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알맹이 없는’ 김정일 방중 자랑

중국을 방문중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중국을 방문중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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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진상을 파헤쳐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먼저 오늘 보내드릴 간추린 내용입니다.

- 7박 8일간의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일 위원장 방중 성과를 북한 매체들이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김정일이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 매체만이 자축분위기여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 조선중앙통신이 근 6개월 동안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씨가 석방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로버트 킹 미국부부 북한인권 특사가 평양에 간 기회에 석방됐는데요, 왜 북한이 석방했는지, 이상 북한 언론매체의 보도 내용을 가지고 최근 북한 동향을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7박 8일 간의 중국방문을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7일 새벽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북한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는데요,

잠시 중앙텔레비전의 보도를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비공식 방문을 마치시고 사랑하는 인민들이 기다리는 조국으로 귀로에 오르시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입국한 신의주 국경역에는 후계자 김정은이 직접 마중 나가 영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중앙텔레비전을 비롯한 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의 방중 성과를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북한군 내무군 협주단 공연도 펼쳐졌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극장 관람석에 나오시자, 우렁찬 만세 환호소리를 올리면서 1만5천리의 먼 길을 오가시면서….김정일 동지를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금까지 7차례 중국을 방문했지만, 이 같은 환영행사는 처음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왜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대대적으로 선전할까요?

우선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김정은이 국경에 직접 나와 아버지를 마중한 것은 그의 조직적 수완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여론은 김정은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왔습니다. 김정일의 방중 보도가 나왔을 때도 세계 언론은 먼저 김정은이 함께 가지 않았는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김정일) 없이도 혼자서 집(북한)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들은 앞으로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써먹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일도 1984년 김일성이 소련 및 동구라파 나라들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국경까지 나가 직접 영접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과 효성이 지극하다고 떠들썩했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의 중국방문 행사를 성과적으로 조직 지도했다는 김정은 찬양 문구가 등장하는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는 후계업적이 미천한 김정은의 업적을 만들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김정은의 리더십, 즉 지도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김정일은 후계자로 준비하던 시기에 김일성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습니다. 80년대 이후부터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근 10년 동안 굵직한 행사들을 직접 챙기기도 했습니다.

노동당 6차 대회, 사로청 제7차 대회,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등 일반 행사들은 물론, 대남도발도 직접 조직 지휘해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비록 마무리를 깨끗하지 못해 드러나긴 했지만, 1983년 버마 랑군 폭발사건, 1987년도 대한항공기 KAL-858기 폭파사건 등은 김정일이 후계자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감행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어떻습니까,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후계자 수업기간이 짧을 뿐 아니라, 상당히 조급해졌습니다. 김정일의 수명이 김정은의 장래운명과 직결 된 만큼 김정은은 시간에 쫓기는 형국에 놓였습니다. 지금까지 후계과정을 2년 남짓 밟았으나, 실무나 조직 면에서는 상당한 취약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거는 김정은 등장이후 벌어진 사건들을 나열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우선 김정은이 처음 등장한 이후 북한에서는 '150일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당면한 경제문제를 풀자고 아버지가 벌였던 '70일 전투'를 흉내 내 인민들을 달달 볶았지만, 결국 경제는 더 후퇴한 맹랑한 운동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노력동원으로 안되니까, 다음에는 돈 있는 시장 세력을 잡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화폐단위를 100:1로 낮추고 새 돈을 돌렸지만, 결국 1년 반 만에 물가가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돌아섰습니다. 시장 세력을 잡겠다던 본래 취지와는 반대로 사회빈곤층만 양산시켰고, 굶어죽는 사람만 많아졌습니다.

그 다음 벌어진 사건이 천안함 폭침 사건입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김정일이 1983년도 버마의 수도 랑군에서 저질렀던 아웅산 테러와 비슷합니다. 천안함 사건도 북한 어뢰정에 의한 폭침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남북 관계는 두절됐고, 이로 인해 남한에서 들여가던 달러가 끊겼습니다.

연평도 포격 또한 김정은의 작품으로 드러나, 또 한 번의 실패를 맞았습니다. 결국 남북관계가 두절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자, 김정일은 1년 새에 3번씩이나 중국에 구걸 다니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결국 아들이 저질러놓은 일을 아버지가 수습하러 다니는 형국입니다.

그러면 김정일이 과연 중국에서 어떤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왔을까요?

북한 매체가 김정일 방중성과를 지나치게 선전하는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김정일이 이번 방중에서 경제지원을 얻어내지 못하자, 마치 성과가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 "하지만, 이례적이며 빠른 성과 홍보는 이번 방중 성과가 오히려 미진했음을 덮으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북·중 경협 특구 착공식이 난항을 겪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후계 세습에 대해 원론적인 언급을 하는 데 그치는 등 알맹이 없는 방중이었음을 드러냈다는 분석입니다"

김정일은 이번에 도문-목단강-할빈-장춘 등 동북 3성을 순회했습니다. 그가 돌아본 공장, 산업시설들을 보면 나선자유경제무역지대에 진출 가능성이 있는 대상들입니다.

그래서 한국 언론들은 김정일의 방중 목적을 경제협력에서 찾았고, 중국의 동북3성 개발과 북한의 나선지구 개발을 연계시키러 갔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중국방문을 마치는가 동시에 열기로 예정됐던 황금평 개발 착공식과 나선특구 도로착공식이 연기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어 김정일이 중국과 경협문제를 논하다가 이견이 생겼다는 관측이 뒤따랐습니다.

더욱이 의심스러운 것은 김정일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곧바로 희천발전소를 찾아가 자력갱생을 독려한 것도 그의 방중 성과가 보잘 것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녹취: 북한중앙TV> "김정일동지께서는 희천발전소건설자들이 혁명적군인정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더 높이 발휘하여 최후승리의 그날까지 선군천리마에 비약의 박차, 총공세의 박차를 끊임없이 가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서 들려주는 '초라한 선물보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력갱생으로 맞서겠다"는 오기를 부리려고 희천에 갔다는 지적입니다.

=북, 전용수 씨 석방은 전형적인 인질작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7일 “조선에 들어와 반공화국 범죄행위를 감행한 혐의로 2010년 11월 체포됐던 미국 공민 전용수가 석방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통신은 로버트 킹 미국무부 대북인권 특사가 미국정부를 대표해 유감을 표시해와 관대히 석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6개월간 북한이 억류했던 재미교포 전용수씨의 인질작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전용수 씨는 나선시에 뜨락또르(트랙터) 공장을 차려놓고 북한에 기증을 많이 하고, 또 수십 명의 북한 근로자들을 채용해 대우도 잘해주던 사람이었다고 그와 함께 일했던 중국 조선족 정 모 씨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달마다 식량 50kg씩 무상으로 주고, 계절별로 옷을 사주고, 매 사람당 인민폐로 120원이라는 월급을 주었어요”

그런데 그가 왜 북한에 체포되었을까요, 북한은 당초 그가 미국시민이라는 걸 알고 장기체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 씨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한 달에 2~3번 북한을 드나들면서 애로 되는 문제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간첩으로 잡힌 것은 바로 미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미국인들을 붙잡아 놓고 미국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관리들을 불러들이는데 재미를 단단히 들였습니다.

2009년 두 명의 미국 여기자를 억류시키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방북시켰고, 한 흑인 청년이 북한에 억류됐을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불러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은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가 평양에 간 기회에 전 씨를 석방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북한인권을 담당한 특사가 온 김에 자기들도 인권문제에 충실하다는 것을 표시한 셈입니다.

대신 북한은 미국에 쌀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자국민 보호를 잘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전례를 또 남겼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