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4월 26일자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뉴욕을 방문했던 리수용 외무상 일행이 평양으로 돌아왔다고 짤막하게 보도했습니다. 북한 매체는 리 외무상의 그간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만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대화를 원하는 북한이 외부와의 대화통로를 어떻게 모색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오늘 시간에는 외부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북한의 속내를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먼저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을 방문하고 돌아갔지요? 여기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정영: 지난 ‘북한언론 겉과 속’ 시간에 잠깐 소개를 해드렸지만, 리수용 외무상이 미국 뉴욕 중심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지속개발목표 달성에 관한 고위급 토론회’와 ‘파리기후변화 협정 서명식’에 참가하고 26일 평양에 돌아갔습니다.
북한 매체가 리 외무상의 방문 목적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청취자 분들은 그가 미국에 와서 뭘 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왜냐면 리 외무상은 북한이 초강력 유엔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 해외에 나온 고위관리이기 때문입니다.
외신들은 리 외무상이 형식상 파리기후변화 협약 서명식에 참가하러 왔지만, 기본 목적은 미국과 대화물꼬를 트기 위해 왔다고 논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제회의 주제에 맞지 않게 자신들의 핵개발 정당성만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돌아갔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유엔무대에서 자기네 변명만 늘어놓은 거군요.
정영: 그렇습니다. 지난 21일에 진행된 ‘지속개발 목표 달성에 관한 고위급 토론회’는 전세계적으로 빈곤과 가난을 퇴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험과 전망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인데 리 외무상은 북한에서는 12년제 의무교육제도와 무상치료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선전한 다음, 느닷없이 북한의 지속적인 개발노력은 미국의 핵위협 때문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 22일에 진행된 ‘기후변화문제에 관한 파리협정 서명식’에서도 환경개선을 위한 자신들의 노력들도 미국 때문에 난관에 직면했다고 책임을 미국에 떠넘겼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북한의 공장 굴뚝에서 석탄 매연가스가 나오고, 산에 나무가 없는 것도 결국 미국 때문이다? 이건 회의 주제와는 너무 동떨어졌네요.
정영: 사실 그는 이번에 미국에 와서 미국정부관리들과 만나 북핵문제나 평화협정체결 등을 놓고 대화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만남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유엔무대에서 미국이나 성토하자고 작심한 듯 합니다.
최민석: 대화가 안되니까, 아예 “염장이나 지르고 가자” 그거군요.
정영: 김정은도 외부와 대화할 수 있는 적임자로 리수용 외무상을 택한 것 같습니다. 왜냐면 리 외무상이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국제적 감각과 인맥이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소리를 안 하니까, 미국정부는 리 외무상을 외면한 겁니다. 그는 23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도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호응을 받지 못하자 리태성이라는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26일 한술 더 떠서 “한미군사훈련 중단해도 핵실험 중단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외무성 관리들이 아마 평양에 돌아가면 문책이 두려워서 그런지, 리수용 외무상의 발언까지 모두 뒤집고 들어간 겁니다.
최민석: 그러면 북한이 추진하던 대화 모색은 완전 실패한 겁니까,
정영: 현재 김정은은 외부와 대화하고 싶은데, 대화를 맡을만한 참모가 없습니다. 장성택이 중국과 일본에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인물이라고 보고 숙청해버렸습니다.
또 대남통이었던 김양건 전 노동당 대남비서는 남한에 여러 인맥이 있어 남한과 대화할 수 있는 적임자였는데, 강경파에 밀려 작년 말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러니 현재 김정은 주변에는 대화를 맡을만한 전문가가 없는 겁니다. 김정은도 현재 집권 5년째 되었지만, 아직 해외순방 한번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으면 오지 말라”는 조건부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민석: 김정은 정권이 가장 불안정한 것은 주변에 바로 대화파가 없는 거군요.
정영: 과거 김정일 시대의 대화파들을 대부분 숙청해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재 김정은 주변에는 골수 보수파인 노동당 조직지도부나 군부 강경파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같이 사람잡이에 이골 난 사람들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 메신저, 즉 대화 중계자가 필요할 텐데요. 그런 가운데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민석: 후지모토 씨라면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김씨 일가의 사치스런 식생활을 폭로했던 일본 사람이지요?
정영: 옳습니다. 북한 언론이 얼마 전 후지모토 씨가 평양에 왔다간 사실을 보도하지 않아 일반 주민들은 잘 모르고 있을 텐데요. 후지모토 겐지는 4월 12일부터 23일까지 약 열흘 동안 김정은 제1비서의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후지모토는 방문기간 김정은, 김여정 등 김씨 일가와 만났다고 대화 일부를 일본 언론에 공개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김정은이 직접 벤츠 차를 몰고 자신을 데리러 호텔 문 앞까지 왔다고 하는데요,
최민석: 그래서 김정은이 뭐라고 했답니까,
정영: 김정은은 식사자리에서 후지모토에게 “(자신은)전쟁할 생각이 없다. 외교 쪽 인간들이 미국에 접근하려고 무리한 난제들을 들이대는 바람에 울컥해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은 자기는 미국이나 한국과 전쟁할 생각이 없는데, 미국과 중국 등 대국들이 자기를 깔봐서 밸이(성격이) 울컥해서 미사일을 펑펑 쏜다는 겁니다.
그리고 김정은의 대화 중에 “외교 쪽 인간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마 북한 외무성에서 미국과 대화해야 한다고 하는 대화파들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름지기 리수용 외무상이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리용호 외무성 부상 중에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들은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자면, 즉 북한이 살아남자면 미국과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 같습니다.
최민석: 그래서 리 외무상이 유엔까지 온 것 같군요.
정영: 그렇습니다. 그런데 실패하니까, 김정은은 후지모토를 통해 일본정부의 동향을 탐지하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연회 도중에 후지모토에게 “일본은 우리나라(북한)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후지모토가 “최악이다”고 답하자, “그러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후지모토씨는 일본 언론에 밝혔습니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김정은의 메신저임을 자처하고 나섰는데요, 일본 정부와 김정은 사이를 연결하는 ‘연락원’ 수준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습니다.
최민석: 김정은 제1비서가 정상이라면 후지모토 씨를 용서하지 않을 텐데요. 자기네 집안의 사치를 폭로하지 않았나요?
정영: 후지모토 겐지 씨는 1980년대 말부터 2000년 초까지 13년동안 김 씨 일가의 전속 요리사로 있다가 식재료를 가지러 일본에 갔다 오겠다고 해놓고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요리사’라는 책을 써서 김씨 일가의 사치와 향락을 세상밖에 알렸습니다. 더욱이 고난의 행군시기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때도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고 폭로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래서 김정은이 후지모토에게 화났을 법한데도 그가 처벌받지 않고 평양을 오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최민석: 글쎄요. 김정은은 이전에는 대니스 로드맨을 내세워 오바마 대통령과 또는 미국과 대화를 시도했지요?
정영: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로드맨을 불러 놓고 원산별장에서 며칠씩 놀면서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했지요. 하지만, 불발됐습니다. 왜냐면 로드맨은 개별적인 미국인에 불과하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정은도 미국과 대화를 하려면 격식을 갖추고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개별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최민석: 그렇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도 대화를 원한다면 이런 개별적인 사람들을 끼고 돌 것이 아니라, 국격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