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최홍희 창시한 태권도, 북한이 종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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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언론의 내용을 뒤집어 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지난 15일은 최홍희 전 국제태권도 연맹 총재가 사망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최홍희 전 총재의 추모행사를 방영하면서 북한이 ‘태권도의 종주국’임을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태권도의 역사, 그리고 최홍희 전 총재가 사망한 이후 국제태권도 연맹의 현 주소를 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했습니다.

지난 15일 장웅 국제태권도 연맹 총재와 여러 북측 인사들이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는 고 최홍희 선생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녹취: 북한중앙TV> “고 최홍희 선생 서거 10돌에 즈음하여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선생의 묘에 화환이 진정됐습니다.”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고 최홍희 선생이 생전에 김일성 전 주석의 극진한 배려 속에 태권도를 발전시켜 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태권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태권도 연맹(ITF)은 잘 알아도 한국에 세계태권도 연맹(WTF)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태권도(跆拳道)란 밟을 태, 주먹 권, 길 도자를 써서 한자 그대로 손과 발을 사용하여 차기, 찌르기, 막기 등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우리민족의 무예입니다.

최홍희 선생이 북한에 보급한 태권도는 ITF, 즉 국제태권도 연맹이 가르치는 태권도입니다. 이 태권도는 일본 가라테를 민족 고유의 무술로 변화, 발전시킨 것으로 보는 반면에, 한국에 보급되고 있는 태권도(WTF)는 고대시기부터 우리 민족이 써온 전통무술에 바탕을 두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국에서 태권도관을 운영하고 있는 스티브 박 관장의 말입니다.

<인터뷰: 스티브 박> “태권도하고 합기도가 생긴 지 얼마 안됐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태권도가 생긴 거지요. 국제태권도 연맹이 가르치는 것은 천지, 당근, 도산 등인데, 최홍희 관장님이 가르치던 것입니다. 그분이 외국에 나가서 캐나다와 미국도 많이 다니시면서 태권도를 세계적으로 많이 알렸지요”

ITF와 WTF 태권도는 기본 틀, 동작과 품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에 태권도가 들어간 것은 1980년대, 최홍희 총재가 북한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기 시작해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인물인 최홍희는 어떤 사람일가요?

1918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일본에 건너간 최홍희는 주오(中央)대학을 다닐 때 가라테를 익혔습니다. 1950년 중반에 한국군 군단장 등을 지내면서 군대 내에 태권도를 보급합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북한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서도 상세히 소개된 바 있습니다. 최 총재는 1966년 3월 22일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하고 총재가 됩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 문제로 갈등을 겪던 그는 1972년에 캐나다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 후 태권도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활동하던 그는 돌연 평양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1979년에 김일성 주석을 만나 지지를 약속받고 북한에 태권도를 도입합니다. 그는 북한에서 태권도 붐이 일자, 일약 영웅으로 떠받들립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최홍희가 사망하자,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고 그의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르게 하고, 그의 유해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했습니다.

한편, 1972년 최홍희 총재가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국제태권도 연맹 본거지를 토론토로 옮기자, 한국에서는 대한태권도협회(KTF) 주최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설립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의 태권도는 최홍희가 이끄는 국제태권도 연맹과 김운용 총재가 세운 세계태권도연맹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때부터 남북한의 태권도도 서로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는데요, 남한의 태권도는 체육종목이라는 느낌이 강한 반면에 북한의 태권도는 격투기와 비슷합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스티브 박 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티브 박>: “세계적으로 제일 잘 알려진 것은 세계태권도 연맹입니다. 왜냐면 그 세계태권도 연맹이 올림픽 종목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ITF가 최홍희 선생님의 국제태권도 연맹이 진짜 무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할 때 한국의 태권도는 몸통, 머리, 팔다리에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북한의 태권도는 보호대 없이 장갑과 신발만을 신습니다. 한국의 태권도는 손으로 얼굴을 가격할 수 없고 발로 공격을 하지만, 북한 태권도는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할 수 있고 손을 사용해 공격할 수 있습니다.

한편 IOC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태권도를 시범 종목으로 채택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는 정식 메달 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에는 2009년까지 189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약 680여만 명의 유단자가 있습니다.

