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진실을 알아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소식을 이례적으로 보도하면서도 그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정작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전 세계가 장군님 열풍에 휩싸였다"고 난데없는 찬양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 시간에는 북한 매체가 전하지 않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국경을 넘은 지난 20일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이례적으로 그의 방러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녹취: 북한TV>
하지만, 북한텔레비전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밝히지 않으니 추측만 난무하는데요, 이제부터 김정일의 방러 목적에 대한 각국 언론의 반응을 놓고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한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목적을 경제 지원 요청에 초점을 맞췄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YTN>"이번 김정일 위원장 방러에서는 러시아와 북한, 한국을 잇는 가스관 부설 문제가 합의될지 관심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1일(현지시간)으로 뉴욕 타임스(NYT)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약 48조m³(입방미터).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 풍부한 천연가스를 한국과 일본 등 한반도 지역으로 수출하기 위해,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건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최대 석유 가스 회사인 가즈프롬은 지난 2008년에 매년 100억m³의 가스를 한국에 수출하려다가 매듭을 짓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가운데 끼어 있기 때문인데요, 북한은 이 가스관 부설을 허락하는 대가로만 매년 1억 달러를 거저 챙길 수 있습니다. 다음은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풀기 위해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 "북한은 내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의 5·24조치 이후 수입원이 차단되면서 전력난이 가중된 상태로, 첫 행선지로 수력발전소를 찾은 이유도 잉여 전력의 대북 송전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정일이 러시아 방문 첫 일정으로 아무르주(州)의 부레야 수력발전소를 방문한 것도 전력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입니다.
극동 최대 규모의 부레야 수력발전소. 언제 길이가 810m, 언제 높이가 140m나 되는 이 발전소의 전력 생산 능력은 210만 KW, 북한 수풍발전소의 약 3배에 달합니다. 러시아는 부레야 발전소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도 북한을 통해 남한과 일본 등으로 수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북한이 가운데 끼어 있어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러시아는 이 사업을 실현시키기 위해 몇 년 동안 노력했지만, 북한을 통과해야 하는 송전선의 안전문제, 사업비 확보 문제 등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부레야 발전소 측도 "잉여전력을 전력부족으로 고생하는 북한에 수출할 여력이 있다"고 이미 수차례 밝혔기 때문에 김정일이 결단만 하면 북한의 전력난을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김정일도 21일 부레야 발전소를 방문하고, "부레야 자연을 정복한 로씨야 인민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감상글을 남겼습니다.
이밖에 지난 2000년 초부터 거론돼오던 한국-북한-러시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사업도 진전을 보일지 관심사입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이 중국에 치우쳐오던 북한 외교를 러시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몽드'는 23일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중국만으론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러시아로 다원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올해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연이어 방문한 속내는 무엇일까요?
북한은 내년도를 '강성대국 원년'으로 정하고 경제건설에 주력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습니다.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자력갱생만으론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외부 지원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당장 김일성 생일 100돌을 앞두고 있지만, 인민들에게 줄 식량은 물론, 전기, 생필품 등 배급이 모자랍니다.
지금 북한은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에는 하루 3시간 밖에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10만 세대를 건설한다고 해도 희천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로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더구나 김정은에게 안정적인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경제 재건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성과는 어떻게 될까요?
김정일의 경제 회생 구상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한반도 진출 의지가 맞물리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라고 해서 그냥 북한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간에 동맹관계가 해체된 지 이미 오래됐고, 지금 러시아는 북한보다는 한국과 이해관계가 깊기 때문입니다.
8.15 해방 후 혈맹관계였던 북한과 러시아 관계는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되고, 개혁개방 노선을 추구하면서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특히 러시아가 북한과 맺은 '호상방위조약'을 폐기하면서 북러관계는 혈맹관계에서 일반 국가관계로 격하됐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구소련 시절에 빌려다 쓴 110억 달러를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에서 새롭게 밝혀진 북한의 채무는 과거 소련시절 무상 에너지 지원, 중공업 제품, 식량 등을 특혜 가격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러시아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또 체제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이 자국을 통과하는 가스관 부설, 전력망 구축을 허용할 지 문제입니다. 설사 합의된다 해도 북한은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개혁 개방의 바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과의 협력에서도 개혁개방 하라는 권유를 뿌리쳐 잘 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의 방러 목적이 이러함에도 북한 매체들은 기본 핵심의제를 언급하지 않고 "온 세계가 장군님 열풍에 휩싸였다"고 난데없는 찬양을 늘여놓고 있습니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23일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에 전 세계가 격동되어 심장을 끓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지나친 보안 조치로 교통이 차단돼 주민들의 불만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과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정상회담 장소로 예정된 울란우데시에는 삼엄한 경계진이 펼쳐졌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연합뉴스>"김 위원장의 투르카 마을 방문으로 바이칼 호수로 가는 도로에선 몇 시간 동안 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도로에는 200m마다 경찰관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호를 펼쳤다."
이날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된 울란우데 시내와 회담장인 소스노비 보르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는 10~200m 간격으로 경찰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회담장으로 통하는 도로에서는 차량 통행이 전면 차단됐습니다.
현지 주거민들이 김정일 일행을 구경하기 위해 도로 변에 나와 기다리기도 했지만 어떤 운전자들은 도로 통제로 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지자 불만을 쏟아내며 경찰에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국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또, 울란우데 시당국은 기자들이 행사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제한했고, 사진 촬영도 하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이처럼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주민통제를 엄격하게 하자, 아침 출근해야 할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굴러야 했고, 어떤 승객들은 경찰에 강한 항의를 했다고 한국 언론은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해외 방문을 할 때면 안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생은 실로 크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아버지가 없을 때일수록 집을 잘 지켜야 한다"고 온 직장, 온 학교가 나서 김일성 동상을 지켜야 하고, 누가 연구실을 파괴하지 않는지 주야간 보초를 서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에 술을 마셔도 충성심이 없다고 정치적으로 걸고 듭니다.
북한 텔레비전은 매일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 있는 장군님께 생산 성과로 보답해야 한다"고 주민들에게 충성심을 적극 촉구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말년에 해외소풍이 아니라, 정말 수천만 자식을 거느린 가장답게 인민생활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통 큰 결단을 내리길 인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RFA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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