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주체국가’의 중국 노래 열풍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수립 62주년 기념 은하수관현악단의 '9월 음악회' 한 장면.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수립 62주년 기념 은하수관현악단의 '9월 음악회'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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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진상을 파헤쳐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먼저 오늘 전해드릴 간추린 내용입니다.

- 요즘 북한의 최고 가수들이 중국 노래에 푹 빠져 있습니다. 말끝마다 자주를 외치는 북한이 왜 중국문화를 장려하는 지 알아봅니다.

-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이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공연을 방영했습니다. '외국바람'에 들뜬 평양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이상 북한 매체가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녹취: 북한중앙 TV/은하수관현악단 음악>

"바다는 나의 고향/ 내 어릴 때 어머니 나에게 말했네/ 바다는 내 고향 나서 자란 곳/ 바다여 바다 내 삶이 시작된 곳/ 해풍과 파도는 나를 따라 다녔네"

이 노래는 지난 7월 1일 중앙텔레비전이 방영한 은하수 관현악단 가수들이 부른 중국 노래 '바다는 나의 고향'입니다. 이름 있는 가수 6명이 나와 중국 텔레비전극 '모안영'의 주제가 '모안영'을 열창합니다.

<녹취: 모안영 주제가> "상강땅이 낳은 영웅/ 몸은 오지 못했어도/ 상강땅이 낳은 영웅/ 몸은 오지 못했어도/ 만 사람이 우러르네/ 값 높은 생 영원하리./ 만 사람이 우러르네./ 값 높은 생 영원하리"

이 노래 역시 6.25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모택동 주석의 아들의 삶을 그린 노래로, 모안영은 북중 친선의 상징적인 인물로 됐습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요즘 북한 예술인들 속에서는 중국 노래를 배우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특히 은하수 관현악단 가수들 중에는 중국 노래 한 두곡쯤 부르지 못하면 축에 끼우지 못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특히 김정은의 악단으로 알려진 은하수 관현악단 가수들 속에서 중국 노래 열풍이 분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은하수 관현악단은 북한 최고 예술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한때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노래를 불렀던 전혜영, 이경숙 등 쟁쟁한 가수들이 다 모였습니다.

올해 음력설 대보름날에도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중국 대사와 중국인들을 초청해 은하수 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봤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김정일이 중국에 3번이나 가고, 황금평과 나선특구를 중국에 넘길 만큼 북중관계는 밀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체'를 외치던 북한이 왜 맥없이 중국에 치우칠까요?

현재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천해 오늘날의 천지개벽을 이뤄냈습니다.

지난 7월 1일 북한 텔레비전도 소개했듯이 중국의 발전상은 안방에서 시청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 중앙TV> "세기적 낙후와 빈궁 속에 허덕이던 대련시가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

앞으로 20~30년 뒤에는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은 북한이 중국에게 잘 보일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김정은 체제에도 폐쇄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혈맹관계'니, '동지관계'니 하면서 중국과의 공통분모 찾기에 나섰습니다. 김정일은 이번 중국 방문기간 장춘- 할빈, 강소성 양주시를 돌면서 김일성의 유적지를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모택동과 김일성간의 의리를 부쩍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대중국 외교는 중국이라는 경제대국에 붙어 어떻게 하나 자기들의 3대 세습을 인정받고, 경제지원을 받자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좀 다르지요.

중국이 오늘처럼 세계에서 힘있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구태의연한 사회주의 이론에 구속된 것이 아니라 전향적인 개혁과 개방을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중국의 성과를 사회주의 방식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완전히 편입된 상태입니다. 중국 지도부의 입장은 여전히 개혁하고 개방하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 창건 90돌 경축대회에서 한 호금도 주석의 연설입니다.

<녹취: 후진타오 중국주석 녹음> "오로지 개혁개방만이 중국을 발전시키고,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호금도 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인민들의 지지를 받자면, 정치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호금도 주석은 경제발전 과정에 발생한 빈부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떻습니까,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아들에 이르기까지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인민의 선거가 아닌 '추대'라는 명목으로 수령이 후계자를 결정한다는 구차한 논리를 펴고 있지요.

2일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김정일을 마중하기 위해 국경 역에 나온 김정은을 방영했습니다.

<녹취: 북한중앙TV>

그런데 이 사람, 김기남, 최태복 등 노동당 비서들이 김정은에게 45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김기남, 최태복 비서의 올해 나이가 각각 85세, 81세. 이제 겨우 27살 난 김정은에게 절을 하는 모습은 세상에 유례없을 왕족통치의 참담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 ‘달러사랑’ 김정일, ‘외국바람’ 막는다?

