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에서 이름만 바뀐 ‘국산화’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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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요즘 북한 선전매체들이 ‘국산화’된 제품들이 여기저기서 생산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대외선전용 웹 사이트 ‘조선의 오늘’은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완전히 국산화된 가방이 생산됐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류경치과병원에서는 임플란트, 그러니까 잇몸에 인공치아를 이식하는 기술도 국산화 시켰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에서 과연 국산화가 가능한지, 또 국산화를 왜 이렇게 요란하게 강조하는 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북한에서 자체로 질좋은 국산품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한 지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최근 북한 매체가 국산품을 장려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정영: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국산품을 부쩍 강조하자, 북한 매체들이 잇따라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선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조선의 오늘’이 보도한 내용인데요, 2월 1일자 기사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국산화 된 멋진 가방들을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고, 심지어 류경치과병원에서는 인공치아를 잇몸에 고정시키는 기술도 국산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민석: 김 제1비서가 언제부터 국산화를 들고 나왔습니까,

정영: 김 제1비서는 2014년 8월 천지윤활유 공장을 찾아가 “원료와 첨가제의 국산화비중을 높이라”고 지시하면서 표면화 됐습니다. 이 공장은 원래 장성택 산하에 있던 승리무역회사가 소유하고 있었지만, 장성택을 숙청하고 빼앗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2014년경에는 간부들에게 외국 담배를 피우지 말고 국산담배를 피우라고 지시했어요. 그때부터 북한에서는 국산품 바람이 대대적으로 불었습니다. 김정은은 그 후 경제부문 어딜 가든 무조건 국산화를 실현하라고 밀어붙이고 있는데요,

북한 선전매체는 얼마 전에는 북한에서 자체로 생산된 ‘내고향’ 국산브랜드를 외국의 유명 운동복 브랜드인 ‘아디다스’나 ‘퓨마’와 견주기도 했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내고향’이 북한의 운동복 상표이름이군요. 그런데 얼마나 좋길래 외국 브랜드와 비교합니까,

정영: 김정은이 운동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세계적인 운동복 브랜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이유에선지 세계적인 운동복과 똑같은 국산품을 만들라고 지시를 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기술과 경제 형편으로는 국산화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게 탈북자들의 견해입니다.

최민석: 북한 주민들이 아디다스라는 상표를 압니까,

정영: 아디다스는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의 귀족층 자녀들 속에서는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아디다스 축구공을 가지고 있으면, 좀 괜찮게 사는 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민석: 1980년대 중반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군요.

정영: 아디다스나 퓨마의 경우 원단이 좋습니다. 특수재료를 썼기 때문에 땀을 잘 흡수하고 통풍이 잘됩니다. 김정은은 이걸 본받아서 국산품도 그만큼 질 좋게 만들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민석: 정영기자, 그러면 북한에서 그런 좋은 고급원단을 해외에서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까,

정영: 김정은이 요구하는 것은 원단, 가죽 이런 것들을 다 북한 자체에서 생산하라는 소리거든요. 김 제1비서는 지난 달 28일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시찰하면서 “학생용 가방들이 볼수록 멋있다”면서 “형태와 색갈이 다양할뿐 만아니라 편리성, 기능성, 미학성 등 모든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제품들과 당당히 견줄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외용 웹사이트 ‘조선의 오늘'도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생산하는 가방용천은 북한산 '데트론인견실'을 이용해 만든 완전 국산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민석: 그러면 북한자체로 무두질 같은 것들을 다 자체로 생산한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정영: 그런데 북한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그런 고급 원단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단을 중국에서 들여다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데요, 왜냐면 원단을 만들자면 재료와 전기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원료도 없는데다, 열악한 전기 사정 때문에 전압이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정격전압이 220볼트는 공급되어야 하는데, 공장에 공급되는 전압, 그리고 주민용 전압은 겨우 150볼트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전동기가 제 마력을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장에서는 전압이 떨어지면 오작품이 나오기 쉽습니다.

최민석: 그리고 북한 자체로 지금까지 원단이라고 생산한 게 있었지요? 비날론이라고요. 그걸로 운동복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정영: 어렵지요.

최민석: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유럽처럼 최고급의 원단을 생산한다? 많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김정은 제1비서는 국산화를 강조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까,

정영: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국산화에 집착하는 이유, 첫째는 요전에 4차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핵실험으로 인해서 국제적인 제재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이나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겠다, 자기네가 그 제재에 관계없이, 끄떡없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국산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라고 한국언론은 보도했고요.

최민석: 스스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군요. 그런데 그게 어렵지 않나요?

정영: 그렇지요. 둘째로 김정은 제1비서가 경제분야에서 업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기가 경제를 살렸다고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국산품을 장려하고 있다고 한국언론은 보도했습니다.

최민석: 김정은이 요즘 하는 국산품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나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하던 주체섬유와 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방금 우리가 비날론 소리도 했는데요.

정영: 김정은 제1비서의 아버지 김정일은 생전에 ‘주체’라는 말을 하다가 말았지요. 이른바 ‘주체섬유’, ‘주체철’ 그리고 자력갱생을 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지요.

최민석: 예, 끝에 가서는 강성대국 만 줄기차게 외쳤지요.

정영: 그리고 김정은 제1비서가 요즘 ‘자강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것 또한 아버지가 하던 ‘자력갱생’의 뒤집은 말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김정일은 ‘주체철’ ‘주체섬유’라고 하다가 말았고, 그의 아들 김정은은 국산화를 또 들고 나오고 있군요. 말만 바꾼 거죠.

정영: 지금 ‘주체’라는 말이 사실 고립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지금이 어떤 사회입니까, 지구촌이라고 온 세계가 하나의 인터넷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까,

최민석: 가장 요즘 쉽게 들리는 말이 지구촌이라는 말이지요.

정영: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지구 반대편인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바로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시대인데, 온 세계가 한 동네처럼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외부와 차단하고 주체나 국산품을 고집하고 있는데, 스위스 유학까지 했다는 김 제1비서가 왜 그런 고립의 길을 가고 있는 지 안타깝게 느껴질 뿐입니다.

최민석: 김정은도 외국제품을 좋아한다고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정영: 예, 김정은은 외국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브랜드를 잘 알지요.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미국 애플사가 만든 컴퓨터를 자기 집무실에서 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3년인가, 북한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니 그의 책상 앞에 애플 컴퓨터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 언론이 보도한 데 따르면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도 외국산 가방과 화장품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더욱이 북한 간부들은 외국산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합니다.

최민석: 예, 북한은 자체로 뭔가를 만든다고 줄기차게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자체로 이루지 못하고 있군요. 결국 김정은 제1비서가 국산화를 실현하려면 자기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부터 국산제품으로 바꾸어야 하는 겁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