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 탈북, 황장엽 귀순보다 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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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봅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한국에선 선거철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주 내내 이 뉴스가 주요 관심사로 부각됐죠.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봉사원 13명이 집단 귀순했는데요. 먼저, 이들은 왜 탈북을 결심했는지, 그 원인부터 짚어 주시죠.

고영환: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영업하던 북한 식당의 종업원 13명이 중국 내 북한 영업장을 탈출하여 지난 7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한 집단, 한 단위에서 일하던 인원들이 집체적으로 한국에 온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우선은 외국에 나가 있던 북한 봉사원들이 외부세계 특히 한국의 현실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 북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따라서 북한 식당들의 영업이 위축되고 외화벌이가 잘 안되면서 평양으로 소환될 수 밖에 없던 긴급한 상황도 탈북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도착한 중국의 북한 식당 종업원 A씨는 탈북 계기에 대해 "최근 대북 제재가 심해지면서 북한 체제에는 더는 희망이 없다고 보고 희망이 있는 서울로 탈출하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통일부가 지난 10일 밝혔습니다.

통일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 13명은 지난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탈북을 결심했고, 이달 초에 한국측에 한국에 가겠다는 의향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3명의 집단 탈북, 저도 잘 믿기지 않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박성우: 상호 감시가 일상화 돼 있고, 또 보위부 요원까지 항상 들여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이번처럼 집단 행동이 가능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어느 한 단위에서, 어느 한 직장에서 일하던 봉사원 전원이 탈북한 것은 6.25 전쟁이 끝난 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의 감시망이 작동하고 있고, 당 조직이 살아 있고, 봉사원 중에 보위부 협조자가 항상 존재하는 북한 정치 특성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1997년에 있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귀순보다 더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라고 판단합니다.

우선 이들의 집단적인 탈북이 이루어진 토양을 살핀다면, 현재의 북한은 이전 1980-1990년대의 북한과는 전혀 다릅니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이를 통해 북한 사람들은 위급할 때 당과 수령이 자신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노력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 체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토양이 있었기에 이들 식당 봉사원들은 중국에 나와서 외부의 현실, 특히 한국의 현실을 스펀지처럼 머릿속에 빨아들였고 위험에 처하자 주저 없이 한국행을 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자라온 환경, 다닌 대학, 다닌 직장은 달랐지만 한국을 동경해 온 마음은 똑같았기에 집단탈북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저는 탈북한 봉사원들이 머리와 가슴으로 알고 느끼는 것은 똑같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그들은 보위부의 감시망을 뚫고 탈북에 극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봉사원들 나이가 20-30대인데요. 이들의 사회적 특징도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영환: 이번에 탈북한 탈북자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중반입니다. 이들은 수백만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고난의 행군 세대'입니다. 이들은 배급제가 붕괴한 상황에서 장마당을 통해 생존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시장 논리에 익숙합니다. 또한 겉으로는 당국의 지시를 따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노동당과 수령에 대해 냉소적입니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집단주의에 비해 개인주의가 두드러지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장마당을 통해 유통되는 외부 정보와 한국 드라마 등에 노출돼 북한의 실상이 당국의 거짓 선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입국한 북한 식당 봉사원 중 한 명도 "한국 TV와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북한 지도부도 '고난의 행군 세대'가 체제 약화에 불씨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백만명의 잠재적 체제 불만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만일 북한이 이들 '고난의 행군 세대'를 개혁 개방을 통해 끌어안으려 하지 않고 강압과 통제로 억누르면 이번과 같은 집단적인 망명 사태는 계속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박성우: 이번 13명의 집단 귀순 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정찰총국 간부를 포함해서 열손가락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고위급 탈북자들이 서울에 정착했다는 소식도 보도됐습니다. 다시 한 번 총평을 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 엘리트층, 즉 북한 당, 정, 군대의 핵심계층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사형을 시작으로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본격화하면서 당, 정, 군의 핵심 계층이 줄줄이 북한을 떠나고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한국으로 귀순한 당, 정, 군 간부급만 20여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일반 주민의 탈북이 많았습니다. 대신 당시 간부들은 단결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승진해서 중앙당에 근무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김정일이 측근들에게는 각종 선물과 특권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심 간부층이 북한 체제를 떠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간부들은 출세하려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안보부서 관계자는 "승진해서 변덕스러운 김정은 앞에 서는 것이 무서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핵심 간부들은 병이 있다며 고위직을 마다하는가 하면 승진을 거부하거나 외국에 나가려고 하는 세 가지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칼바람을 일단 피하고 보려는 겁니다. 한국의 대북 소식통은 "고위직일수록 언제 숙청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실제 아픈 경우가 많다"며 "원로들은 이를 핑계로 김정은의 눈에서 멀어지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처럼 북한의 핵심 지도층이 동요한다면 김정은이 위기를 맞았을 때 심각한 내부 균열이 생기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박성우: 북한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었는데요. 그런데 첫 반응이 나오기는 했지만 좀 약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부원장님은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고영환: 최근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귀순에 대해 북한이 "전대미문의 유인납치 행위이자 공화국에 대한 중대도발"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12일 담화를 내고 이번 13명의 집단 귀순에 대해 "괴뢰패당이 조작한 이번 집단 탈북 사건은 공화국에 대한 중대 도발이며 우리 인민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고 북한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보도했습니다. 이는 지난 7일 종업원 13명이 집단 귀순한 이후 북한 공식기관이 내놓은 첫 반응이었습니다.

북한이 북측 주민들은 볼 수 없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매체를 통해 13명의 탈북을 한국 정부가 '그들을 끌고 간'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사실이 북한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전 한 두 명 탈북을 노동신문 등을 통해 비난하던 북한이 이번엔 13명이나 집단적으로 탈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보는 공식 매체를 통해 발표하지 않고 우리민족끼리라는 이상한 매체를 통해 비난하는 것은 이들 13명의 집단탈북 사실이 북한 주민들 전체에게 알려지는 경우 체제를 뒤흔들만큼 후폭풍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막으려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소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식당 종업원 13명 탈북은 황장엽 전 비서의 귀순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 평가하셨는데요. 그만큼 북한 사회도 이 소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