한편 국제태권도 연맹은 2009년 기준으로 102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고 3,800만 명의 수련생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면 최홍희 총재가 사망한 다음 국제태권도 연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홍희 총재가 사망한 다음 국제태권도 연맹은 3개로 쪼개졌습니다. 한 단체는 북한에 있는 장웅 총재가 이끄는 국제태권도 연맹이고, 다른 하나는 최홍희 전 총재의 아들 최중화 총재가 새로 만든 국제태권도 연맹, 그리고 캐나다 국적의 베트남 사람이 이끄는 태권도 연맹입니다.

남한의 태권도 전문 매체인 ‘태권라인’이 보도한 데 따르면, 최홍희 총재가 2002년 위암으로 평양에서 사망하자, 국제태권도 연맹 총재를 둘러싼 갈등과 불화가 시작됩니다.

최중화 씨는 최홍희 총재가 살아있을 당시 총재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북한은 최 총재가 사망한 다음 총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작전을 폈다고 태권 라인은 밝혔습니다.

북한은 최홍희 총재가 임종을 앞두고 “장웅 IOC위원이 국제태권도연맹의 새로운 총재가 되어야 한다”, “창헌 재단도 장웅에게 맡긴다”, 자신의 “모든 유품을 북한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최홍희 총재가 생전에 “아들 최중화는 총재감이 아니다”고 부정했다고 북한은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홍희 총재가 사망할 당시 최홍희 가족들은 북한당국의 권유대로 여행을 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직접 유언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장웅에게 총재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최홍희 총재가 사망한지 100일째 되는 날, 북한은 갑자기 국제태권도 연맹 특별총회를 열고, 장웅을 총재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당시 특별총회에 참가했던 증인에 따르면 북한은 참가자들에게 장웅을 총재로 임명하는데 찬성하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특별총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고, 회의도 한국어로 진행되어 외국인들은 장웅이 총재에 임명되는 사실도 잘 몰랐다는 반응입니다.

국제태권도 연맹 정관에 따르면 특별총회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간부위원회 성원 1/3이상 참가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가능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철저히 무시됐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되자, 최홍희 총재의 아들 측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최중화 총재는 북한과 결별을 선언하고, 다른 국제태권도 연맹을 창설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 북한에 들어간 국제태권도 연맹도 둘로 갈라지게 됐습니다. 최중화 씨는 2009년 한국을 방문해 국제태권도연맹(ITF) 본부를 한국에 옮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녹취: 최중화>: “제 생각은 아무래도 종주국이 대한민국이고, 본부를 우선 대한민국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세계대회를 대한민국에서 개최하고, 그 개최권을 한국 ITF에 위임을 하고…한국을 위주로 한국이 스폰서를 하고 한국 사람들이 조직을 해서…”

부친의 한 생의 업적이 깃든 태권도 지키기에 나선 것입니다. 최홍희 전 총재도 생전에 태권도가 진정한 통합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지도자들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최홍희>: “한국의 엘리트들 특히 지식인들, 고단자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다시 진정한 태권도를 만들어놓고 죽겠다. 앞으로 이런 촉망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 오든지, 캐나다에 오든지 해서 세미나를 해서 다시 진정한 태권도의 씨를 심어야 한다. 이렇게 죽는 것이 내 꿈이다.”

그러면 북한이 이처럼 국제태권도 연맹 총재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북한이 ‘국제태권도연맹 본부국가’가 되면 모든 회원국들이 내는 회비, 관광수입비, 단증 수입 등으로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또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통해 국가의 위상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요즘 평양에 태권도 전당을 짓는다, 미국에 태권도 시범단을 파견한다면서 태권도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1980년 당시 북한이 최홍희 총재를 끌어당길 때도 앞으로 태권도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국제태권도 연맹을 지원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홍희 총재의 묘도 평양에 썼겠다, 국제태권도 연맹 총재 자리도 차지했겠다, 이렇게 되면서 북한은 요즘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재 대미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북한이 태권도를 매개로 미국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 체제를 광고하는데도 태권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대표적인 무예인 태권도가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데 대해 태권도 전문가들은 “태권도는 그냥 민족의 순수한 무술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