다음 소식입니다. 3일 북한 중앙텔레비전에서는 대외건설자들이 진행한 공연이 방영됐습니다.

<녹취: 북한중앙TV>

노동자 1: 여, 이 친구 외국에 처음 나오니 보고 듣는 게 모두 새로운 게구만,

노동자 2: 새롭기야 뭐,

노동자 1: 그런데 왜 그래

노동자 2: 거 조국에 있을 땐 네온등의 향기론 바람이라는 걸 말로만 들었는데 여기선 사방 휩쓰는 만요.

노동자 1: 그럼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다 못쓰게 만들지. 자, 눈 귀 배리지(버리지) 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고…

“우리는 계급투쟁의 최전방에 서있다”는 제목의 선동시극에서는 외국에 처음 파견된 듯한 노동자가 현란한 네온등 불빛을 신기해하자, 한 나이 지숙한 노동자가 빨리 일을 해서 한 푼이라도 벌자고 재촉합니다.

노동자 2: 나왔던 김에 좀 더 쉬고 가자요.

노동자 1: 영식이 우리가 왜 이국땅에 나왔어? 조국과 가정을 뒤에 두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노동자 2: 한 푼이 라도요? 충석 동지, 같은 말이래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노동자 1: 영식이 난 제일 기쁠 때가 고국 음식을 마주하거나 저렇게 어지러운 음악을 들을 때보단 일을 많이 해서 한 푼, 한 푼 차곡차곡 쌓을 때가 제일 기쁘더구먼.

나이 지숙한 노동자가 한 푼, 두 푼이라는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동료 노동자들은 “사상이 변질됐다”고 비판을 들이댑니다.

노동자 2: 충석동지! 충석동진 이젠 외국에 여러 번 나오다보니 변했어요!

노동자 1: 뭐, 변했다고!

노동자 3: 그래 동문 늘 봐야 하나의 일감을 두고 돈을 먼저 생각하는데, 그래 부끄럽지도 않나?

노동자 4: 지금 우리 주위엔 총을 든 원수도 없고, 채찍을 든 착취계급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내부로 부터 허물어뜨리려는 더 위험한 무기가 있소, 그 무기가 뭔지 알아. 바로 저 새 금이야,

노동자 1: 우리 머리에 자본주의 쉬가 쓸어 조국에 돌아가면 가정과 친척 친우들 머리에 쉬가 쓸게 되고 나중에 우리 사회주의 제도가 내부로부터 변질 와해된다는 걸 모른단 말이예요… 에이….

공연에 출연한 노동자들은 번쩍 거리는 네온등이 부럽지 않고, 달러의 유혹도 두렵지 않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평양 사람치고 달러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선 대외건설총국부터 살펴봅시다. 이 총국은 ‘조선대외건설총회사’라는 외화벌이 회사를 만들어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에 호텔, 도로, 공항을 건설을 해주고 돈을 벌어들입니다.

이 회사는 노동당 39호실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번 돈은 고스란히 노동당 39호실 계좌로 흘러들어갑니다. 노동당 회사가 외국 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은 직접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돈은 어디로 가지요?

바로 김정일의 통치자금으로 전용됩니다. 그러면 김정일은 그 돈을 어떻게 씁니까, 한대에 100만 달러나 하는 방탄용 벤츠 승용차를 사고, 호화 요트를 구입하는데 사용합니다.

대신 북한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매달 상품권을 줍니다. 북한에 돌아가서 어느 상점에 가면 그 상품권만큼 물건을 사라는 것이죠. 이것도 상점에 상품이 떨어지면 말짱 꽝입니다.

외국에 나간 건설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달러를 벌기 위해 애를 씁니다. 몰래 도망쳐 남의 집 청소, 미장, 땅 파기 등 삯일을 해주고 용돈을 법니다.

잘하면 하루에 미화 100달러도 벌어본 적이 있다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동원됐던 한 탈북자는 말했습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평양 사람들 속에서는 “외국에 나가자”는 구호가 나돌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어봐야 벌이도 안 되고, 물가는 오르고 가망이 없어 밖에 나가자는 소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이 인력을 수출하던 나라들에서 요즘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리비아, 이집트 나라 국민이 들고 일어나 독재자들을 내쫓고 있습니다.

북한이 난데없이 대외건설자들의 공연을 조직한 것을 보면 요즘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가 무서운 모양입니다. 얼마 전 김정일도 대외건설자들의 공연을 봤다고 보도됐습니다.

달러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도 노동자들이 벌어온 달러를 쓰는 사람이 인민들에게 달러가 나쁘다고 선전하면 거기에 공감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