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카다피 비참한 죽음 본 김정일의 선택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4304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4304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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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의 진상을 알아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올해 2월부터 시민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던 리비아에 드디어 해방의 봄이 왔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하면서 42년 독재체제가 막을 내렸는데요.

24일 리비아 과도 정부는 리비아의 해방을 공식 선포했습니다.

<녹취: 무스타파 압델 잘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우리는 이슬람 국가로 이슬람 율법을 기초로 입법을 하겠습니다"

42년 압제에서 벗어난 리비아 전역에서는 감격과 기쁨의 물결이 흘러넘칩니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가 처음 시작된 벵가지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42년 카다피 정권에서 해방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리비아! 리비아!"

이렇게 소용돌이치는 세계정세 변화에 대해 각국의 언론들이 앞 다퉈 보도하고 있지만, 유독 한 곳만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인데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9월 카다피가 수도 트리폴리에서 쫓겨난 다음 "리비아의 교훈"이라는 논평을 내놓은 게 고작입니다. 조선신보는 카다피가 망한 이유를 "제국주의 압력에 못 이겨 무기를 해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카다피를 반대해 일떠선 시민군들을 "미국 CIA가 훈련시킨 반혁명분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리비아 혁명을 수행한 시민군이 누구이고, 또 카다피의 죽음을 누가 두려워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카다피가 망한 이유는 북한이 주장한대로 핵무기 포기도 아니고, 또 미국의 지령을 받은 반혁명 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카다피가 망한 이유는 장기 독재와 민생 방치에 불만을 품은 리비아 국민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선 시민군을 이끌었던 과도정부 수반인 무스타파 압델 잘릴은 카다피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압델 잘릴 장관은 카다피 친위대가 시위군중을 무차별 살육하던 지난 2월 단호히 법무장관직을 사임하고 반 카다피 깃발을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YTN> "카다피의 유혈진압에 항의하며 사퇴한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리비아 법무장관] "리비아에서는 독재자의 압제에 대항한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카다피는 독선으로 가득 찬 미치광이입니다."

이어 잘릴 전 장관은 리비아 과도 정부 지도자로 추대됐고 "카다피 정권을 종식시키고, 리비아를 국제법과 조약을 준수하는 민주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는데 국제사회가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카다피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와 가까운 부족들이 한편이 되고, 잘릴 전 장관을 수반으로 하는 반정부 시위군이 맞섰습니다. 반군에 합류된 사람들은 평범한 노동자, 농민, 도시 소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빵을 요구했다가, 카다피 친위대가 무차별적으로 탄압하자 무기를 잡은 겁니다.

한국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SBS>"실탄으로 무장한 보안군의 무차별 공격에 시민들 역시 권총과 소총, 포탄을 들고 맞서고 있습니다. 트리폴리에서는 시위대가 국영 방송사를 습격하고 정부 청사와 경찰서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현재 시위 지도자들과 시위대 편이 된 일부 군 병력은 벵가지 시내의 치안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카다피는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최신 전투기와 미사일을 동원했습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원인은 최측근들이 잇따라 망명하면서 내부가 붕괴된데도 있습니다.

우선 과도정부 수반인 압델 잘릴에 이어 리비아의 외무장관인 무사 쿠사가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YTN> "리비아의 무사 쿠사 외무장관이 런던에 입국했으며 장관직에서 사임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영국 정부가 공식 확인했습니다. 정보기관 수장 출신인 쿠사 장관은 카다피의 오른팔로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리비아 정부를 대표해 정전을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이어 유엔주재 리비아 대사로 있던 알리 압두살람 트레키도 카다피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유엔총회 의장을 맡았던 트레키는 카다피의 학살을 비난하며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카다피 측근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자, 카다피 체제는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시민군의 사기는 고조됐습니다.

