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단 감자 이야기

0:00 / 0:00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주 여러분과 함께 북한선전매체의 내용을 다시 뒤집어 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의 다룰 주제는 무엇입니까,

- 북한 노동신문, 김정일의 ‘감자혁명’ 15주년 선전

- 북, ‘대홍단 감자 세계감자대회 최우수 평가, 수확 4.5배 장성’ 주장

- 김정일 백두산 별장 휴가 갔다가 대홍단 자주 들려

- 김정일, 자기 발언 기억 못해 구호판 철거 시켜

- 김정일 지어준 대홍이와 홍단이 이름 너무 많아 혼란 생겨

정영: 1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발기했다는 ‘감자혁명’ 15주년을 맞아 대홍단벌에서 위대한 변혁이 일어났다고 선전하면서, 대홍단의 감자 역사 변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감자농사의 과학과, 집약화를 실천해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감자수확고가 4.5배나 성장했고, “세계감자대회에서 조선의 대홍단 감자가 세계적 수준을 돌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앞으로 대홍단 벌을 가꿔갈 대홍이와 홍단이 등 미래가 보장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대홍단 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최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가장 공을 들였던 대홍단 감자혁명에 대해 북한 매체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북한이 감자혁명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농사에 왜 굳이 혁명이란 말까지 썼는지 궁금합니다.

정영: 북한에서 1998년부터 감자혁명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시기적으로 봐서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던 시기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양강도 지구에서 많이 심는 감자로 식량 문제를 풀어보겠다, 그런 의도에서 혁명이란 단어를 붙였습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감자농사를 잘 지어서 굶어 죽는 사람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군요.

정영: 노동신문을 보니까, 1998년부터 지금까지 김정일 위원장이 대홍단군을 무려 10여차례 넘게 찾아간 것으로 되던데요, 그러면 왜 그쪽에 자주 갔습니까,

정영: 김정일 위원장이 대홍단에 자주 갔던 이유는 거기에 백두산 별장이 있거든요. 김정일이 백두산에 간 김에 휴양을 하면서 대홍단 군을 돌아보았다는 애기가 됩니다. 김 위원장은 “묘향산의 기후는 수령님한테 맞고, 나는 백두산이 맞다”고 하면서 여름이 되면 백두산에 가서 낚시도하고 산림욕도 하면서 휴가를 즐겼습니다. 김 위원장이 대홍단을 현지 지도한 날짜를 보면 겨울에 대홍단에 갔다는 애기는 없습니다.

최민석: 김 위원장이 휴가 삼아 백두산에 갔다가 짬짬이 그 주변을 산책 삼아 다니면서 창조한 게 대홍단의 감자혁명이군요.

정영: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휴가 다니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지도자가 지방 시찰 나간다고 명분도 좋고요.

최민석: 그렇지요, 명분이 좋지요. 노동신문을 보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감자농사에 대해서는 박식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김정일 위원장은 감자에 그렇게 목을 매었습니까,

정영: 김일성 주석은 “밭곡식의 왕은 강냉이”라고 하면서 온 나라에 강냉이를 많이 심게 했습니다. 김 주석이 옥수수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 위원장은 감자에 중점을 둔 셈이지요.

최민석: 옥수수나 감자나 다 부식물이 아닙니까,

정영: 그게 잡곡이지요. 원래 조선사람은 쌀이 주식인데, 북한에 농경지가 적다보니까, 생산량이 많이 나는 감자나 옥수수에 치중하는 건데요. 앞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농사현장 어디에 중점을 둘지 궁금합니다.

최민석: 그런데 감자농사가 잘 되었다, 세계감자대회에서 북한의 대홍단 감자가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작황을 보니까 어떻습니까,

정영: 세계감자대회에서 북한의 대홍단 감자가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은 없고요, 오히려 남한의 월드비전과 같은 민간단체가 북한에 씨 감자재배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거의 매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자는 기후에 따라 기복이 매우 심한 작물인데요, 왜냐면 비가 좀 많이 오면 땅에서 썩거든요. 그리고 감자라는 것은 빨리 캐서 창고에 넣고 건조를 시켜야지 조금만 잘못하면 창고 안에서 다 썩거든요.

최민석: 예 맞습니다. 저의 집에도 감자를 좀 많이 사다 놓으면 바로 썩더라고요. 북한이 대홍단 감자농사에서 성공했지만, 그 동안 거기서 무슨 사랑의 전설 같은 게 많이 생겼다고 하던데, 어떤 전설입니까,

정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홍단 일대를 무려 10차례나 시찰하면서 공식 매체에 알려지지 않은 민간 전설이 참 많은데요, 몇 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어떤 전설인가요?

정영: 먼저 현지 구호 판에 관한 전설인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느 날 대홍단 감자밭을 현지지도하다가 입구에 세워진 구호 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최민석: 거기에 뭐라고 써있길래 깜짝 놀랐습니까?

