정은이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고 간부들을 질책한 곳도 만경대 유희장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북한은 온 나라가 농사에 총동원돼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낙후한 농업국가로 변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는 ‘사회주의 공업국가’란 표현을 자주 썼지만, 지금은 그때 돌아가던 공장도 가동을 멈추고, 노동자들도 할 일이 없어 농사철만 되면 농촌에 나가 농사를 짓습니다.

중학생들은 봄철만 되면 두달 동안 농촌에 나가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올해는 농민들이 배가 고파 농사를 못 짓는다고 군대를 동원해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북한은 그야말로 농업대국입니다.

대국도 농산물이 많이 나오는 농산품 대국이 아니라, 인력이 가장 많이 동원되는 농업인력 대국이란 소립니다. 이렇게 지어놓은 쌀을 군대가 날라다 먹고, 그 다음에 당간부와 보위부, 보안원들이 나눠먹는 구조로 되었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한 첫 연설에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당과 국가의 총적 목표라고 공언했습니다.

<녹취: 북한 김정은 연설>

김 1위원장의 첫 연설은 새 지도자가 인민과 한 첫 약속입니다. 올해 들어 두 차례 내놓은 노작에서도 농업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했습니다. 그러니 김정은 1위원장이 인민생활에 관심이 있다면 가뭄에 타는 농촌벌에 서있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인민생활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하고 돌아서서는 평양의 특권층이 이용하는 유희시설이나 주거단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북한의 농사가 가뭄으로 흉년이 들 경우, 김정은 체제는 출범 초기부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80세가 넘은 최영림 총리만 타들어가는 농촌 벌을 돌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중앙TV>

그러면 왜 과거엔 단독으로 보도되지 않던 총리가 경제현장을 ‘현지 요해’할까요?

이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김정은도 북한 경제 실패의 책임을 비켜가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박남기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이 화폐개혁 책임을 지고 숙청됐듯이 어차피 회생 가망이 없는 북한 경제를 맡아봐야 실패가 불 보듯 뻔 하다는 소립니다. 50년 만에 찾아온 북한의 왕가물. 인민생활을 높이겠다던 새 지도자의 약속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아버지가 남조선에 진 빚을 알까?

다음 주제입니다. 북한이 한국정부로부터 꾸어먹은 쌀 차관 대가를 갚아야 할 날짜가 한 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00년 이후 6차례 거쳐 북한이 받은 식량 지원 차관을 돌려줘야 하는 첫 날짜가 6월 7일인데요, 하지만, 북한은 이 날짜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중앙매체에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한국에 물어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지, 즉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남한 부채를 넘겨받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YTN>

북한이 한국에서 가져간 돈은 일단 1998년부터 시작됩니다. 1차 핵위기가 발발하면서 신포 지구에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짓는데 투입한 자금만 1조3천744억원, 여기에 이자 8772억원을 합치면 북한이 갚아야 할 돈의 규모는 3조 5000억원 수준입니다. 미화로 따지면 30억 달러가 훨씬 넘습니다.

거기에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해준 쌀은 모두 240만 톤, 옥수수는 20만 톤입니다. 이 식량을 남한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남한 정부도 공짜로 줄 수 없어 북한에 “10년이 지난 다음 20년 동안 원금에 이자를 더해 갚아라”고 준 것입니다.

이 식량을 돈으로 따지면 미화 7억2천만 달러 가량(약7870억원). 여기에 이자는 1억5528만달러(약1697억원)입니다. 또 2007~2008년 북한에 섬유·신발·비누 생산에 필요한 경공업 원자재 8천만 달러(약 914억 원)어치를 북한에 차관 방식으로 제공했습니다. 그것도 북한이 원금과 이자를 다해서 물어야 할 돈이 1억 달러가 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국에 이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사망했고, 이 부채는 고스란히 셋째 아들에게 권력과 함께 상속됐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돈을 갚을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문득 5월 들어 북한매체에는 ‘김정일 애국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김정일 애국주의란 ‘수령에 대한 충정의 일편단심’ ‘미래에 대한 숭고한 헌신’ 등을 요약한 거라고 합니다.

결국 한국에 수십억 달러나 빚을 지고, 후대에게 남기고 간 고인도 ‘미래에 대한 숭고한 헌신’의 귀감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