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권력 지형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정일 2주기 행사가 지난 17일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모두가 주석단을 주시했습니다.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 권력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위원님,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일 사망 2주기 중앙 추모대회 주석단을 보면 북한 권력에서 일정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장성택 행정부장이 지난 12일 반당반혁명 종파분자, 정변 음모자 등 어마어마한 죄들을 뒤집어 쓴 채 처형당해 주석단에서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장성택과 41년간 같이 살아온 김일성의 딸 김경희 비서도 주석단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요.
지난해 1주기 추모식 때 주석단에도 오르지 못했던 박봉주 총리가 지난 3월 정치국 위원이 되면서 주석단 중앙쪽으로 올라와 김정은 시대의 주역 중 한 명임을 보여줬습니다. 주석단에는 역시 김영남, 최태복, 김기남, 양형섭, 이용무, 김영춘 등 권력 1선에서 후퇴한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간부들이 자리를 잡았죠. 이는 실권과 연관이 없기 때문에 그냥 원로를 우대하는 차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또한 장성택 처형 이전 및 이후 시기에 급상승한 인물들이 주석단 중심에 자리를 잡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최룡해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입니다. 그리고 윤정린 호위사령관, 조경철 보위사령관,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주석단 주요 위치에 앉아 김정은 시대의 군부 실세 인물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외에도 눈에 띄는 인물들은 역시 이번 장성택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연준 조직부 1부부장과 김원홍 보위부장이었습니다. 이런 것들로 우리는 북한에서 실권이 있는 간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장성택의 인물들로 알려진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평양시당 문경덕 책임비서, 로두철과 강석주 부총리들도 숙청되지 않고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 주석단 등장 인물들과 금수산궁전 추모행사들을 보면 김정은 시기에 누가 실권자들이고 누가 허수아비들인지 대략 알수 있었는데, 주목되는 점은 장성택의 인물들로 알려진 간부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장성택과 연관된 인물들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청산하면 지도부 붕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숙청 속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번 주석단 등장 인물들을 보면서 저는 앞으로 북한 정권이 참으로 불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박성우: 김경희가 불참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고영환: 김일성의 딸이며, 장성택 행정부장의 부인이며, 김정일의 누이 동생인 김경희가 김정일 사망 행사들에 모두 불참했습니다. 그러나 김국태 전 비서의 장례위원 명단에는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는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김경희가 장성택과 같이 숙청되었거나 장성택의 처형으로 정치적 위상이 달라졌다고 하는 분석들이 옳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김경희는 원래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병을 앓았습니다. 당뇨, 심장병, 신장염, 알코올중독 등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장성택과 김경희는 1972년 결혼 후 41년 동안 살을 대고 같이 산 부부 사이입니다. 남편 장성택이 총살되었는데 어떤 여자가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바로 그 남편이 김일성 주석의 사위이고, 김정일의 매부인데, 조카 김정은을 현재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인 바로 그가 국가반역죄,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라는 최대의 죄목으로 처형당했는데,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원래 않고 있던 몸에다 남편이 잔인하게 총살을 당하면서 김경희 비서가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분석일 것입니다. 김 비서가 다시 일어날지 아니면 사망할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김경희 비서의 정치적 위상은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박성우: 황순희가 주석단에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는데요. 이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제가 평양에 있을 때 황순희 비서와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을 같이 했던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데요. 김정일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에서 가장 눈에 띈 인물 중 하나가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이었습니다. 황순희는 '류경수 105 땅크 여단' 단장의 부인입니다. 류경수는 6.25 전쟁시 여단장이었고, 사망한 1958년에는 군단장이었죠. 그는 사냥 도중에 부관이 쏜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때 말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황순희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사망한 후 김정일을 제 아들처럼 키우다시피 하였고,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그의 병상을 지킨 여인입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94세 난 고령의 황순희를 주석단에 앉힌 것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을 빨치산의 충신들인 황순희 같은 사람들이 지켜왔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김일성때부터 김정은에 이르는 3대 동안 황순희가 김씨 가정을 지킨 것처럼 '김 부자 가정을 지키라'고 주민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북한은 최근 들어 부쩍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백두혈통이 바로 김정은이니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김정은은 사실 백두혈통이 아닙니다. 김일성, 김정일까지는 백두혈통이라는 언어의 포장이 가능하겠지만 김정은은 다릅니다.
저는 지난해 2월 김정은의 뿌리를 찾아 제주도까지 가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박 기자도 같이 갔었죠. 김정은의 친모인 고영희의 친할아버지는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고영희의 친부 고경택이 1913년 8월 14일 태어났죠. 고경택은 1929년 제주도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서 살았고, 일제 시대에는 일본군 피복창에서 일본군 군복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해방을 맞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후 1952년 6월 26일 오사카에서 김정은의 친모 고영희가 고경택의 딸로 태어난 것이죠.
고영희 가족은 1962년 10월 21일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고, 그 후 고영희는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수로 일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 무용을 하던 고영희를 김정일이 데려다 같이 살기 시작하였고,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서 김정은이 태어난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가 하면, 김정은은 백두혈통이 아니라 반쪽은 일본 오사카 혈통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백두혈통이라고 김정은이 자꾸 주장하는 것은 그가 역설적으로 백두혈통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박성우: 행사 내내 김정은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김정일 추모 2주기 행사장에 나와 주석단에 앉아 있는 김정은의 표정이 세계의 관심사로 부상했죠. 김정은은 시종일관 무표정했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난 모습이었습니다. 간부들이 충성을 맹세할 때에도 건성건성 박수를 치거나 다른 곳을 봤습니다. 머리칼은 흐트러지고, 눈은 초점을 잃고 허공을 맴돌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죠. 그의 모습에서는 결연함이나 아버지를 잃었다는 침통함 같은 건 전혀 안 보였습니다.
그럼 왜 김정은이 다른 생각을 하고, 화가 나고, 무표정하고 그랬을까요? 김정은은 바로 며칠 전에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했습니다. 그를 뒷받침하던 지지대를 잃은 격이고, 또한 유일한 김일성의 적녀(친딸)인 김경희도 아파서인지 주석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의 주변에 앉아 있는 인물들치고 장성택과 연관이 안된 인물이 없을 정도였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김정은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저 간부들이 충성을 맹세하지만 진심일까?' '저 사람들을 내가 믿을 수 있나? 나를 반대하여 궐기하지 않을까?' '북한의 전망은 어떨까? 무너지지 않을까?' 그리고 '너무 힘들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금 김정은의 주변에는 믿을만한 그 누구도 없습니다. 다 아첨꾼이고, 때가 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들뿐입니다. 사실 최룡해가 장성택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을 모르는 북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성우: 주석단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머릿속도 이렇게 복잡했는데, 김정은 본인은 오죽했겠느냐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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