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장마당 세대’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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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자기와 쏙 닮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내세워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무장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김 제1비서는 제4차 노병대회를 열고 항일빨치산 노병들과 전쟁 노병들을 앞세우고 젊은 세대들, 즉 장마당 세대를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과연 북한 김정은 정권에 불충하는 잠재 세력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예, 얼마 전에 정전기념일을 맞아서 북한에서 대규모 정치행사들이 진행됐지요. 북한 매체에 보도된 사진을 다시 한번 정밀 분석해 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북한 매체의 사진 중에 뭐 새로 발견된 게 있습니까?

정영: 한 주간 북한 노동신문을 한번 쭉 보았는데요, 지난 주에 미처 다루지 못하고 지나친 게 있었습니다. 노동신문 20일자에 실린 사진인데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깨진 기차 바퀴를 보며 기뻐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지난 19일 지방 대의원 선거에서 투표한 김정은 제1비서가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을 시찰하고 “첨단기술이 도입된 새 세대 전기기관차를 더 많이 만들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김 제1비서가 웃는 사진을 보는 순간, 제 자신이 놀랐습니다. 하필 깨진 기차 바퀴 앞에서 웃고 있을까, 고철더미에 이미 옮겨졌어야 하는 바퀴를 놓고 웃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최민석: 이 사진을 보니까, 기차 바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박봉주 총리도 뭔가 손짓을 하는데, 뭐라고 설명하는지 사진만 봐서는 잘 모르겠군요.

정영: 이 사진을 봐도 북한의 경제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엿볼 수 있습니다. 오죽 김정은 제1비서에게 보여줄 게 없어서 고철을 보여주고 있는지, 아마 사진을 찍은 노동신문사 기자동무가 무사한 지 궁금해집니다.

최민석: 제발 무사하기를 빌겠습니다. 다음 사진입니다. 북한이 7.27휴전기념일을 맞아 여러 행사를 벌였지요?

정영: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에서 제4차 노병대회를 열었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휠체어에 앉은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 관장과 리을설 인민군 원수를 앞세우고 대회주석단으로 입장했습니다. 황순희 나이가 올해 96세입니다. 김정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싸운 빨치산 1세대거든요. 그런데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겨우 의지하는 황순희를 왜 등장시켰는가 하는 겁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그만큼 투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소립니다. 그리고 눈에 뜨게 주목되는 것은 대회장 정면에 있는 김일성 주석 사진인데요, 김정은 제1비서와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최민석: 저도 처음에 김정은 사진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네요.

정영: 저도 김정은 제1비서인 줄 알고 자세히 봤더니 김일성 사진이었습니다. 자기가 할아버지를 닮도록 한 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이 자기를 닮도록 조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는 저렇게 원수복을 입고 웃는 김일성의 사진이 없었습니다.

최민석: 아, 그러니까, 포토샵이다,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새로 꾸몄다는 소리군요. 글쎄, 어쩌면 웃는 모양이나 머리 모습이나 닮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영: 김 제1비서가 자기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한 장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와 같은 할아버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조작을 했다는 건데요, 마치 20년전에 사망한 할아버지가 다시 환생했다는 착각을 만든다는 겁니다.

최민석: 김 제1비서가 그래서 이렇게 노병대회를 열고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무장을 강조했군요,

정영: 김정은 제1비서는 대회에서 직접 축하 연설하면서 “조국 수호 정신을 새세대들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젊은 세대에 대한 사상 강조에 초점을 맞춘 것은 배급제 붕괴로 충성도가 약해진 '장마당 세대'를 다잡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장마당 세대라고 하면 1990년 대 대 아사를 겪은 세대를 말하지요? 그러면 북한에 장마당 세대가 얼마나 됩니까,

정영: 북한 인구 2천400만명 가운데 약 3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중반 시장에서 부모를 도와 장사를 하거나, 꽃제비로 살아남은 세대이기 때문에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이 많지요. 그리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외부 사조를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성향 때문에 김정은 시대에 위협 요소로 등장했다고 한국 정부는 설명했습니다.

최민석: 북한에서 그러면 김정은 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세대로 된다는 말이 되겠군요.

정영: 현재 김정은 정권은 아래 사람들을 다스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요, 자기 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 자기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무섭게 숙청했는데요, 요즘 40대의 간부들로 바꾼다고 하는데, 사실 북한에서 40~50대 사람들도 문제가 되거든요. 왜냐면 40대의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20대였고, 50대는 30대였습니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시기 온 가족을 벌어 먹이기 위해 장사를 한 사람들입니다.

최민석: 지금 40~50대는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군요.

정영: 시장에 나가 억척스레 돈을 벌었고, 장사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던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짐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보안원들과 규찰대들과 맞서 싸우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이들도 김정은 정권에 위협적인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한국의 조선일보는 최근 평양과 남포, 원산 등 주요 도시 주민들을 제외한 다른 지방의 중년층 50%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법적 제재를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지금의 40~50대도 잠재적인 소요군중이 될 수 있다는 소리군요. 믿을 수 없다, 100%다 믿을 수가 없다는 소리군요.

정영: 이 보도는 북한에서 간부를 지냈던 한 탈북인사에 의해 밝혀졌는데요, 그만큼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탈북자도 많아졌고, 전과자도 많아졌다는 겁니다.

최민석: 북한 정권에 의해 법적 제재를 받았던 사람들인데 김정은 정권에 충성할 리 만무하지요. 충성, 100% 그런 거 없다고 봅니다.

정영: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위층들의 탈북 움직임도 많아졌는데요, 90년대 탈북자들은 배가 고파 나온 사람들이라면 지금은 배는 고프지 않지만, 북한의 3대세습과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침을 뱉고 탈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민석: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시한폭탄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거죠.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할아버지의 모습을 모방해 장마당 세대를 잡으려고 하지만, 이미 떠난 민심이 어떻게 돌아올 지 궁금합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