정영: 거기에 “감자는 흰쌀과 같습니다. 김정일”이라고 씌어진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저거 누가 세웠는가?”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홍단군 책임비서가 너무 바빠 어쩔 바를 몰랐다고 하는데요, 왜냐면 김 위원장이 어떤 날벼락을 칠지 모르니까요,

그 말은 분명히 김 위원장이 대홍단에 왔을 때 한 말을 수첩에 받아 썼는데, 그걸 구호 판에 쓴 거지요(웃음).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기억을 못해가지고, 당장 철거하라고 해서 철거된 사연이 있습니다.

최민석: 그 책임비서가 굉장히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정영: 아마 책임비서가 오래하지 못하고 (철직)좌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웃음)

최민석: 참 억울했겠군요.

정영: 그 말을 군당책임비서가 김 위원장을 따라다니면서 수첩에 받아 썼는데, 그런 말 한적이 없다고 잡아떼니 돌아버리는 거지요.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대홍이와 홍단이라는 이름에 관한 사연입니다.

최민석: 북한 노동신문에도 “대홍단의 참된 주인, 기둥으로”라는 기사에서 대홍이와 홍단이가 언급이 되었네요. 이게 무슨 말인가요?

정영: 노동신문 기사에서 보듯이 대홍이와 홍단이라고 하면 온 나라에 모르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게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서 그런데요, 그래서 대홍단에 대홍이와 홍단이가 너무 많아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민석: 그러면 어떻게 대홍이와 홍단이가 많아지게 되었습니까,

정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8년 10월 1일 대홍단 벌에 갔다가 무연한 감자 밭을 보고, 이제 제대군인 1천여명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해 1998년에 제대군인 1천명이 양강도 대홍단군으로 무리 배치되었습니다.

최민석: 북한군 1천명이 10년동안 군대복무를 하고 끝나니까, 다시 감자 밭으로 투입된 거군요. 집에도 못 가구요. 한국 같으면 2년 동안 군대복무하고 수해현장에 가서 복구하라고 하면 그래도 화가 날 지경인데요. 이거 정말 대단하네요.

정영: 정말, 평양시와 평남도 등에서 쌀만 먹고 자란 제대군인들은 대홍단 산골로 안 가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방침 제대’에 걸려 할 없이 양강도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일부 제대군인들은 휴가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가 하면 일부는 아프다고 49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49병원은 북한에서 정신질환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인데요, 거기서 환자들과 함께 입원해 있는 사태까지 벌어졌거든요.

최민석: 그만큼 감자를 캐고 싶지 않다는 소리군요.

정영: 그러던 중 김정일 위원장이 대홍단군을 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 제대군인 아내가 “이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을 했다고 합니다.

최민석: 아, 주민들이 김 위원장 앞에 가서 이렇게 말을 해도 됩니까?

정영: 원래 못하게 되었거든요.

최민석: 그러면 왜 그렇게 애기하게 되었습니까?

정영: 아무래도 김 위원장이 감자혁명이라고 하면서 대홍단에 애착을 쏟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대군인 아내도 어려움 없이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작명을 요청한 거지요.

최민석: 정말로 돌발적인 상황이로군요.

정영: 아닌 게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도 사전에 예고 없이 당한 질문이라 이름을 짓지 못해 한참 동안 끙끙거렸다고 합니다.

최민석: 아이고, 주변에 있던 간부들이 굉장히 당황했겠네요.

정영: 간부들이 몸들 바를 몰라 하다가 김 위원장이 돌아간 다음에 돌발적으로 질문했던 제대군인 아내에게 “왜 그런 준비시키지도 않은 질문을 장군님에게 했는가?”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숙소로 돌아가다가 문득 무릎을 탁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따,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라 짓고 딸을 낳으면 홍단이라고 지어라”하고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겁니다.

최민석: 아, 그때서야 이름이 생각난 거군요.

정영: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대홍이와 홍단이란 이름을 누구네 아이에게 지어주라고 꼭 찍어준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이 돌아간 다음에 그 마을에서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대홍이와 홍단이란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최홍단, 박홍단, 이홍단 뭐 이렇게, 홍단이만해도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했고, 대홍이만해도 박대홍, 양대홍, 최대홍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학교 출석부에는 대홍이와 홍단이란 이름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들도 헷갈렸는데요, 게다가 성씨까지 같으면 이름 앞에다 번호를 붙인다고 합니다. 1번 최대홍, 2번 최대홍 이렇게 이름 앞에다 번호를 붙여야 된다고 합니다.

최민석: 참, 간부들이 그 여인한테 이름을 전달해줬어야 하는데, 이것을 그냥 이름만 말해버렸으니까, 제대군인들에게 앞으로 태어날 애들한테 대홍이와 홍단이라고 지우라고 했으니, 혼란이 생겼군요.

정영: 김정일 위원장이 그 이름을 누구의 아이에게 지어주라고 했으면 되겠는데, 사실 제대군인들도 그 이름을 짓고 싶지요, 왜냐면 김 위원장이 지어준 이름은 아이가 앞으로 군대 가고, 대학 입학하고, 간부가 되는데, 장래문제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홍이와 홍단이 이름이 많아진 겁니다.

최민석: 김정일 위원장이 지어준 이름이라 역시 빛을 발하긴 하네요. 그 1천 여명에 달하는 제대군인들이 모두 대홍이와 홍단이 이름을 붙였다면 정말 대홍단 벌에는 다른 이름이 발 붙일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