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정: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양윤정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지난 22일 조선중앙통신이 북한 외무성 산하 연구소가 작성한 연구자료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제목은 ‘남조선괴뢰당국이 해외에서 벌리는 비열한 반공화국 모략책동의 진상’인데, 남한 정보기관이 외국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의 귀순공작을 집요하게 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 자료를 발표한 것은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한국으로 귀순한 뒤, 동요를 느끼고 있는 북한 외교관들이나 무역대표부 일꾼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위층 탈북이 남한 정보기관의 귀순공작이라는 세계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면서 알아보겠습니다.
양윤정: 태영호 공사가 귀순한 다음 북한이 이를 내부 문제로 보지 않고, 남한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비난하고 있군요. 정기자, 먼저 북한의 연구자료를 청취자 분들에게 소개해주시죠.
정영: 북한이 이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했지만,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하는 노동신문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볼수 없습니다.
이는 대외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선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외교관들과 무역대표부 일꾼들에게 뛰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 자료에는 먼저 “남조선 정보기관이 최고존엄(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비방 중상하는 내용과 탈북 선동하는 출판선전물과 편지, 전자매체들을 우편물과 이메일을 통해 세계 각국과 지역에 상주하는 외교관들과 무역대표부 일꾼들과 자녀들에게 대대적으로 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일부 대북민간단체 관계자들이 북한 대표부에 탈북을 선동하는 내용을 담은 SD카드, 즉 타치 폰(스마트폰)에 끼우는 내장 카드를 한국 잡지에 끼워 우편으로 보냈다는 것, 그리고 어떤 탈북자는 자기와 안면이 있는 북한 대표부 일꾼들에게 전화를 걸어 계속 만나자고 귀순을 회유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또 남한 정보기관 요원들이 해외 일꾼들을 집요하게 미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연구자료는 이 활동들이 모두 국정원의 배후 하에 진행되고 있다면서, 현재 북한 공민들을 상대로 벌리는 “탈북유도 경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양윤정: 북한이 태영호 공사가 한국으로 귀순한 다음 고위층 탈북에 불안을 느낀 것 같군요.
정영: 북한의 이러한 대남비난은 며칠전 태영호 공사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것과 때를 같이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는 남한으로 귀순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전 공사를 사회에 공개했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지난 7월 탈북해 한국으로 입국한 뒤, 지금까지 5개월 가까이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요, 그는 탈북 동기에 대해 “북한 김정은의 폭압적인 공포통치 아래 노예 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습니다.
양윤정: 그동안 태영호 공사에 대해 침묵하던 북한이 그가 한국 언론에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해 비난전을 시작한 것이군요.
정영: 북한은 지난 7월 태영호 공사가 탈북한 뒤 사흘만에 논평을 발표하고, “최근 박근혜 역적패당은 영국주재 대표부에서 일하다가 자기가 저지른 범죄행위가 폭로되자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자를 남조선에 끌어들이는 비렬한 놀음을 벌려놓았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태공사는 “북한에서 그렇게 모략할 줄 알고 귀순 전에 영국대사관 내 자금 사용 현황을 정산하고,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밝혔습니다.
양윤정: 오늘 주제가 자연히 태영호 전 공사의 이야기로 되었는데요, 태 전 공사가 이미 자신에 대해 모략선전을 할 것으로 알고 사진을 미리 찍어놨다는 거군요.
정영: 그러니까, 자신이 당당하는 증거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23일부터 대외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북한 주민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을 바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공개 강연, 탈북자 단체와의 만남, 언론 인터뷰 등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윤정: 태영호 공사는 탈북을 할 때 자녀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말했다는데, 그런 고위층들도 노예라고 생각할 정도면 북한의 고위층 상황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정영: 태 전 공사는 귀순 당시 아들들에게 “이 순간부터 너희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해서는 남한 실상을 보고 “왜 진작 용기 내서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양윤정: 일반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도 아니고, 북한 고위층 자녀도 노예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네요.
정영: 외부 사회에서는 북한 엘리트라고 하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정은 체제 들어 130여명의 고위급 간부들이 자녀들과 함께 처형되는 사실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외에 파견된 간부들은 소환령이 떨어지면 과연 북한에 들어가서 어떤 처벌을 받을지 심각한 압박을 받는다는 겁니다. 어떤 고위 탈북자는 “김정일 시대에는 과오를 범해도 최소 혁명화 처벌을 안겼지만, 지금 보위부와 김정은 경호부대는 무자비하게 처형하기 때문에 탈북을 단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양윤정: 태영호 공사가 탈북해서 해외 일꾼들에 대한 감시가 더 강화됐겠군요.
정영: 북한은 태영호 공사가 탈북한 다음 파장을 막기 위해 해외 파견 일군들에 대한 감시를 몇배로 감시했습니다. 김정은은 태영호 전 공사 탈북 이후 그 책임을 물어 보위성의 조직부부장(차관급)과 해외반탐국 국장 2명, 과장급 4명 등을 숙청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부부장급(차관급) 간부만 되어도 평양의 간부 아파트 단지에 이사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집집마다 도청장치를 다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외교일꾼의 경우에도 외출할 때는 누구를 만나고, 언제 어디서 만났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또 서로 감시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 같이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안전대표라고 하는 국가보위성 요원에게 걸리면 강제송환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양윤정: 간부들까지 혹독하게 처벌하는데, 앞으로 고위층 탈북이 더 늘어날 수 있겠네요.
정영: 북한 김정은 정권은 현재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한 김정은은 북한 내부에 자신의 기반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김일성 김정일만큼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북한을 다잡아야 하는데, 그럴 기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김일성 흉내 내기를 한다고 태공사는 밝혔습니다. 김일성과 찍은 사진도 한장 없기 때문에 간부들도 “진짜 백두혈통이 맞냐?”는 정통성 의심을 한다고 합니다.
양윤정: 그렇게 감시가 심하면 해외에 상주하는 북한 일꾼들의 동요도 심각할 텐데요.
정영: 현재 북한 해외 파견 일꾼들은 태영호 공사 탈북 이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탈북했을 당시 북한 간부들 속에서 일었던 동요가 다시 일고 있다는건 데요, 일부 일꾼들은 남한 정부기관이나 미국 정부기관과 연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탈북했을 경우, 어떤 대우를 받을 지,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윤정: 그런 우려는 태영호 공사의 경우를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영: 태 공사의 탈북은 북한 엘리트에게 많은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북한에는 2인자가 없기 때문에 김정은 한 사람만 어떻게 되면 완전히 통일된다”면서 “북한 엘리트층과 김정은 측근들이 정변이 일어났을 때 중국으로 도망갈까봐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북한 엘리트들이 한국 사회에 와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급변 사태 시 중국 등 제3국으로의 대량 탈출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북한 엘리트층이 안심하고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남한이) 법과 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양윤정: 간부들의 생각이 이렇다면, 북한 정부도 정말 진퇴양난에 빠졌겠네요.
정영: 현재 북한은 세계 40여 나라에 대사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외 무역대표부들도 적지 않은데요, 이들이 동요한다고 해서 모두 본국으로 들어오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조선 당국이 계획적으로 귀순공작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양윤정: 남한당국이 회유한다고 해서 가족 친척이 있는 북한을 떠날 고위층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김정은의 공포 정치가 싫어서 떠나지 않겠습니까,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