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는 어떤 주제를 풀어볼까요?
정영: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7일 항일빨치산 1세대인 리을설 인민군 원수가 폐암으로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전우이자, 김씨 3대에 충성한 리을설을 기리기 위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자신이 직접 국가장의위원장이 되어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습니다. 하지만,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오일정 노동당 민방위부장 등 빨치산 2세들이 장의위원에 포함되지 않아 실각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석: 최룡해 당비서가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빠진 것이 오히려 사망한 당사자인 리을설 보다 더 큰 화제가 되고 있지요? 자, 한국언론에서 어떻게 보도되고 있습니까,
정영: 그렇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8일 리을설 국가장의위원회가 조직되었다고 171명의 의원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위원장은 김정은 제1비서로 거명됐고요, 2위는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3위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4위는 박봉주 총리 이런 식으로 권력 순위대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9번째로 거명되어야 할 최룡해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오일정 노동당 민방위부장 이름도 빠졌고요. 그 외 한광복 노동당 과학교육부장, 안정수 노동당 경공업부장도 빠졌는데요, 이에 따라 한국언론은 항일빨치산 2세들에 대한 대대적인 제거가 시작되지 않았냐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결국 리을설 국가장의위원 명단이 북한의 권력구도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군요.
정영: 그렇습니다. 북한이 간부들의 신상 변동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장례식 때 발표되는 장의명단을 통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례로 2013년 12월 김국태 노동당 검열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장성택 이후에 사라진 북한 고위 간부들의 동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또한 과거 숙청된 것으로 파악됐던 인물들도 여러 명 확인되었는데요, 대표적으로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이 숙청된 것으로 올해 5월(한국 국정원) 알려졌지만, 장의 위원에 이름을 올렸고, 정명도 전 해군사령관도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민석: 그러면,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누구라고 볼 수 있습니까,
정영: 아무래도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장의명단에서 빠지면서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한국 정보당국이나 한국 언론의 분석인데요. 왜냐면 한때 최룡해는 북한의 2인자라는 소문까지 났던 사람입니다.
그는 김정은 후계시절부터 든든한 후견세력이 되어주었는데요, 북한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하기 전에 후계자 김정은에게 ‘장성택 보다 최룡해를 더 믿고 의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룡해는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던 시기에 인민군 총 정치국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었습니다.
또 장성택 행정부장을 칠 때도 최룡해가 주동이 되어 쳤기 때문에 어찌 보면, 김정은과 혈육만큼 가깝다는 애기가 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의명단에서 최룡해와 오일정이 빠지자, 한국 언론은 “항일빨치산 2세들 토사구팽 당했나”라는 의혹을 표시했습니다.
최민석: 일리가 있는 분석 기사 같습니다. 항일빨치산 출신의 장례식에 빨치산 2세가 안 보인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정영: 한국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권력구축에 일등공신을 했던 빨치산 2세들을 ‘용도폐기’하지 않냐는 지적도 하고 있는데요,
박형중 남한 통일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조선일보에 이렇게 밝혔는데요, 김정은 제1비서가 지금까지는 독자적 세력구축이 가능한 인물들을 순서대로 제거해왔지만, 이제는 빨치산 2세들을 최후에 각개격파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왜냐면 항일빨치산 세력은 김일성 시대부터 보필을 잘 받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도 권력구축 기간에는 운명을 같이 하다가 지금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자, 각개 격파하고 있다는 겁니다.
최민석: 김정은 제1비서가 빨치산 2세에 많이 의존한다는 보도는 이미 나가지 않았습니까,
정영: 김정은 제1비서가 빨치산 2세대들을 전격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장성택 숙청 이후부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은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띄우기 위해 최룡해의 부친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을 대대적으로 띄었습니다.
최현은 김일성의 빨치산 전우이자, 1950년대 김일성을 도전해 나섰던 소련파와 연안파에 권총을 들이 대면서 옹호했던 충신입니다. 그래서 북한 텔레비전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 ‘혁명가’를 만들어주었고, 최근까지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후계자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백옥’도 만들어 방영했습니다. 이는 권력기반이 빈약한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 항일투사들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민석: 그런데 빨치산 2세들이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지금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정영: 지금 북한의 간부 층이 젊은 세대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정권은 자기 권력 기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는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도 살 얼음장을 걷는 심정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민석: 이런 것을 두고 항간에서는 ‘토사구팽’이라고 하지요?
정영: 청취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토사구팽’이라는 단어를 좀 설명해보면요, 사냥꾼이 사냥개를 실컷 써먹다가 나중에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가 더 이상 쓸모 없게 되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정말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써먹고, 필요 없으면 가차없이 차버릴 때를 비유하는 말인데요, 원래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함께 나누지 못한다고 말이 있습니다. 더욱이 남한의 정치인들은 일선에서 물러나면 집으로 가면 되지만, 북한은 왕조국가이기 때문에 간부들은 숙청을 당하기 쉽습니다.
최민석: 그런데 북한이 워낙 변동이 심한 체제라, 혹시 최룡해 이름이 실수로 빠지지 않았을까요?
정영: 남한에서 최룡해 실각설이 나온 이후에 북한 중앙텔레비전은 최 비서의 과거 영상을 계속 방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하나의 연막으로 보이는데요,
실례로 북한이 지난 4월 30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즉결 처형한 다음에도 중앙텔레비전은 한동안 현영철 부장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최룡해 비서가 병 치료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낮아 보입니다. 왜냐면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는 현재 암투병을 받으면서 바깥 출입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장의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때문에 최룡해나 오일정의 누락은 실수가 아니라 실각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고 한국언론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렇습니다. 북한의 장의위원 명단을 놓고 고위 간부들의 거취를 판단해야 하는 사회가 바로 북한입니다. 이번 공개는 북한이 얼마나 폐쇄적인 사회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드러내 보였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