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짚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은 최민석 사회자를 대신해 이원희기자가 진행합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수립에 합의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변을 두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미국의 대패, 쿠바의 대승리”라고 비평하면서, 앞으로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습니다.
전후 사연을 무시한 북한 관변매체의 이러한 아전인수식 평가는 미북 관계를 고대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과 쿠바가 관계개선에 합의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또 북한이 처한 상황은 어떤지 조명하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원희: 역시 지구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53년간 숙적이었던 쿠바가 미국과 손을 잡는데 북한만이 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는 보도는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왔지요?
정영: 그렇습니다. 미국과 쿠바가 지난 12월 17일 국교정상화에 합의한다는 보도는 전세계를 들썩이게 하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음성 녹취: 쿠바에 대한 고립정책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특별 성명에서 “미국은 대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고 선언하고,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즉각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개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원희: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정영: 북한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요. 다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9일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합의가 “미국의 대패, 쿠바의 대승리”라며 비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북미관계에 어떤 결과가 있을 지 정세 추이가 주목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조선신보 논평이 북한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지난 기간 조선신보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북한도 상당한 기대와 또 고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이원희: 조선신보가 주장하는 대로 오바마 대통령이 사실 미국의 대쿠바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말로도 들릴법하네요.
정영: 오바마 대통령이 그날 연설에서 “미국이 그동안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히긴 했습니다만, 이는 쿠바 지도자 라울 카스트로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조선신보가 언급한 대로 미국이 정말 쿠바 정책에서 패배했다면 당장 뭔가 눈에 보여야 하는데, 미국이 쿠바와 친하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 본 것도 없고, 약해진 것도 아니고 여전히 초강대국으로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습니까, 결국 미국이 국제사회에 동참하려는 쿠바 정부의 체면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고 보는 게 적합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원희: 미국과 수교에 합의하기까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노력도 빼놓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정영: 조선신보가 쏙 빼놓은 점이 바로 이 문제인데요, 카스트로 의장은 지난 집권 7년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걸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영어로 불렀어요. “오바마 대통령, 난 카스트로요”라고 말해서 전세계를 놀래기도 했습니다.
이원희: 카스트로 의장이 다자 외교 정상 무대에도 참가했군요.
정영: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외국 무대에 한번도 나가지 못하고 북한 내에서만 돌 때도 카스트로 의장은 외국 방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또 쿠바는 손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류가 북한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기로 합의하기 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역할도 컸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호상 억류되어있던 사람들을 호상 석방하도록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 억류됐던 사람들의 교환이 결국 국교정상화의 열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권고를 두 나라 정상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후에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갖고 국교 정상화와 정보요원 맞교환 문제를 최종 타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원희: 그걸 보면 북한과 비슷하군요. 얼마 전에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들이 석방되지 않았습니까,
정영: 북한도 이걸 보면서 역시 미국인 억류가 미국과의 대화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질 교환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절대적인 해결방도라는 점은 아닙니다. 왜냐면 쿠바는 국제사회 일원으로 되기 위해 미국과 협조를 잘 했습니다.
왜냐면 쿠바는 지난 50여년간 장기간에 거친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쿠바 국민들은 가난에 쪼들렸습니다. 거기다 핵전쟁 공포까지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2006년 정계에서 은퇴한 피델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집권한 라울 카스트로는 피폐해진 쿠바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제사회 일원으로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겁니다.
이원희: 이걸 보면서 북한 당국자들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희망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정영: 물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미국과 북한이 한 합의가 있었지요. ‘제네바 합의’나 ‘2.29합의’ 도 있었고요, 그러나 북한이 일방적으로 차버리니까, 미국에서도 “이거 신뢰가 없는 나라네?”라고 인식하면서 보류되어왔고, 또 북한이 ‘최고존엄’을 지킨다, 지난해는 핵무기로 미국본토를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습니까, 이때 미국인들이 상당히 화가 났었는데요. 북한이 좀 협조적이어야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가능할 텐데 도발을 자주 하니까, 솔직하지 못하다는 정평이 나있습니다. 미국정부는 쿠바와 수교를 합의하면서도 북한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분명히 표시했는데요.
왜냐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해서 유엔안보리에서 제재를 받지 않습니까, 이와 달리 쿠바에는 핵무기가 없습니다.
이원희: 그게 제일 중요한 차이점이지요.
정영: 미국이 왜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우리 방송에서도 언급이 되는 문제지요. 만일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조건에서 미국이 수교를 하면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우려입니다. 너도 나도 핵을 가져도 된다는 나라들이 나타나면 국제질서가 깨지기 때문에 그래서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얼마 전에도 미국의 영화사를 사이버 테러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미국 정가에서는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가 명단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혼자서 고립되게 되고,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원희: 아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북한 청취자들도 상당히 궁금할 거라고 보여지는데요.
정영: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북한 주민들도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도 미국과 친하는 데 그럼 우리는 뭐야?”하는 궁금증이 나올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도 미국과 북한이 수교한다는 소문이 북한에서 떠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국경지방에 갔을 때인데요, 그때 친구가 자유아시아방송을 듣고 있다가 하는 말이 “이제 조금 있으면 조선과 미국이 키스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그 말인즉 1990년대 초에 영변 핵시설 동결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맺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미국이 북한에 식량과 원유를 지원하고 있던 때인데, 당시 미국이 평양에 대표부를 개설한다는 소문이 나지 않았습니까,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방문 직전까지 갔지만, 북한이 몰래 핵무기 생산을 지속하면서 결국 미국과의 수교는 불발에 그쳤습니다.
이원희: 북한 주민들도 가난의 고통을 끝장내고 잘살려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우선일 듯 한데요,
정영: 현재 북한은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까지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게 되면서 ‘국제적 외톨이’로 됐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나쁘고, 미국과 한국에 대고는 ‘판가리 싸움’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요. 결국 러시아에 가 붙었는데, 러시아가 요즘 유가 하락으로 국가부도상태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국가부도라는 것은 돈이 없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요. 그래서 올해 겨울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은 더해지고 추운 겨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원희: 그렇습니다. 주민들이 배곯지 않고 잘 살려면 지도부의 선택이 중요한 때입니다. 북한도 주민의 현실은 외면한 채 핵무장에만 진력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정영기자 오늘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