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군 전투비행사들과 백두산에 오른 뒤, 북한 매체는 ‘혁명적 신념’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신념의 글발을 심장마다에 쪼아박자”라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고 있는데요, 왜 북한 매체가 이렇게 신념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북한 매체가 ‘혁명적 신념’을 떠드는 이유, 그 이면을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북한 매체의 보도 동향을 좀 알려주시죠.
정영: 지난 노동신문 4월 19일자였지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전번 시간에 했지요. 노동신문이 김정은 주변에 비행사들이 많이 모인 것처럼 보이도록 사진까지 조작했다는 의혹을 남겼는데요,
이때부터 노동신문은 혁명적 신념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잠깐 살펴볼까요?
노동신문 4월 28일자는 “백두의 칼바람아 이야기하라”라는 제하 기사에서 과거 김일성 주석이 벌였다는 항일빨치산 일화를 열거하면서 그 백두의 정신을 김정은이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김 제1위원장이 백두혈통이라는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노동신문도 “혁명가의 신념이란 본질에 있어서 혁명의 수령을 믿고 따르는 마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현재 세대들에게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김 제1위원장이 백두산에 자기의 최측근들을 데리고 오른 모습이 공개되자, 외신은 “김정은 시대의 서막”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장성택을 비롯한 반대파들을 숙청했기 때문에 이제는 김정은이 남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자기가 체제를 끌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김정은 독재체제가 완성됐다는 소리군요.
정영: 하지만, 노동신문을 비롯한 그 이면을 보면 분명 뭔가 절박감이 엿보인다는 겁니다. 김정은 체제가 혁명적 신념을 강조하는 것은 외부정보에 물 젖은 4세대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4세대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20대 30대입니다. 북한당국도 혁명의 1세, 2세까지는 괜찮다고 믿고 있지만, 3세 4세에 대해서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경험이 없고, 백두혈통이 아니라는 정통성 의심까지 받는 상황에서 백두산에 올라가 한번 당기고, 혈통의 정통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는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비주류이지 않습니까?
최민석: 그러면 북한의 4세대 의식구조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정영: 우선 상위층 자녀들은 대부분 한국 드라마와 외부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 말투를 따라 하고, 옷도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입고 멋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자녀들과 가난한 계층의 자녀들은 ‘장마당세대’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국가를 대체로 믿지 않고 돈을 위주로 하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게 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신념’이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최민석: 이렇게 불안한 주민들을 거느렸는데, 혹시 김정은 체제가 공고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정영: 김정은이 지금 공포정치를 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말을 듣겠지요. 현재 김정은 체제가 친정그룹을 꾸린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은의 업적이 없어서인데요, 김정은은 알려진 대로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 없습니다.
정식 부인으로부터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스위스로 가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형 김정철과 동생 김여정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다음에야 북한에 돌아왔지요. 김정은은 공개적으로 공부도 하지 못하고, 군대복무도 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다닌 경력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시쳇말로 ‘듣보잡’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최민석: ‘듣보잡’이라면 남한에서는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인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데요, 그래서 요즘 혁명적 신념 이야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군요.
정영: 그래서 김정은 제1비서는 자기의 역사를 자꾸 만들고 있는데요, 김 제1비서가 큰 회의에 직접 나서서 육성 연설을 하고, 주요 대회에 나와 개막사와 폐막사 연설까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2013년 1월 열렸던 노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와 올해24일부터 2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서인데요,
김정은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할아버지 김일성은 자력으로 정권을 쟁취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20년 이상 김일성과 공동통치를 하면서 자기측근들로 채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김정일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갑자기 지도자가 된 김정은은 2009년 1월 부랴부랴 후계자로 공식 내정됐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집권 이후 사람을 엄청나게 숙청 처형했는데요, 그리고 아래 주민들에게는 충성을 강조하는 백두의 칼바람 정신, 혁명적 신념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런데 김 제1위원장은 지금 있는 최측근들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영: 현재 김정은의 최측근을 보면요. 백두산에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리병철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재일 당 선전부 제1부부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등입니다.
외신들은 황병서는 김정은을 대신해 군을 장악하는 일을 도와주고, 최룡해는 내부 장악을 맡고, 김양건은 대외정책을 관장하는 일을 하고, 리재일은 선전선동을 맡고, 이병철은 군사담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서 전투력 강화 전반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시절과 후계를 적극 밀었던 사람들입니다.
최민석: 그런데 황병서와 최룡해의 권력서열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정영: 황병서는 김정은의 어린 시절부터 보필해준 최 측근으로 장성택 숙청을 주도했습니다. 최룡해도 장성택 숙청을 주도한 사람인데요, 이 두 사람은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2인자였던 장성택 권력집중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위치를 조정하는 식으로 충성유도를 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렇습니다. 권력세습이 이래서 불안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불어대는 “혁명적 신념”도 결국 경험이 없는 지도자를 위해 충성하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번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