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는 20점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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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김정은 위원장의 2017년 신년사를 분석해 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이번 신년사의 키워드, 그러니까 핵심 단어는 뭐라고 보면 되나요?

고영환: 2017년 김정은 신년사의 중심 키워드, 즉 핵심용어들은 '핵강국'과 '자력자강'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들을 통하여 우리는 올해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핵 능력 강화를 통한 핵 보유국 지위 획득'이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딪혀야 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력자강' 외에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는 김정은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난 5년간의 업적으로 핵능력과 탄도미사일 기술 진전을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동방의 핵강국'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엄혹한 난관', '반공화국 제재압박', '제재 책동이 극에 달하였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마지막으로 했던 당대회가 6차 당대회였고, 그 이듬해인 1981년 김일성의 신년사 투쟁구호가 '조선로동당 6차대회 결정 관철을 위하여 총진군하자'였던 데 비해, 올해 김정은이 신년사의 투쟁구호를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 승리적 진전을 다그치자'로 삼은 것은 지난해 7차 당대회 개최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 관철 보다는 '자력자강'이 더 급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력자강'을 특별하게 강조한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를 의식하고 있으며 유엔 제재에 대응하고 이를 무력화하자는 배경이 있지 않는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김정은의 신년사를 들으면서 7차 당대회 이후 첫 신년사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이른바 '당대회 결정 관철'이라는 것 이외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이나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고, 이는 그만큼 북한 지도부가 처한 올해의 대내외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성우: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한 김정은의 발언에선 뭘 주목하셨습니까?

고영환: 이번 신년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대미국, 대남한 정책에서 구체적인 방향성이나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언급에 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방과 달리 구체적 언급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의 준비 마감단계', '전쟁연습소동 중단',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정책 철회' 등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트럼프의 용단'을 촉구하는 이른바 '북한식 시그널', 즉 북한 특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이는 1월 20일에 취임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 행정부 공식 출범과 그 이후 구체화될 대북정책의 향배를 지켜보되, 정책 방향 설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들과 신호들을 미리 보내 놓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대미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올해 대남정책과 관련해서는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시사했던 2015년, 그리고 2016년 신년사 및 '군사회담 제안' 같은 구체적인 카드를 제시하였던 7차 당대회와 달리 밋밋하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내용 없이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혼미상태에 있는 현 남한 정부와의 대화는 불필요하다고 규정하고, 대선결과를 지켜보면서 남북대화를 비롯한 본격적인 대남거래는 차기 정권을 상대로 모색해 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강경한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겁을 내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일종의 자아비판을 했는데요. 이건 어떻게 보셨나요?

고영환: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안타까움과 자책'을 거론하면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한다' 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자기비판적 언어들을 구사했습니다. 이는 북한 인민들에게 '친인민 지도자'상을 선전하기 위한 기만적인 술책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느끼고 있는 불만감을 김정은 자신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은이 만성적인 경제난과 무리한 동원 체제로 인한 민심의 동요에 대해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고조되고 있는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육지책으로 분석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례적인 언어의 행간에 숨어있는 더 중요한 의도는 그동안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당과 내각의 관료들에게 떠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연말에 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실적이 없을 경우 가차 없는 응징을 경고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의 자아비판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은 5년 전 집권하면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집권 5년이 지난 지금, 핵개발 집착과 이로 인한 유례없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자신이 먼저 자책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간부들의 '책임성 자기비판'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대대적인 숙청과 물갈이를 전개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도 자아비판을 하는데 간부들 너희들은 도대체 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며 피의 숙청 공포를 조성해 자신의 통치기반을 닦아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부원장님께서 그간 분석하신 북측 지도자의 신년사는 몇개나 되나요? 그리고 점수를 매기자면 이번 신년사는 몇점짜리입니까?

고영환: 저는 북한에서 수십년을, 그리고 한국에 와서 25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신년사들을 들었고 나름 평가 작업을 해왔습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신년사를 들을 때 솔직히 말해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고 울컥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들어서고 신년공동사설 형식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밤낮 노동신문이 말하는 것을 공동사설에서 종합하여 낸다는 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첫해 '인민들이 허리띠를 더는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했을 때 감동 비슷한 것, 희망 같은 감정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그리고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질수록,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언급도, 그 방법도, 미래도 말하지 않고, 마치 빙빙 돌아가는 레코드판처럼 '핵 강국' 소리만 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이 커졌습니다. 저는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김일성 신년사를 100점으로 보았을 때 김정일이 50점, 그리고 김정은이 20점 정도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박성우: 아마 당 간부들 포함해서 북한 주민들도 신년사를 제대로 들여다 봤다면 부원장님과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