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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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까발려 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최근 북한 당국과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북한 선전 매체들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내부에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 같은 비인간적 인권유린 행위가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해오던 북한이 국방위원회, 외무성, 심지어 학계 논문까지 총동원하여 전방위적으로 나서는 양상을 두고 언론은 ‘김정은 구하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왜 북한이 이렇게 ‘김정은 구하기’에 나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최민석: 오늘 시간에는 북한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해 노동당과 군부 등 지도부가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공세로 나오고 있다는 내용을 다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먼저 북한의 반응부터 정리해주시죠.

정영: 북한이 최근 국방위원회 성명을 발표하고, 학계까지 동원해 국제사회에서 제기하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적극 반격하고 있는데요, 먼저 25일에 발표된 국방위원회 성명부터 살펴보시죠.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극악무도한 인권소동을 무자비하게 짓뭉겨 버릴 것이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성명에서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인권 공세가 극단의 지경에 이른 이상 그 관계세력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호의 용서도 없이 대를 이어 가장 처절하게 결산한다는 것을 미국에 정식으로 통고한다”고 성토했습니다. 이른바 힘으로 대북 인권 공세를 막겠다는 으름장인 셈입니다.

거기에 북한의 학계도 나섰는데요, 2014년 8월에 발행된 북한 계간학술지 사회과학원 학보는 ‘개인을 국제인권법 당사자로 보는 견해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에서 국제인권법으로 개인을 직접 제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현재 유엔무대에서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노동당과 군부 등 지도세력을 국제형사 재판소에 넘겨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한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민석: 이미 우리 방송을 통해 여러 번 취급되었지만, 청취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지금 북한인권 문제가 어느 지경까지 왔습니까,

정영: 아시는 바와 같이 유엔 인권이사회는 올해 3월 북한 인권침해 가해자들을 국제 법정에 넘긴다는 내용의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에는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를 반 인권행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한다”는 유럽연합(EU)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이 유엔에서 비공개 회람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반격에 나섰는데요, 그것도 분명 방어 보다는 공격을 구사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먼저 북한 당국은 외교 무대에 외무성 관계자들을 등장시켰는데요, 북한 유엔대표부는 10월 2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토론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참가자들과 설전을 벌였는데요, 그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불공정하게 만들어졌다”, “거기에 우리 최고 지도부가 인권 유린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참석했던 북한 대표는 마이클 커비 전 COI 위원장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거기서 최고지도부를 거론했다는 것은 김정은이 유엔사법재판정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간접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정영: 그리고 북한의 유엔대표부 장일훈 차석대사도 최근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잇따라 갖고, “자꾸 우리 수뇌부를 걸고 드는 데는 우리는 진짜 참기 힘들다”고 언급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행보가 김정은 구하기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북한이 인권 관련 대화를 안 해 왔지만 이제 성의를 보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민석: 정말로 급해진 모양입니다. 결국 김정은을 북한인권 탄압의 주범으로 몰아가니까, 북한 정권이 마지못해 나서는 모양새가 되었는데요, 그런데 김정은은 불안한 거예요. 정말 법정에 설 까봐.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정치범 수용소나 공개 처형과 같은 북한의 해묵은 인권탄압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영: 김정은 제1위원장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정치범 수용소나 공개처형 같은 것은 내가 먼저 시작한 거 아니지 않는가? 그건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것인데, 내가 왜 그 책임을 지고 유엔사법 무대에 서야 한단 말이냐?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을 대를 이어 계승하지 않았습니까,

최민석: 그렇지요. 왕조 정권이지요.

정영: 그래서 연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김정은은 집권 이후에도 정치범 수용소를 계속 운영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고모부 장성택도 자기 앞에서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고 불경죄로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인권탄압의 한 예가되기 때문에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고 유엔무대에서는 보고 있는 거죠.

최민석: 최근에는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을 증언한 탈북자들의 북한 내 생활을 날조하는 식으로 폭로하지 않습니까,

정영: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유엔국제무대에서 증언한 탈북자 신동혁씨의 북한 내부 생활을 동영상으로 두 편이나 공개했습니다.

최민석: 아, 신동혁씨와 관련된 내용이요. 어떤 내용입니까,

정영: 신동혁씨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일하기 싫어했고 북한에서 죄를 짓고 도망쳤다 그런 내용으로 폭로했습니다.

최민석: 정치범이 아니고 일반 범죄자라고 하는 군요. 이런 것을 보면 북한이 참 유치합니다. 예전에는 낙서 같은 것을 해놓고 때려잡자라고 하더니….이렇게 유치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누워서 침밷기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 텐데요. 현재까지 북한이 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바빠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영: 북한이 이렇게 가만 있다가는 김정은과 그의 추종세력인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책임 있는 인물들이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서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최민석: 왜 그런거죠.

정영: 과거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섰다가 감옥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밀로세비치는 이른바 ‘대 세르비아 국가를 창설한다’는 구호 아래 약 20만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인데요,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는2002년에 밀로세비치를 재판정에 세웠는데, 그는 4년간 재판을 받아오다가 2006년에 헤이그 유엔 교도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최민석: 아, 형이 집행되었군요.

정영: 북한 김정은도 이처럼 밀로세비치 처럼 같은 운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게 판례나 전례가 없었으면 걱정을 안 하겠는데, 있었으니까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런데 김정은을 실제로 유엔형사재판정에 세우는 것이 가능합니까,

정영: 밀로세비치는 전쟁범죄자였지요, 그러니까 전쟁 중에 국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지만, 김정은은 평화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장성택을 처형하고, 특히 탈북자들이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나가는 탈북자들을 3대 멸족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최민석: 우선 탈북자가 두만강을 건너갈 때 발포하라고 명령한 것은, 그건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정영: 국제사회는 앞으로 북한에서 전쟁이 나거나,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북한 정권이 자기 국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학살한다면,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북한 당국이 정치범 수용소의 죄수들을 학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유엔주도하의 국제연합군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최민석: 미국에서 최대 흥행작으로 꼽히는 ‘라이언의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문득 떠오릅니다. 이 영화에서는 2차 세계대전시기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미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특수부대 군인들이 들어가 싸우다가 수십 명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이지만, 김정은은 자신을 보호하라고 정치, 군사, 외교 심지어 학계까지 총동원했습니다. 이러한 ‘김정은 구하기’ 운동이 과연 성공할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