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 뒤집어 보기] 북 사이트, 김정은 ‘1호 사진’ 대거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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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내용을 다시 뒤집어 보는 ‘북한 언론 뒤집어보기’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북한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있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사진이 상당수 사라졌습니다. 김정은의 ‘혁명활동 관련’ 코너에는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 북한 군부의 고위 장성들과 찍은 사진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김정은이 자기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많이 찍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북한의 매체에서 사라진 사진의 주인공들과 김정은의 사진 정치에 대해 알아봅니다.

최민석: ‘북한 속 북한 뉴스’로 들어가봅니다. 최근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을 보니까, 김정일 영구차를 호위했던 4인방 군부가 모두 다 없어졌어요,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지 1년만에 이렇게 4명이 완전히 날라가 버렸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정영: 오는 17일은 김정일 사망 1년이 되는 날이지요, 바로 1년전 김정일 위원장 영구차를 맨 앞장에서 호위하고 나갔던 차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별 4알을 달았던 김정각, 우동측 대장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기억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김정일 사망 1주기 행사를 크게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아마 그때 영구차 사진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 매체는 지난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됐다고 보도했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그가 ‘반당혁명분자’로 숙청됐다고 전했습니다.

반당반혁명 분자라고 하면 간첩에 버금가는 처벌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다시 재기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바로 뒤에 섰던 김영춘 차수는 지금 노동당 민방위부장을 맡아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고요,

김정각 인민무력부장과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아무런 발표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 기사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리영호보다는 좀 덜 당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최민석: 4명이 모두 최고의 군부 강경파였는데요, 북한 주민들 속에는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겠지요?

정영: 고위 군부 장성들은 김정은의 후계 세습을 보좌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배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김정은의 군부시찰에 많이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김정은이 올해 1월 1일 105탱크 사단을 시찰할 때 이영호 총참모장이 가까이에서 동행해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8월부터 리영호 총참모장 사진을 모두 회수하면서 아마 105땅크사단 군인들이 많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 있는 김정은의 105탱크 사단 시찰 기사를 보니까, 웹 기사에도 이영호란 이름이 다 사라졌습니다.

최민석: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사진을 찍으면 영광이라고 하는데요, 김정은 제1비서도 사진을 많이 찍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정영: 김정은도 사진을 많이 찍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진 정치’를 한다고 말하는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김정일 사망 1년이 된 지금까지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1월부터 올해 9월말까지 모두 8만800여명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고 한국의 동아일보가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김정은의 사진 정치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노동신문에 실린 기념사진의 사람 머리를 세어보았다고 하는데요,

동아일보는 “김정은과 사진을 찍은 8만여명이 모두 집에다 기념사진을 걸어놨다면 4인 가구 기준으로 32만명이 집에다 사진을 걸어 놓은 셈”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북한 인구의 약 1% 이상 주민의 집에 김정은과 찍은 사진이 걸려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민석: 정영기자도 북한에 있을 때 숙청당한 사람의 ‘1호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까,

정영: 예, 1990년대 초에 있은 일입니다. 남포시에 실습을 나갔는데, 당시 노동자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벽에 ‘1호 사진’이 몇 장 걸려 있더라고요.

그런데 사진을 가만 보니까 김일성을 중심으로 좌우로 4~5번째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니까 잘 몰랐는데, 처음에는 왜 이렇게 공간을 많이 두고 찍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사진에 사람의 발은 있는데 얼굴과 몸이 다 지워졌더라 구요.

최민석: 아, 그랬군요.

정영: 그래서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 자리가 당중앙위원회 김동규 부장과 유장식 대남사업 부장의 자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술을 한잔 마시고 말하는데, “자기는 김동규 때문에 여기에 내려왔다”고 한탄했습니다. 그 사람이 아마 김동규 밑에 있던 사람 같습니다. 북한은 김동규를 반당분자, 유장식을 간첩으로 몰아 숙청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술을 마시다가 분통을 터뜨리더라고요. 김동규가 간첩인줄 몰랐다고 한탄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간첩이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은 “당의 대열에 잠입했다가 적발되어 숙청되었다”고 엄청 욕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김동규는 1935년에 항일빨치산에 참가해서 김일성과 만나 고생한 항일 전우거든요.

또 김동규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지원군을 이끌고 사단장으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일성의 은인이지요. 그는 1970년대에 당중앙 위원회 정치국 위원, 비서, 1974년에는 국가부주석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하고 좌우지하자, 불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수령의 아들이 당을 쥐락펴락 한다”고 불평한 것이 제기돼 1977년에 숙청되었습니다. 북한은 그를 반당반혁명 종파로 몰아 숙청하고, 그의 사진을 모두 지워버렸더라 구요.

최민석: 그런데, 북한이 방금 말한 숙청된 사람들의 기념 사진을 어떻게 합니까,

정영: 저는 북한에서 “저렇게 김일성, 김정일 옆에 서너 번째 자리에 앉던 사람들이 숙청되면 사진은 어떻게 될까”하고 궁금했는데, 북한은 사진을 모두 회수하고 거기에 먹칠을 해서 다시 나눠주었습니다.

그것도 왜 그런가하고 봤더니 일종의 공포감, 위압감을 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평생 가보로 여겼던 1호 사진에 먹칠을 해두면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섬뜩하지요. 아마 북한도 그 사진을 완전 파기해버리지 않고 까만 먹칠을 해서 다시 걸게 하는 것도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 같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겁에 질려 다시는 수령에게 대들지 못하게 공포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민석: 예, 21세기 북한에서는 공개처형과 인민재판과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아무리 높은 간부를 하다가도 해임되면 그냥 집으로 가면 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수령의 눈밖에 나면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하고, 심하면 공개총살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가지고야, 지금 김정은 옆으로 따라다니는 간부들이 다리가 떨려서 어디 견디겠습니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간부들이 1호 사진에서 사라지겠는지, 궁금합니다.

정영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지금까지 북한 언론 뒤집어 보기였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