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내용을 다시 뒤집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정영입니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미국과 한판 붙겠다”고 전쟁 준비를 하면서 요즘 청취자 여러분은 고생 많이 하고 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얼마 전 미국의 유명한 농구선수가 평양에 들어가 젊은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또 5일에는 북한의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등장해 “정전협정을 백지화 하고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에게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지요.
이렇게 북한이 요즘 미국을 상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른바 강온 양면전술을 쓰고 있는데요, 북한 매체를 통해서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먼저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보도를 들어보겠습니다.
북한 중앙TV/농구해설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잠시 후 조선 체육대학 횃불농구팀 선수들과 미국 할렘글로브 트로토즈 농구팀 선수들의 혼합 경기가 진행되게 됩니다.
평양의 한복판에 있는 류경 정주영 체육관의 널따란 전광판에는 미국의 유명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과 할렘농구단의 활약 장면이 한동안 방영됐습니다. 또 갑자기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를 동반하고 깜짝 등장해 만세 소리로 장내를 진압시키기도 했는데요,
녹취: <경기장 분위기 사운드>
그러면 북한은 한쪽에서는 적대국이라고 욕하면서도, 왜 미국의 농구단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이처럼 환대해주고 있을까요,
이에 관해 한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북한이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을 때 화제가 됐던 ‘핑퐁외교’를 떠올린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북한 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티우 총장은 북한의 시도는 핑퐁외교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레그 스칼라티우: 북한이 골프 외교, 농구외교 등 미국과 외교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 1970년대 초반에 미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설립할 때 ‘핑퐁 외교’를 교훈 삼아 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핑퐁외교와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습니다.
김정은도 로드맨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로드먼이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의 ABC방송에 출연해 김정은과 나눈 대화를 공개하면서 북한이 미국 농구단을 초청한 의도는 더욱 명백히 드러났는데요,
북한이 농구를 통해 미국인들간 교류를 확대하고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른바 미국과 중국간의 ‘핑퐁외교’는 양국간 서로 필요해서 급진전 됐지만, 북한과 미국간의 농구접촉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라고 스칼라티우 사무총장은 말합니다.
스칼라티우: 핑퐁외교를 생각하면 그 당시 냉전시대 때는 미국은 소련과 대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세력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상황과 아주 다릅니다. 옛날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교훈 삼아 외교정상화를 시킬 때가 아닙니다.
‘핑퐁외교’란, 한국전쟁 이후 적대국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을 말하는데요,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중국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는 외교정책을 펴왔습니다.
그러던 것이1969년 1월에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당시 중국과 소련 사이의 분쟁에 편승해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시 소련과 분쟁에 시달리던 중국의 모택동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소련과 관계를 대등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두 나라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1971년 4월 10일 미국의 탁구선수팀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는 역사적인 ‘핑퐁외교’ 가 시작됐습니다.
1971년 4월10일 베이징 공항에 첫 발을 들여놓은 미국 탁구선수단은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래 중국 대륙을 밟은 최초의 미국인들이었는데요, 이들은 베이징에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탁구경기를 가졌고, 이는 양국간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들이 중국을 다녀온 다음 닉슨 대통령은 20년 넘게 지속되어오던 중국에 대한 무역금지 조치를 해제했고, 1979년 1월1일 중국과 수교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물밑 작업이 크게 한몫 하면서 ‘핑퐁외교’는 역사적으로 유명해졌는데요,
아마 북한도 이 ‘핑퐁외교’에서 대미 돌파구의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북한은 공식적인 채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고 소위 민간 채널을 뚫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간 공식 채널이 가동하지 못하는 데는, 북한 당국이 빈번히 약속을 어기기 때문이라고 스칼라티우 총장은 평가합니다.
스칼라티우: 북한은 특히 작년에는 미국과 대화를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작년 2월 29일에 미국과 대화하고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유엔가입국이지만,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지키지 않고, 미국과 여러 번 합의를 했는데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북한당국의 신뢰성이 문제입니다.
북한은 민간인을 이용해 대미접근 방식에 매달리면서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김정은과 로드맨의 만난 사실이 보도되자, 미국 백악관과 미 국무부는 “북한당국은 외국의 스포츠 스타를 접대하기 보다는 자국 주민들의 삶을 돌봐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미국 백악관의 제이 카니 대변인은 데니스 로드맨의 최근 방북과 관련한 질문에 “미국은 북한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계속 그 채널을 선택해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속담에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지요,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과 로드맨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김정은의 뛰어난 외교전술’, 적대국인 미국인도 품을 수 있는 ‘개방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알리는데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5일자 조선신보는 ‘대결 국면에서 이루어진 조미체육교류’라는 제목의 글에서 “평양에서 실현된 조미체육교류의 화폭에 심오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다”면서 “체육 교류가 활성화돼 두 나라 인민들이 서로 이해를 도모하는데 기여하게 되리라는 최고 영도자의 기대 표명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미국 할렘농구단을 불러들인 장본인이 김정은이고, 그가 직접 농구를 통한 외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북한이 시인한 격이 되었는데요,
미국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도 “로드맨은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는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라면서 그의 방북을 평가절하했습니다.
실제로 로드맨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나 김씨 일가의 독재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평범한 미국인이라고 스칼라티우 총장은 말합니다.
스칼라티우: 로드맨과 같은 사람들은 빨리빨리 뜨느라고 북한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로드맨은 미국 방송국에서 파견한 사람입니다. 방송국에서 하는 일은 시청률이 높아야 성공하는 것이거든요. 북한은 온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북한을 방북하면 하룻밤에 유명해지지 않습니까, 북한 인민을 생각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데니스 로드맨이 북한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북한은 이처럼 북한 실정을 잘 모르는 스포츠 스타를 내세워 미국인들의 대북 인식을 전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찰나에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한미간 합동군사 훈련에 반발하는 북한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강경발언이 또 나왔습니다.
미국의 농구선수까지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해주고 외교관계를 꾀하는 북한의 잔꾀가 과연 들여 먹힐 지 상황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