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 선전매체 보도 내용의 거짓과 진실을 살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최: 정영기자, 오늘 다룰 내용은 무엇입니까,
지난 19일 중국 정부가 하얼빈(할빈) 기차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세운 것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간 우호협력이 증대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될 때 침묵하고 있던 북한이 뒤늦게야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향해 “애국열사를 함부로 모독하지 말라”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안중근 열사 기념관이 중국에 건설되게 된 뒷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최민석: 예, 북한 노동신문이 안중근 기념관이 건립된 사실을 늦게 보도했는데요, 이 기념관이 어떻게 건설되게 됐는지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이 이 보도를 언제 처음 했습니까?
정영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6일 일본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를 가리켜 ‘테러리스트’라고 칭하자, “반일애국 열사를 함부로 모독하지 말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하얼빈 시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은 애국열사로, 그의 기념관을 건설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북한이 발끈하고 나선 것은 그 안중근 기념관을 시비한 일본 때문이었군요. 중국과 한국 언론은 안중근 기념관 개관 소식을 떠들썩하게 보도했는데 북한은 왜 안 했습니까?
정영: 예, 북한은 개관식이 있은 지 일주일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일주일 뒤에야 북한이 첫 반응을 보였는데요. 사실 안중근 열사 기념관이 건설되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도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언급하기 껄끄러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민석: 그럼 안중근 기념관이 건립되기 까지 박 대통령은 어떻게 기여했는가 요?
정영: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이런 건의를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한 중 양 국민들이 공히 존경하는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 석을 설치하는 데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북한으로 말하면 김일성, 김정일 현지지도 단위마다 현지지도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런 작은 거라도 세우자고 했는데, 시 주석은 “잘 검토토록 지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 후 중국은 7개월만에 안중근 열사의 기념 표지 석 대신 아예 100평방미터 규모의 기념관을 개관한 것입니다.
최민석: 중국이 박 대통령이 제기한 자그마한 기념비석 대신에 통 크게 기념관, 박물관을 세운거군요. 이건 대단한 거예요.
정영: 사실 중국은 과거 안중근 기념관을 세우는 문제에 대해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 때문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중국은 2006년부터 안중근 열사의 기념 표지 석을 설치해달라는 한국의 요구를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심지어 어느 한국 기업인이 돈을 내서 하얼빈에 세운 안중근 열사의 동상을 철거해가라고 요구해 철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건의로 중국은 안중근 열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 바로 옆에 기념관을 덩실 하게 세운 것입니다.
최민석: 이건 중국이 보여주기 힘든 행동입니다.
정영: 그래서 중국이 일제에 대한 역사인식을 한국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안중근 열사 기념관 개관식에 참가했던 중국인사들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쑨야오 흑룡강성 부 성장은 “한 세기 동안 안 의사를 추모하고 그리워 하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 오늘 이곳에 기념관을 세우게 되었다”며 “앞으로 인류가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과거를 반성하며 미래를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현재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이 그만큼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다고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민석: 그러면 어떤 식으로 한국이 인정받았다고 보나요?
정영: 중국은 현재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마찰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서해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건조해 띄운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안중근 열사 기념관을 세운 것 아닌가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중국의 입장에서는 안중근 열사 기념관을 통해 한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민석: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결과가 되겠군요. 물론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겠지요?
정영: 일본은 기념관 개관 소식이 나가자,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안중근은 저명한 항일 의사로, 중국 인민도 존경한다”며 일본을 점잖게 꾸짖었습니다.
최민석: 아, 이렇게 중국이 반발하니까, 북한도 덩달아 일본에 대고 한마디 한 거군요. 그런데, 북한은 왜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될 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나요?
정영: 한국정부가 안중근 열사 기념관 건설에 기여했다는 그런 보도가 나갔기 때문에 사실 북한말로 하면 “곁 불을 쬐기 싫다”는 식이지요.
최민석: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데, 자기는 논 살 능력은 안되니까, 그냥 입을 닫고 가만 있겠다는 거군요. 중국이 북한과 더 훨씬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중국에 대고 기념관을 세우자, 이런 소리 한번 못하나요?
정영: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 기념관을 세우자고 해도 바쁠 것입니다. 현재 북한 내부에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 기념관, 연구실, 사적지, 기념 표식 비 등이 8천 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김정은의 기념관까지 세우자고 해도 엄청 많은 품이 들기 때문에 북한당국으로서는 안중근 열사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민석: 그보다는 더 큰 이유는 없는지요?
정영: 북한에서는 안중근을 ‘실패한 독립운동가’로 교육하기 때문에 잘 일러주지 않습니다.
최민석: 안중근을 ‘실패한 독립운동가’ 로 가르쳐준다고요?
정영: 북한은 1970년말에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2부작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안중근의 영웅적인 행동을 ‘개인 영웅주의자’로 묘사했습니다. 영화에서 “안중근은 수령의 영도를 받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온 민족이 존경하는 안중근 열사를 오히려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 이용하고 있군요. 그랬으니, 북한이 안중근 열사의 기념관을 세우자고 중국에 요구할 수 없었겠네요.
정영: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마자 중국을 방문하고 한중 우의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장성택 처형과 같은 인권유린 국가로 중국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 제1비서는 집권한지 3년째 되어도 아직 시진핑 정부의 초청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이번 안중근 열사 기념관 개관식을 놓고도 현재 한 중간, 북 중간의 현주소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 정권도 이제는 안중근 열사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달리하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주민들에게 알려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