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던 북한 인권 토론회장에서 회의 규칙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발언을 해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관리들의 행동을 정의롭게 부각하고, 오히려 미국을 반공화국 인권모략의 원흉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북한 매체는 유엔에 파견된 자기네 외교관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모두 숨기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보도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며칠 전 유엔무대에서 벌어졌던 북한 외교관들의 외교적 결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최민석: 유엔무대에서 외교적 망신을 자초한 북한 외교관들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북한이 이 내용을 언제 어떻게 보도 했습니까,
정영: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월 2일, "반공화국 인권소동으로 얻을 것은 망신밖에 없다"라는 기사의 제목에서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주최로 진행된 북한인권 회의를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이번 회의는 "미국무성 《북조선인권특사》와 유엔주재 미국과 괴뢰대표들, 유엔인권담당보조사무총장 그리고 미국이 끌어온 형형색색의 인간쓰레기들이 참가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형형색색의 인간쓰레기들이라는 것은 북한자유주간 행사 참가를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던 20여명의 탈북자들과 10여명의 미국 내 탈북자들을 지칭한 것인데요.
청취자 분들도 우리 방송을 통해 유엔무대에서 탈북자들과 북한 대표부 관리들 사이에 어떤 소동이 벌어졌는지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당시 이 회의는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조직되었는데요, 30일 뉴욕 유엔본부 회의실에서는 탈북자 약 30명과 미국과 한국의 인권단체 관계자들, 각국 유엔 외교관 등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회의 주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 북한인권에 대한 대화'였습니다.
여기서 탈북자들은 자기들이 겪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탄압 행위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뉴욕주재 유엔 북한 대표부 직원의 모습도 보였어요. 이들은 회의장 관람석 중간쯤에 앉아있었는데요,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죠셉 김씨의 발언이 끝나고 다른 탈북자가 발언하려는 데, 갑자기 참관 석에 있던 북한대표부 이성철 참사가 발언권을 얻지 않은 채 성명서를 내리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민석: 외교관이 발언권도 얻지 않고 뭔가 큰 소리로 읽었다고요?
정영: 그렇습니다. 관련 동영상을 잠시 보고 넘어가시죠.
현장 녹취: <이성철/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순간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진행자는 낭독을 중단하라고 경고합니다.
<바바라 데믹/회의 사회자> "쉬는 시간까지 기다려주시겠어요? 따로 발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계속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성철 참사는 10여분 동안 '무대포'로, 정말 막가파 식으로 계속 성명서를 내리 읽었습니다.
최민석: 어떤 면에서 보면 북한 외교관들의 담력이 대단한 것 같아 보이는데요, 이건 완전 외교적 망동이라고 볼 수 있네요.
정영: 참다 못해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행사장 음향 기술자에게 마이크를 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현장 상황을 들어보겠습니다.
< 사만다 파워/유엔 주재 미국대사> "마이크 꺼주세요. 발언권이 없는 발언이니까요."
그러자, 북한 외교관들의 추태를 보다 못해 격분한 탈북자들은 벌떡 일어서 북한 대표부 일행을 향해 "국제회의장에서 회의 질서를 지켜라" "김정은을 반인도 범죄자로 고소하라" "자유 북한" 등을 외치며 규탄했습니다.
결국 북한 대표부 3명은 경찰에 끌려 행사장에서 강제 퇴장 당했고, 회의는 북한 대표부 직원들이 퇴장한 다음 일정에 맞게 진행됐습니다. 이 영상은 전세계로 공개됐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키워준 '무비의 담력'이 결국 이렇게 유엔이라는 큰 외교무대에서 탈북자들과 북한 당국자가 한판 붙었군요.
정영: 국제무대에서 보면 슬픈 장면이었는데요, 서로 나서 자란 곳은 같지만, 지금은 반대의 입장에서 유엔무대에서 격돌한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북한의 인권 실상을 고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옹호하느라 싸운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최민석: 일명 외교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북한은 외교관들에게 초보적인 외교적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것 같습니까?
정영: 북한도 외교관들에게 국제법과 현지법, 그리고 외교적 예의 등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북한 외교관들의 딱한 심정도 이해는 됩니다.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유엔에 파견된 북한 대표부 사람들도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지난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유엔인권결의안이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북한 외교관들은 '최고 존엄'이라고 불리는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세우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지요.
아마 그 책임을 지고 북한 대표부 인권담당 참사가 교체된 것으로 보이는 데요,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 토론회 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도 바로 새로 부임된 이성철 참사입니다.
유엔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성철 참사는 북한 대표부 인권담당 참사였던 김성의 후임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보위부 요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인권행사를 막아야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되겠군요. 보위부 사람들도 외교무대에 나서는가요?
정영: 북한 보위부는 국제관계대학이나 평양외국어 대학 등을 졸업한 학생들 가운데서 토대가 좋고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졸업생들을 선발해가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문제가 최근 핵 문제보다 더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보위부 직원을 외교관으로 가장시켜 유엔무대에 세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보위부원과 탈북자가 유엔무대에서 충돌했군요.
정영: 그렇습니다.
최민석: 그런데 북한에서 외교관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을 박차고 나가도 된다고 가르치는가요?
정영: 이 외교관들도 북한 당국에 보고해야 할 게 사안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탈북자들이 유엔무대에서 북한인권을 공개 증언했다고 하면 북한 당국이 얼마나 추궁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회의장에서 깽판을 치는 게 그들로서는 최선의 방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즘 김정은이 고위 간부들을 처형해도 너무도 잔혹하게 처형하니까, 북한 외교관들도 그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런 추태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최민석: 저렇게 북한 외교관들이 국제회의장에서 추태를 부리면 당국은 어떻게 평가할 지 궁금합니다.
정영: 필시 북한당국은 대표부 외교관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할거라고 봅니다. "반공화국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라고 훈장을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초보적인 외교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한 불량 국가라는 오명을 또 쓰게 되었습니다.
최민석: 외교는 나라와 나라간에 나쁜 관계도 좋게 만드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북한 외교 수준이 한심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드러냈습니다. 본국에서 처벌당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 없는 추태를 부려야 하는 북한 외교관들의 행동이 안쓰럽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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