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뤄진다.' 오늘 소개하는 탈북 여성 김은영(가명) 씨는 한국에서 제빵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달콤하고 고소한 빵을 만드는 김 씨가 말하는 한국생활 이야기 전해 드립니다.
진행에는 저 이진서입니다.
김은영: 빵을 만들면서 그 매력에 제가 푹 빠졌습니다. 쌀 문화와 빵 문화가 서로 다르지만 세계적인 먹는 문화를 알자면 빵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빵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제대로 된 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김은영 씨가 한국에서 빵 전문가가 돼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직업훈련 학교에서 탈북자 전담반 교사로 있기 때문에 학생 대부분은 북한 출신이지만 수강생 중에는 한국 학생도 있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의 김 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3년제 의학전문학교에 다녔습니다. 1998년 북한의 식량사정이 한창 좋지 않았을 때 중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으려고 잠시 떠났던 길이 영영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됐습니다. 김 씨는 한국에서 빵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김은영: 그때만 해도 직업훈련 교사들이 와서 이런 직업이 있다고 말로만 할 때였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의 교장 선생님이 직업 훈련을 나오셔서 빵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홍보물을 가지고 나와서는 다른 기술을 배우려고 했는데 탈북자를 다 안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곳에서 탈북자 받는 다고 해서 간 것이 지금 내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김 씨가 한국의 사회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을 나올 무렵인 2005년, 한국정부가 탈북자 정착지원법을 개정해서 탈북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정착금을 한 번에 줬던 것을 바꿔 이때부터는 직업훈련을 받고 자격증을 땃을 때 그리고 취직을 해 일정 기간 일한 사람에게 격려금 형식으로 5년의 보호기간동안 나눠주기 시작한 겁니다. 김 씨는 당시 자격증을 따야 320만 원, 미국 돈으로 하면 약 3천 달러의 정착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빵 기술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물론 김 씨는 북한에서 빵 만드는 일과 관계된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김은영: 장마당에서 어머니가 만두나 방을 만들어 파셨기 대문에 옆에서 도와 드렸죠. 북한에서 어머니가 빵을 만들 때의 밀가루 색깔 자체가 다릅니다. 북한에는 한국에서처럼 그런 밀가루가 없죠. 대한민국에선 북한의 밀가루를 보자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물에 밀가루를 풀어서 빵을 만드는데 중국산 효모를 이용해 발효를 시킵니다. 그리고 소다를 넣어 중화를 시켜 찐빵을 만들었죠. 한국은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다릅니다. 계란, 설탕 등이 들어가잖아요? 북한에서 빵 만드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롭다고 봐야 합니다.
김 씨는 한국에서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하고 빵을 만들어 파는 공장 즉, 현장에서 2년 일하고 2008년부터 현대호텔관광직업전문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장 근무를 할 때는 기술을 배우고 5-10년 경력을 쌓으면 지점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김 씨는 낮에는 현장에서 빵을 만들었고 저녁에는 야간 대학에 다녔습니다. 북한에선 밀가루가 한가지 였지만 한국에서 본 밀가루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등 그 종류도 다양했고 외래어로 된 빵의 이름도 수 백가지가 넘어 그 이름들을 다 알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2년 과정의 호텔 제과제빵 과정을 졸업하니 빵을 만드는 기술자로 현장이 아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옵니다.
김은영: 현장에서 일했다면 부공장이 됐을 겁니다.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못 먹어서 그런지 힘들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서 교사가 되니까 힘은 덜든데 한국 사람을 가르치다 보니까 많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현장에선 숙련 기술을 요하는 곳인데 교사는 하나라도 과학적인 말을 해야 하니까 공부를 해야 하고 선생님들과도 잘 지내야 하니까 인간관계가 힘듭니다.
한국 생활 4년 동안 화장품보다는 하얀 밀가루에 더 익숙해졌고 세상에서 제일 고소한 냄새라고들 하는 빵 굽는 냄새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질법도 한데 아직도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보면 고향 생각에 가슴이 저릴 때가 많습니다.
김은영: 북한에선 먹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공장에서 3일 정도가 지난 빵은 폐기 처분을 하는 데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님 보고 다 빵을 달라고 해서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포함해서 주변에 다 나눠 줬습니다. 무거운 것을 낑낑대며 들고 와서 나눠줬죠. 사장님이 빵 안 팔린다고 뭐라고 했지만 그냥 음식을 버리는 것을 못 보겠더라고요. 지금도 그럽니다. 쌀 한 톨이라도 버리지 못하죠.
빵을 만들고 과자를 만드는 전문가 김은영 씨. 그는 한 가정의 아내요. 한국에 사는 탈북자들에게는 성공한 선배 탈북자이면서 교사고 또 상담사입니다. 김 씨는 이제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1만6천 명을 넘어 그 수는 점차 더 늘고 있지만 안정된 직업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후배 탈북자들을 보면서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김은영: 제가 전공은 제과제빵을 했지만 지금은 경영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직업을 못 구해서 어려워하는 분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꿈은 자기가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생각한대로 한국에 왔잖아요. 그리고 성공했고요. 저는 북한에서 온 분들에게 등대가 된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꿈은 이뤄진다.” 이 시간에는 매일 빵을 구우며 행복을 느끼는 탈북 여성 김은영(가명) 씨의 얘기를 전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