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워낙 다른 중요 사안들이 많아서 좀 묻혀버린 감이 있는데요. 북한인권법이 드디어 만들어졌습니다. 부원장님, 어떤 내용인지 소개를 해 주시죠.
고영환: 11년째 한국 국회에 발이 묶여 있던 북한인권법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미국보다는 12년, 일본보다도 10년 늦게 북한인권법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북한 청취자들을 위해 잠깐 설명해 드리자면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그 어떤 중요한 일 혹은 정책을 만들려고 하면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국회에서 해당 법을 국회의원 다수, 즉 50퍼센트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 승인받아야 합니다. 북한처럼 지도자 한 명이 즉석에서 정책을 만드는 것과 정반대죠.
새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는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해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지원하는 내용들이 담겼습니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 실태 조사, 인권 개선 관련 연구와 정책 개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수행하는 기구로 통일부 산하에 설치됩니다.
북한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인권 침해 사례와 증거를 체계적으로 기록 보존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도 통일부에 두기로 했습니다. 여야는 그동안 보존소를 어디에 두느냐로 의견 대립을 보였는데, 집권 여당은 법무부에 설치를, 야당은 통일부에 설치를 주장했습니다. 전자는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증거 확보와 형사 소추 기반 마련 등 '처벌'에, 후자는 단순 '조사·연구'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여야는 일단 보존소를 통일부에 두되 차후에는 관련 기록들을 법무부로 이관한다는 식으로 정책안을 절충했습니다.
저는 이번 북한인권법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교화소들을 비롯한 북한 각지에서 반인류적, 반인권적 행위를 감행하는 자들에게는 주의와 경고를 주게 될 것이고, 인권을 침해당해 억울하게 감옥살이, 수용소살이, 고문 등을 당하는 북한 인민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북한인권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점이 있을텐데요. 앞으로 뭐가 달라지게 되나요?
고영환: 북한인권법이 없을 때에는 한국정부가 북한의 인권 유린 상태를 조사하고 대북인권단체를 지원하며 북한의 인권 유린 상태를 기록하여 남기는 일들에 법적으로 제약이 있었고 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이 제정됨에 따라 북한의 인권 유린 상태 조사, 기록, 인권단체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재정적인 뒷받침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북한인권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신설되는 북한인권재단에 매년 약 2000만 달러를 출연할 것으로 2일 전해졌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인권재단 설치로 민관 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통일부에 등록된 북한인권 관련 단체는 33곳으로, 북한인권재단은 이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입니다.
이번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북한에서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거주와 여행의 자유, 조직과 단체 결성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고, 법원의 영장이 없이는 그 누구도 임의대로 체포하고 고문하여 수용소에 보내는 일들이 없어지게 되는 기초가 마련되길 기대해 봅니다.
박성우: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이번에 한국에서 만든 북한인권법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고영환: 한국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의 내용은 국제사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의 단초가 된 미국 북한인권법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차이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2004년 10월에 발효된 미국 북한인권법은 중국 등 각지의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단체 후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매년 탈북자의 망명 및 정착지원에 2천만 달러, 북한 민주화 지원에 400만 달러 등 모두 2천400만 달러를 지원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대북 라디오 방송 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늘리고, 미 국무부 내에 북한인권담당 특사를 임명했으며, 한국 국적을 얻은 탈북자도 미국으로의 난민 또는 망명 신청 자격을 제한받지 않게 했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법 역시 북한 인권증진을 위해 정부가 관련 민간단체를 후원할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채택된 북한인권법은 북한인권재단을 설치하도록 규정했고, 정부는 이 재단에 연간 200억원, 즉 미화로 약 2천만 달러를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인권 관련 단체에 정부 예산을 직접 지원하는 미국과는 다르게 정부가 북한 인권재단을 거쳐 간접으로 지원하는 형식을 택한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범죄를 체계적으로 수집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하도록 한 것 역시 한국의 북한인권법만이 갖고 있는 특징입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수집된 자료는 통일 이후 가해자 처벌에 활용될 수 있기에 주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북한 지도층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설명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북한인권법이 이미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야당의 반대로 채택이 되지 못하였던 북한인권법이 첫 발의 11년 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박성우: 그간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야당이 이 법안을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는 아무래도 여론을 의식한 때문일텐데요. 부원장님,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지난 2005년, 17대 국회 때이나 당시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폐기됐습니다.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거의 매년 북한인권법을 제출했고, 민주당은 대북전단 살포를 위한 법안이라며 저지에 나섰습니다. 19대 국회 들어서도 새누리당은 5개의 북한인권법안을 무더기 발의했지만, 야당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법안을 연쇄적으로 내놓으며 이에 맞서왔습니다.
하지만 2013년 북한의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인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4월 '남북인권대화와 인도적 지원사업에 필요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북한인권증진법안'을 내놨으며, 새누리당도 그해 11월 이제껏 발의됐던 야당안을 통합해 '북한인권법안'을 다시 제출했습니다. 여야간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4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을 비롯한 극히 반인륜적인 소식들이 연이어 북한에서 터져 나오면서 한국 국민들 속에서 북한의 잔인한 인권유린 행위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들이 높아진 것도 일조하였습니다. 특히 50일 앞으로 다가온 한국국회의원 선거 일정,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지난 2월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한 한국 여론의 변화 등도 여야, 즉 집권당과 야당의 합의 도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북한인권법이 채택됐으니 북한 인민들의 처참하고 열악한 인권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이 절대 외롭지 않으며 든든한 지원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늦었지만, 어쨌거나 북한인권법이 만들어진 점은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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