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사부곡’ 부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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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의 '사부곡'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근에 평양에 있는 열차공장을 둘러보다가 김정일 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고영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19일 북한 '김종태 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를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시찰했습니다. 김정은은 기업소를 지도하며 "기업소를 돌아보니 한평생 열차를 타고 멀고 험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간 수령님과 장군님 생각이 갈마든다"며 선친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는데요. 이에 더하여 "수령님과 장군님을 좋은 철도에 편히 모시었더라면 이다지도 가슴이 아프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의 이 발언은 최근 일각에서 그가 집권 4년차를 맞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관측들이 나오는 가운데 공개돼 주목됩니다. 사실 그 동안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휘장도 떼고 평양 비행장 청사에서 김일성의 초상화도 걷어내고 비행장 개막 행사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부르지 않게 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부 김일성과 여러 부인을 두었던 부친 김정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김정은에게는 아예 없었고, 이제는 '내 방식, 김정은식으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는 분석들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이런 소리를 하면 북한으로 이런 소식들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이런 소문들을 종합한 당 선전선동부, 특히 김여정 부부장이 김일성•김정일을 부정하는 오빠의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김종태 기관차 공장'을 오빠가 시찰하도록 하고 이 기회에 마치도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발언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흉흉한 소문들을 잠재우고 선대의 유훈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성우: 관련된 질문인데요.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가 오랜만에 공식 행사에 등장했죠. 이건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올해 95살인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지난 19일 지방 대의원 선거 투표에 참가했습니다. 북측 중앙TV는 이날 김영주가 평양시 제271호 선거구 제32호 분구에서 평양시 대의원 후보자와 삼석구역 대의원 후보자에게 투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방송 장면에서 김영주는 다리를 저는 등 거동은 불편해 보였지만 투표를 한 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김영주의 이 같은 공개 활동을 북한 텔레비전이 보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김영주는 김일성 주석이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김정일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그 후과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자강도에서 장기간 '정배살이(유배살이)'를 했습니다. 권력을 완전히 거머쥔 김정일은 1993년 12월에야 숙부에게 이름뿐인 부주석 자리를 줬습니다. 저는 김정은이 김영주의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우선은 작은할아버지도 자신을 인정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부친 김정일이 곁가지로 몰아 무시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김영주를 다시 내세움으로써 친모 고영희를 생의 마지막 시기에 버렸던 부친에 대한 반감과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김영주 등을 무시하고 멸시하였지만 나는 반대로 김영주를 응당한 김일성 가문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김정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최근에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이례적인 일인데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영환: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5일 김정은이 제43차 대사회의에 참가한 대사들과 김정은이 찍은 기념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최근 북한 고위층의 해외 망명이 증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이례적으로 1년의 중간인 7월에 외교관들의 사상을 검토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사회의를 열었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니 김평일 주 체코 대사와 김일성의 딸인 김경진의 남편 김광섭 주 웽그리아(헝가리) 대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김평일은 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의 장남으로, 첫째 부인 김정숙의 아들인 김정일과 권력 투쟁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된 뒤 지난 36년째 해외에서 명색만 외교관으로 지내왔습니다. 불가리아 대사, 뽈스까(폴란드) 대사, 체코 대사를 지내면서 그는 북한의 가장 중요한 곁가지 대상으로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명색이 대사이지만 그는 오전 10시경 출근해서 신문 하나 읽고 밥 먹으러 들어가면 하루 일과가 끝일 정도로 철저하게 소외 받았고, 그의 행동과 발언은 매 시각 당 조직지도부 10호실에 보고되었습니다. 그는 문건에, 전보문에 수표도 못하는, 다른 외교관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정말로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김경진의 남편인 김광섭 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김광섭도 오지리 대사 시절 등 해외에서 생활하는 내내 김평일과 똑같은 곁가지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던 김평일과 김광섭이 북한 대사회의에 참가하여 김정은 바로 뒷줄에 서서 사진을 찍었으니 본인들에게는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왜 김정은이 작은할아버지 김영주가 투표하는 영상을 내보내고, 작은 삼촌인 김평일과 고모부인 김광섭을 부르고 사진까지 찍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우선은 김영주나 김평일, 김광섭이 더 이상 김정은의 권력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김정은이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사형하고 고모 김경희를 연금시키고 정치적 사망에 이르게 하였지만, 다른 김일성의 아들들과 사위 그리고 동생들은 뒤를 보아 준다는 이른바 자애로운 영상을 인민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부친은 김영주, 김평일, 김광섭, 김경진 등의 '곁가지'를 구박하고 멸시하였지만 자신은 아버지와 달리 그들을 보살핌으로써 김정일을 속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 소식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김영주가 등장한 장소는 지방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장이었죠. 그런데 그 투표 결과가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위원님은 어찌 보셨는지요?

고영환: 북한이 이번에 실시한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99.9% 투표율에 100%의 찬성률을 기록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이러한 선거 결과를 두고 세계가 조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선거에 99.9%가 참가하고 100%가 찬성을 하겠는가 하는 소리입니다. 단 한 사람이 반대하여도 99.99%의 찬성이 되는데, 단 한 명도 후보자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니 정말 북한스럽습니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놀랍습니다. 중환자, 임종을 코앞에 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모두가 선거에 참가할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선거에서 100% 찬성 투표하는 나라는 오직 북한뿐입니다. 저는 한국에 살면서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요새 새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박성우: 사실 북한에 이상한 점이 많다는 건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죠. 그 중 하나가 말씀하신 대로 투표만 하면 찬성 100%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이상한 점은 21세기를 살면서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3대 세습을 하다 보니 그 체제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서 95세 고령의 김영주를 다시 등장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