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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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다시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미국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하는 문제를 본격 검토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미국 행정부가 지난 2월 27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착수를 공식화한 것은 유엔이 금지한 신경가스 VX를 암살에 사용한 김정은 정권을 사실상 '상종 못할 대상'으로 낙인찍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이미 중첩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실질적 타격은 안 되더라도, 북한 정부의 무모함과 잔학성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상징적, 심리적 압박 효과가 상당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 및 국제사회가 유엔 인권이사회, 제네바 군축회의, 화학무기금지기구 등 여러 다자회의를 계기로 '김정남 암살'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이듬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지만 2008년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하면서 해제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국제공항에서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 독살되고 사건 수사에 착수하였던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암살에 신경가스 VX가 사용됐다고 밝히면서 분위기는 급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도발에 "매우 화가 났다"고 말한 이후 실질적인 테러지원국 재지정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2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한·미·일 수석대표 협의에서 미국 측은 김정남 암살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전제하에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에 착수했음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미 정부가 한·미·일 3국 간 다자협의 무대에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미국과의 무역, 투자, 원조 관계가 끊기고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데도 제약을 받습니다. 현재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은 이란, 수단, 시리아 등 3개국입니다. 김정은이 형 김정남을 독살함으로써 후계체제 구축의 걸림돌을 제거하였다고 간주할 수 있으나 화학무기인 VX를 김정남의 살인에 사용함으로써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 등 북한은 세계에서 더욱 더 고립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원래도 좋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최악의 상태가 됐는데요. 그 계기는 김정남 암살에 VX 가스가 사용됐고 범행 장소가 국제공항이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에게 다시 한 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국제사회는 이걸 왜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건가요?

고영환: 북한 보위성과 외무성이 직접 나서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수도 비행장에서 독극물 VX로 독살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국제사회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사실 김정남 암살 작전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항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테러에 참여하였던 북한 인원들은 항공편을 이용해 곧바로 해외를 통해 북한으로 도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높은 독성의 VX는 흔적을 크게 남기지 않아 김정남이 사망하고 열흘이 지나서야 말레이시아 당국은 겨우 사인을 규명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암살 장소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었다는 점입니다. 규모 면에서 한국의 인천 국제공항에 크게 뒤지지 않는 국제공항 복판에서 대량살상무기로 김정남을 암살한 것 자체가 치명적 실책으로 된 것입니다. 북한은 말레이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사건을 적당히 무마할 것으로 안이하게 예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9·11 테러 이후 세계 유명 공항들이 보안을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말레이시아로선 이번 김정남 독살 사건이 국격이 걸린 문제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되는 VX를 국제공항에서 사용한 것은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북한의 이번 목표는 김정남 한 개인이었지만 다음엔 불특정 다수가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앞에서 북한은 자신의 체제가 얼마나 잔악무도한가를 스스로 보여준 셈입니다.

박성우: 이번 사건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좀 더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부원장님께서는 어찌 보셨습니까?

고영환: VX 독가스로 인한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의 독살로 북한에 그동안 우호적이던 말레이시아와 여타 동남아 국가들도 북한에 대한 신뢰를 접고 외교적 제재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과 맺었던 호상 사증면제 제도를 6일부터 금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중국은 김정남 암살 직후 북한산 석탄의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VX를 사용한 징후가 포착되자 미국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진지하게 검토 중입니다.

이 모든 후폭풍과 고립을 감수하고 김정남의 암살에서 김정은이 얻는 것은 개인적 통쾌함에 그치겠지만 북한 지도부가 받을 타격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은 우호국에 대한 기본적 규범도 지키지 않고 지도자의 감정에만 충실한 예측 불허의 존재임이 재확인됐습니다. 북한의 우방들까지 북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고 북한을 고립시켜 김정은 체제를 궁극적으로 제거하는 쪽으로 뜻을 모은다면, 이에 대한 가장 큰 공헌자는 역설적으로 김정은 자신이 될 것입니다.

박성우: 북한도 이번 사태의 여파를 줄여보기 위해 나름의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실책을 만회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북한은 지난 2월 28일 말레이시아에 리동일 전 유엔대표부 차석대표를, 중국에는 리길성 외무성 부상을 각각 급파했습니다. 김정남 암살 이후 말레이시아가 북한과 단교, 즉 외교관계 단절을 거론하고, 중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등 외교적 고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됩니다.

리동일 전 차석대사를 포함한 북한 대표단은 2월 28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북한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리 전 차석대사는 대사관 앞에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왔다"며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증거 인멸' 차원에서 김정남 시신과 체포된 북한 용의자를 하루빨리 북한으로 데려가고, 말레이시아의 반북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방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이날 리 전 차석대사의 '시신 인도' 언급과 관련해 "법과 원칙에 따라 이 나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측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입니다. 리동일 대사가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3월 2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과 호상 사증면제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발표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 강철과 북한 외무성의 거듭되는 외교적 결례를 만회하기 위하여 노련한 리동일 대사를 파견하였으나 말레이시아와 북한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박성우: 이번 사건의 결말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