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진상을 짚어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원인과 관련한 북한매체의 석연치 않은 보도 내용을 짚어보는 시간으로 마련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달리는 야전열차에서 과로로 사망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보기관은 당시 북한의 특별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그동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가계를 "백두혈통"이라고 찬양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 김씨 왕조의 시조묘가 한국의 전라북도 전주에 있습니다. 풍수 지리학자들은 이 시조묘의 맥이 끊겼다고 말해,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이 성공하겠는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 내용을 가지고 분석해보겠습니다.
북한은 19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야전열차에서 순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북한 리춘희 아나운서> "주체 100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 현지지도 강행군을 이어가시다가 겹싸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순직하시였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보도와는 달리 한국 정보기관은 김정일의 전용열차가 용성역을 출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SBS>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시점에 전용 열차가 평양 룡성역에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어제(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원세훈 국정원장은 "김 위원장이 어디로 가기 위해 열차에 탄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열차가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위성사진을 비롯한 각종 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5일부터 열차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평양시 광복거리 상업중심을 방문하고, 16일부터는 외부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외부 세계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설을 놓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조선일보는 북한의 김 위원장의 열차 사망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야행성', 즉 주로 야밤에 활동하는 것으로 소문난 김 위원장이 과연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에 열차를 탔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건강했던 시절에는 새벽 2~3시까지 일을 하고, 낮 12시쯤에야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평양의 기온을 보면 섭씨 영하 12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날씨가 차지면 혈관이 수축되고 호흡도 곤난한 상황인데, 과연 뇌졸중을 앓는 김 위원장이 바깥나들이를 했겠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앓고 있던 심근경색도 외부 기온에 민감한데, 1호 의사들이 동행했다면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김 위원장의 외부 활동을 말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혹은 아무리 북한이 폐쇄되었다고 해도 전용 열차에서 죽은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50시간 넘게 지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1호 열차는 평양시 용성구역 용성역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한미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용하는 특수방탄 열차는 방통(차량)이 모두 20여개로, 이 열차 안에는 침실, 식당칸, 병원 등이 있어 김 위원장이 한 번 움직일 때면 호위총국, 봉화진료소 의료진, 1호 요리사 등 수백명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열차에서 사망했다면 과연 수백 개의 입을 50시간 이상 막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가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열차 사망설의 다음 미스터리는 평양 관저나 집무실에서 사망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입니다. 왜냐면 뇌졸중 환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아침 새벽에 현지지도를 떠난다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매체가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시 광복거리 상업중심을 방문했다고 보도한 날짜가 15일입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광복백화점의 1-3층까지를 호위성원의 부축 없이 혼자 승강기를 타고 움직이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 언론은 이달 들어 김 위원장이 9차례나 현지지도를 한 것으로 볼 때, 자신의 관저나 집무실에서 휴식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열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취침하던 중 사망했기 때문에 호위성원들이 몰랐을 것이고, 또 의료일꾼들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타살됐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이틀 늦게 보도하고, 성급하게 시신을 해부했다고 보도하는 등 사인 해명에 적극성을 보이자,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타살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또 한 탈북자 단체는 북한의 내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의 사망 시점이 16일 저녁 8시 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상의 가설이 맞는다면, 왜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순직했다"고 보도 했을까요?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을 '혁명가', '일밖에 모르는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사망 원인을 숨겼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혁명가는 싸우다 순직하는 것을 혁명가의 본새"로 교양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을 본보기로 선전하고 있다고 북한에서 생활했던 복수의 탈북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열차 순직설로 선전해 주민들의 경애심과 존경심을 얻게 한 다음, 그것을 김정은 후계체제 결속을 위한 동기 부여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묘향산 별장에서 사망했을 때도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불철주야로 조국 통일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일하다 숨졌다"고 선전했습니다.
북한 매체는 이처럼 사실관계에서 현실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보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김씨 왕조 시조묘 맥이 끊겨 3대 세습 불확실
다음 주제입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그의 가족을 소개할 때 “백두혈통” “만경대 가문”이라고 김씨 가계 혈통에 대해 선전해왔습니다.
백두혈통이란 백두산에서 김일성로부터 시작된 가계의 맥이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김일성, 김정일 가계의 시조의 뿌리, 즉 본은 남한의 전라북도 전주입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입니다.
<녹취: MBN>
“산 중턱에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32대 조상으로 알려진 전주 김씨 시조인 김태서의 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한이 발행하는 ‘통일신보’에 따르면 전주 김씨의 시조 김태서는 1254년 고려 고종 41년에 왜군의 침입으로 경주 일대가 폐허가 되자 일족을 데리고 전주에 정착했으며 살다가 죽고 지금의 이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김태서의 후손들은 그가 묻힌 전주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그 묘는 오늘도 그 후손들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일 위원장의 고조할아버지인 김응우, 중조 할아버지 김보현의 먼 선대가 김태서라는 소립니다. 김정일도 자기가 남한을 방문하면 제일가고 싶은 곳이 조상의 묘가 있는 전주 모악산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주 김씨들은 선조의 묘를 잘 써서 자손들이 대대로 부귀하고 크게 흥하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풍수학의 대가였던 육관 손석우 씨는 이 묘의 기가 발원해 김일성이 장기 집권하게 된다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풍수학자들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상이 묘가 들어 있는 산의 형국인 삽살개와 비슷해 기운이 이어졌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녹취: 김상휘 풍수학 박사> “모악산은 명산인데 이유는 천제봉제혈이 들어 있어 그렇습니다. 천제봉제혈은 임금을 낳을 수 있는 기운이 있다는 뜻인데…”
김태서의 묘를 정좌계향, 즉 동북향으로 쓰고,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그러니까 ‘목 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이어서 자손들이 부귀하고 크게 흥한다고 일컬어왔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으로 이어지면서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좋지 않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 소개된 풍수지리 전문가의 말입니다.
<녹취: 김상휘 풍수학 박사> “삽살개와 매, 학이 들어 있는데 학은 개발론에 의해 길이 나 이수부동에 멈추고 말았던 것이죠. 그래서 풍수 계에서는 3대까지 가는 것은 부담이 있다고…”
이 지역 개발로 인해 혈맥이 끊기면서 북한의 정권 세습은 2대에 그칠 것이라고 풍수지리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김정은 권력세습이 불안감을 보이는 가운데, 과연 3대 세습이 성공할지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