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양다리 외교 통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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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최룡해 로동당 비서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최룡해 비서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왔습니다. 위원님, 총평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최룡해 로동당 비서가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하였죠. 이번 최 비서의 러시아 방문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역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17일 만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날 최 비서는 푸틴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였습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0일 최룡해 비서를 만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북한과 최고위급을 포함한 접촉을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정은의 친서에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을 희망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외교 소식통들은 김정은이 2015년 초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집권 3년 동안 외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하고 외국 국가수반의 예방도 받아보지 못한 김정은이 2015년 러시아 방문을 통해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최룡해 비서는 17일에는 푸틴 대통령, 20일에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후 원동(극동)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최룡해와 같이 러시아를 방문한 노광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러시아군 총참모부 작전총국장을 만나 군사교류 등 문제를 토의하였고, 리광근 무역성 부상은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을 만나 경제협조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최룡해 비서는 김정은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하여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문제, 북러간 경제 및 군사협조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귀국한 것으로 보여 나름대로 특사 본연의 임무는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친서에서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맺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데요. 위원님께서는 그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고영환: 지난 24일 남한에 있는 세종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정성장 박사는 지난 21일부 한국의 연합뉴스 영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는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관계로 나아가길 희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친서 내용 중 동맹 부분이 확실하다면, 이는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미소냉전 시기로 회귀하고자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물론 러시아와 동맹조약을 맺고 싶겠지만, 자유시장 체제를 선택한 러시아가 북한의 이런 제의를 받아들여 세계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겠는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은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 크림반도 문제 등으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를 이참에 자신의 동맹으로 묶어두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이 실현될지는 두고봐야할 일입니다.

박성우: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가 나올만큼 현재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북한이 러시아로 중국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건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고영환: 최룡해의 러시아 방문으로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으나, 북한이 러시아로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의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는 지난 25일 자유아시아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러시아는 북한 사안과 관련하여 중국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으며 북러관계가 북중관계를 능가할 수준도 아니고 북한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톨로라야 박사의 의견에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이전 냉전시기와 달리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며 같이 발전하는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전 시기 러시아와 갈등하면 중국에 가 붙고, 중국과 갈등하면 러시아에 가 붙어 이익을 얻어내던 그런 시기가 더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중국과 관계가 멀어지면서 이 틈을 러시아와의 관계 밀착으로 메워보려 하고 있는데 이런 양다리 외교가 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중국을 더 멀리 가게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로부터는 큰 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박성우: 중국의 반응이 재밌습니다. 특히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최룡해의 외교활동이 관례에 맞지 않는 측면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던데요. 북한 외교관 출신인 위원님이 보시기엔 어땠습니까?

고영환: 최룡해 비서의 러시아 방문을 쳐다보는 중국의 시각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중국의 최대신문 중 하나인 중국청년보 인터넷판인 중국청년망은 지난 21일자 기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최룡해가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러시아를 경악하게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청년망은 최룡해 비서가 지난 20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면담에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하여 러시아 외교관들을 놀라게 하였고, 회담에서도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는 촌극을 연출하였다고 전했습니다. 회담장에 늦게 도착한 것도 모자라, 최룡해는 회담 주최국인 러시아 외무장관이 먼저 발언을 하여야 하는데 손님인 자신이 러시아로부터 발언권을 빼앗아 먼저 북한 대표단을 소개함으로써 외교적 실례를 범하였다는 거죠.

저도 북한 외교관으로 수많은 나라들을 특사, 정부 대표단, 외교부 대표단 등의 일원으로 방문하였지만, 주요 면담 시간에 늦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고, 방문하는 나라에서 초청국 간부들보다 먼저 발언하는 북한 고위간부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사 대표단이나 정부 대표단의 경우 외국을 방문할 때 방문국에서는 시간을 초단위로 재며 시간을 준수하도록 합니다. 반대로 북한에 외국 대통령 특사나 정부 대표단이 와서 주요 간부들을 면담하게 할 때 호위사령부 차들이 그야말로 초단위로 차량과 인원들을 이동하게 합니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 손님이 나서서 먼저 발언을 한다는 것은 외교나 의례의 첫 글자도 모르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북한에서 외교관을 지낸 제가 보건대, 이번 사건은 최룡해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체제에서 실질적인 2인자로 부상하면서 교만해진 결과에서 생긴 것 같습니다. 러시아 외무장관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일부러 한 시간이나 늦게 회담장에 도착하여 '내가 힘있는 사람이다. 내가 2인자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을 러시아측에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외교에서 이런 교만함은 대체적으로 그 후과가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나중에 나타납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기 위해서는 할 일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로동신문이 최룡해의 러시아 방문 결과를 말 그대로 대서특필했던데요. 아무래도 최룡해의 위상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봐야겠지요?

고영환: 북한 로동신문 11월 26일부를 본 사람들은 많이 놀랐을 것 같습니다. 이날 로동신문 2면은 김정은 특사의 러시아 연방 방문과 관련한 보도가 6장의 사진과 함께 절반 이상을 채웠습니다. 이름만 최룡해이지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전하는 신문기사와 사진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고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살면서 로동신문을 보지만, 개별적인 간부의 사진이 이렇게 6장이나 실린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2인자라고 할 수 있었던 장성택의 중국 방문 이후에도 이렇게 많은 사진이 실리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최룡해가 김정은 체제 하에서 당당하게 2인자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정은이 무슨 이유로 최룡해에게 이렇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대우를 하여주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최룡해의 부친 최현을 그린 예술 영화가 자주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행사 때마다 김정은 이름 다음에 최룡해의 이름이 호명되고, 이번에 러시아에 가서도 교만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보아 최룡해는 현재 북한에서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실권자이고 권력자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최룡해가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등을 규합하여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앞으로 북한에서 이들이 어떠한 일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박성우: 지적하신대로, 최룡해의 움직임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서도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