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북한이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에 대한 입장을 사흘 만에 공식 밝혔습니다. 조선중앙통신 20일자는 ‘동족대결의 새로운 모략극’이라는 논평의 글에서 태공사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는 남한당국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13명 북한식당 종업원 사건과는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태 공사 망명이 북한에 주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태 공사의 망명 사건을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이 어떻게 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먼저 북한 매체의 동향을 알려주시죠.
정영: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동족대결의 새로운 모략극’이라는 논평을 냈습니다. 논평은 《최근 박근혜 역적패당은 영국주재 대표부에서 일하다가 자기가 저지른 범죄행위가 폭로되자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자를 남조선에 끌어들이는 비렬한 놀음을 벌려놓았다》고 운을 뗐습니다.
논평은 태영호 공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범죄자로 매도했고, 태 공사를 남한이 반북 대결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태공사의 망명을 도운 영국정부에 대해서도 ‘범죄자를 빼돌렸다”고 쓴 소리를 했습니다. 북한은 이 논평 하나 내놓고는 아직 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이로써 북한이 태 공사 망명으로 북한 엘리트들이 흔들리지 않게 아주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현재 이 소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퍼졌습니까,
정영: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북한 주민들이 직접 접할 수 없는 대외 매체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다 알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방송을 비롯한 대북방송 매체들이 연일 방송하기 때문에 지금쯤 웬만한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997년 2월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가 중국주재 한국 영사관으로 진입했을 때도 북한은 “남한당국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했다가, 얼마 지나서 돌변하여 “비겁한 자야 갈 테면 가라”고 하면서 반역자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4월 중국에서 탈출한 13명 북한 식당 종업원들에 대해서는 남한당국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민석: 황장엽 비서와 태 공사 등의 경우와 접근법이 다르네요.
정영: 태 공사의 경우에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또 탈북 동기도 명백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반역자로 매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최민석: 그렇군요. 얼마 전 태 공사가 영국에 주재할 때 김정일 초상화를 찢은 북한 외교관을 살렸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지금 그 외교관은 무사한가요?
정영: 네, 태영호 공사가 지난 2011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당비서로 있을 때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영국에 사는 탈북자들이 북한 대사관에 찾아가서 김정일 사망을 축하한다는 글을 쓴 사진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때 문명신 북한2등 서기관이 벽에 붙은 김정일 사진을 찢어서 처벌될 뻔 했던 것을 태 공사가 살려주었다, 즉 처벌받지 않게 해주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문명신 2등 서기관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하지만, 앞으로 눈 여겨 볼 대목인데요. 일단 북한에서 공식 제작된 초상화를 훼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이 어떻게 처리할 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은 완전히 초상집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파견된 검열단이 들이닥쳐 태 공사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탈탈 털어서 처벌할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은 비단 우리 둘의 걱정은 아닐 것입니다.
최민석: 현재 북한 간부들이 태 공사 망명을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합니다.
정영: 자유아시아방송 중국 특파원이 전한 소식인데요, 태영호 공사가 망명했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 해외파견 북한 주재원들은 내놓고 말을 하지 못하지만, 상당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외교관도 지난해에 “북한에 남겨놓은 가족들만 피해 받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북한 엘리트, 즉 간부들의 마음은 이미 김정은 곁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민석: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태공사를 범죄자로 취급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요?
정영: 이런 보도는 북한이 상투적으로 써온 것인데요. 얼마 전에 저는 한 고위층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북한의 주장을 거꾸로 들으면 된다”고 일축했습니다. 이 말은 북한이 자기의 포섭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바로 반역자니, 범죄자로 매도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태영호 공사가 범죄자라는 인식을 주어 망명지에서도 어렵게 만들려는 겁니다.
최민석: 하지만, 북한은 아직도 13명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남한 당국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영: 이 사건은 좀 다릅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13명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13명 식당종업원 가족 친척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만일 이들이 다 탈북했다고 가족들을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가면, 평양에 소문이 확산될 것이고, 그러면 시민들에게 불안, 탈북충동 이런 것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대남웹사이트에서는 남한 당국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최민석: 그렇군요. 북한도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는 소리군요. 대상에 따라 이렇게 주산알을 튀긴다는 소리지요?
정영: 현재 태 공사를 비롯한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잇따른 망명으로 인해 북한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북한 청소년들 속에서는 “조선(북한)은 망했다." "중국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주고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핵심층 몇 명이 나왔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당장 무너진다고 의미하지 않는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리고 탈북 사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정영: 북한의 100만명 이상 되는 핵심층이 존재하는 한, 노동당과 보위부, 군대와 같은 조직이 있는 한 북한 김정은이 당장 사망한다 해도 급변사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문제는 북한 간부들이 변하지 않고는 북한 체제가 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태공사의 망명이 북한 엘리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황장엽 노동당 국제비서가 망명했을 때도 평양에서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다만, “아, 노동당 국제비서가 탈북하는 데 우리는 뭐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약 20년 동안 3만명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나왔습니다. 황장엽 비서의 탈북이 북한 엘리트들에게 탈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면, 태 공사 망명은 어떠한 메시지를 주겠는지는 다음시간에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석: 과연 태 공사 망명이 북한 간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는지, 간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