심지어 프랑스와 영국 등 국제연합군이 공습을 단행하자, 카다피의 부인과 딸도 이웃나라인 튀니지로 도망쳤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SBS>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부인과 딸이 리비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최측근 인사와 장교들도 줄줄이 리비아를 탈출한 터라서 카다피 측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부가 분열되는 속에서도 카다피는 텔레비전 방송 연설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카다피는 자기가 한 약속대로 리비아를 떠나지 않고 결국 반정부 시위대에 붙잡혀 최후를 맞았습니다.

자기 고향인 시르테의 한 하수도 구멍에 숨어 있다가 반군병사들에게 붙잡혔는데요, 그는 체포 당시 혼자 몸이었습니다.

최정예를 자랑하던 카다피 친위대 만 명도 정작 필요한 시기에 카다피를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카다피의 친위대는 어디에 갔을까요?

카다피 친위대인 '카미스 여단'은 일곱 번째 아들인 카미스가 이끌었습니다. 러시아 프룬제 아카데미 군사대학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카미스는 부대를 러시아 특수부대식으로 꾸렸습니다. 그리고 '카다피 정권의 수호자'로 자처했습니다.

이 부대는 카다피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원자와 용병들로 구성됐는데요, 카다피는 다른 부족의 군대를 믿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용병을 사다가 자기 보호를 했습니다.

카다피는 내전 당시 용병들에게 거액의 달러를 주고, 자기를 지키게 했다고 한국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카미스 여단은 막상 반군이 진격하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일부는 아예 무기까지 버리고 도망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언론의 보도입니다.

"카다피에게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카미스 여단'. 최정예를 자랑하던 카다피의 친위대도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카다피의 최정예가 이처럼 쉽게 무너진 것은 부대에 지급할 현금이 바닥나 군 내부에서 분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용병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되지 못하면서 용병들이 동요했기 때문입니다."

카미스 여단의 규모는 1만 명으로, 북한으로 말하면 호위사령부와 비슷합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친위대였던 혁명수비대도 평소에는 후세인 결사 옹위를 외치다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카다피의 최후를 보면서 세계인들의 눈은 지금 북한에로 쏠리고 있습니다. 왜냐면 카다피가 42년간 독재를 했다면 김정일 부자는 66년간 독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다피가 사망하자, 다음날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 김정은을 데리고 호위사령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수령을 위해 총과 폭탄이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만일 리비아처럼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김정일 위원장은 거미줄 같이 굴설된 지하땅굴에서 진압작전을 지휘했을 것이고, 유사시에는 북한을 탈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선 평양시에는 300m 지하에 거대한 김정일 전용 땅굴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미국의 공습이나 핵공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평양 지하철이 100m이상 깊이 들어갔지만, 김정일의 전용땅굴은 이보다 훨씬 더 깊다는 소립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평양과 그 주변을 잇는 김정일의 땅굴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 땅굴은 평양에서 100리 떨어진 평성시 자모산까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리 떨어진 평양시 강동군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남포시까지 땅굴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김정일 전용땅굴을 뚫는 전문 부대까지 있는데요, 공병국에 복무했던 한 탈북자는 자기는 10년동안 갱도만 뚫었지만, 그 갱도가 어디에 있는지 본인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해외로 도주한다면 우선 중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묘향산 별장에서 창성별장까지 통하는 '은폐도로'를 비밀리에 굴설해놓고 있습니다. 이 은폐도로는 도로 폭이 9m나 되지만, 일반인들은 절대로 탈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양강도 백두산 지구에 중국과 통하는 비행장과 은폐도로가 있다고 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가지 도주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소립니다.

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은 "독재자는 도저히 내려올 엄두를 못 낼(dare not dismount)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북한에도 이와 비슷한 농담이 있죠?

'호미난방' 즉 한번 잡았던 범의 꼬리는 놓기가 어렵다는 뜻인데요, 하나둘씩 사라지는 독재 국가들을 보면서 북한 지도부는 "핵을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 "외부바람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벼를 것입니다. 유난히 추울 올 겨울, 아무 죄도 없는 북한 주민들만 그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RFA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