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필요한 제반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소개를 좀 해 주시고요. 그 의미도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고영환: 남북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지난 7일 오전 10시 50분부터 8일 오전 10시 10분까지 23시간 20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오는 10월 20~26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9월 8일 합의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이뤄진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를 이행하는 첫 단추를 끼운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상봉 규모는 남과 북 각각 100명씩입니다. 남북은 이와 함께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를 비롯하여 상호 관심사를 폭넓게 협의한다'고 합의했습니다. 6만여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상봉의 정례화 등 한국 정부가 요구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추후에 진행될 적십자 본회담에서 논의키로 하였습니다.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 장소와 규모 등에서는 비교적 쉽게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상봉 시기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오랫동안 벌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은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 이전에 상봉 행사를 갖자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당 창건 기념일 이후인 10월 중순 이후에 하자고 맞섰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추석과 노동당 창건일 등이 걸려 있어 (남측이 제시한)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고 했고, 우리 쪽은 상봉 성사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가지는 의미는 남과 북이 지난달에 있었던 북한에 의한 지뢰 및 포격도발에 이은 남북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합의한 합의문의 첫 단계, 즉 첫 단추를 채웠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측이 날짜를 10월 중순 이후로 고집한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북한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당 창건 70주년 행사로 온 나라가 바쁘게 돌아가니 일손도 시간도 부족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10월 10일 이후로 연기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전 북한 외교관으로서 저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 들이기에는 남북관계, 특히 남북 합의문들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번복되거나 폐기된 사례가 너무 많아서 다른 한편 믿어지지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그렇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을 맞으며 이른바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10월 10일을 전후해서 쏘아 올릴 것이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동을 규탄해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항상 인공위성을 쏜다고 주장해 왔지만 국제사회, 특히 우주 전문가들은 북한이 쏜 것은 인공위성이 아니고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현재 우주 공간에는 북한이 쏘아 올린 그 어떤 인공위성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이 아무리 인공위성이라고 불러도 세계는 이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쏠 때마다 이것이 국제법과 국제안전을 위협한다고 보고 이를 규탄하고 제재 조치들을 취하여 왔습니다.
만일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쏜다면 더욱 강력한 유엔 제재를 받게 될 것이고, 이에 북한 지도부가 반발하면서 10월 20일에 예견되어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취소해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그간 인도주의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문제로 한국에서 그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도구로, 지렛대로 악용해 왔습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날짜를 장거리 미사일을 쏘는 시기 다음으로 정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한국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안전 정치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과연 순탄하게 상봉 행사가 열릴까, 이런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일단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11일에 했죠.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게 되면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요?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 대상을 선정한 뒤 10월 8일에 최종 명단을 교환키로 했습니다. 생사 확인 의뢰 대상은 남측 250명입니다. 200명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추첨으로, 50명은 국군포로 및 납북자 가족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최종 상봉 규모는 남북 각각 100명을 기준으로 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1~2명의 가족이 동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계획대로 추진한다면 당국회담 개최, 민간 교류 활성화 등 다른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박성우: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과 관련해서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죠. 북한에 계신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한국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와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첫 상봉이 이뤄진 후 7월 말 현재 상봉 신청한 이산가족 12만9천698명 가운데 6만3천406명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지난 1일 밝혔습니다.
지난 15년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이산가족들 중 매년 4천여명이 고령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나 상봉 인원의 대폭적인 확대가 시급하다는 인식이 한국사회 전반에 확대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생존해 있는 6만6천292명도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6년 안에 모두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추정했습니다.
다른 한편 지금까지 19차례에 걸쳐 상봉한 남과 북의 이산가족은 고작 1천956명에 그쳤습니다. 이는 상봉을 신청한 전체 인원의 1.5%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으로, 분단으로 헤어진, 그래서 남과 북으로 흩어진 사람들, 북에 남긴 아버지와 남에 간 어머니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우는 사람들, 죽기 전에 살아있을 혈육들을 만나보고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 간절한 소망을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21세기 광명천지에 있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요. 요즘 남북 회담을 보면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밤샘 협상을 계속한다는 건데요. 위원님, 그 원인은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이번 협상은 회담 시작 24시간을 코 앞에 둔 8일 오전 10시 10분에야 종료됐습니다. 장장 43시간, 무박 4일이라는 진 기록을 세운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 이어 실무접촉에서조차 '무박 협상' 절차가 계속된 겁니다.
과거에도 남북이 밤샘 협상을 통해 새벽에 합의를 도출하거나, 아예 일정을 연장해 회담을 이어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중단 없이 진행하고 끝장을 보고 나온다'는 협상이 거의 일상화됐습니다.
무박 마라톤 협상이 이어지는 배경으로는 남북 간의 판이한 입장 차가 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명박정부 이후 근 7년간 제대로 된 남북 당국간 회담 고리가 끊긴 탓에 양측 공히 해야 할 말도, 들을 말도 많은 탓입니다.
남북 모두 협상의 판을 깨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과거 회담에 임할 때 수가 틀리면 회담장을 박차고 일어서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이번 고위당국자 접촉과 실무 접촉에 들어선 끝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남과 북이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박성우: 밤샘 협상을 통해 합의를 내놓는 수고를 한 만큼 합의 내용도 이번에 잘 이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 했습니다. 위원님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