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북 총리는 정책 집행의 오류를 사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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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말에 실시한 화폐개혁의 후폭풍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 ‘김영일 내각 총리가 지난 5일 평양에 있는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반장과 일반 간부들을 모아놓고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한 혼란에 대해 사과했고, 잘못된 조치를 시정하겠다고 밝힌 걸로 10일 알려졌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습니다. 위원님께서는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이 질문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북한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뭔가를 사과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신지요?

고영환

: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창건 이래로 고위 간부가 일반 인민에게 공식 사죄한 건 처음입니다. 이게 5일 있었던 일이었고, 8일에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이 연합 성명을 냈습니다. ‘체제를 뒤흔들려는 불순 세력이 날뛰고 있다’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화폐개혁의 ‘후폭풍’이 북한 전역을 뒤흔들고 있고, 이걸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의미하는 바가 큰데요.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의 실패에 대해서 사과를 한 배경과 목적은 뭐라고 분석하십니까?

고영환

: 북한에서 지난해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후계자로 추천됐고요.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해 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이미 ‘뭔가 계획경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았나’하는 추측이 있었는데요.

11월30일 화폐개혁이 있었고, 12월엔 외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포고령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화폐개혁을 하면서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졌어요. 외화유통이 전면 금지됐고, 북한의 화폐조차 유통이 안 되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엄청난 장애가 조성된 거지요. 예를 들어서, 중국 위안화의 교환 비율이 예전에는 1위안에 북한 돈 5원이었는데, 한 달도 못 되는 사이에 1위안이 50원으로 폭등했거든요. 이렇게 한 달 사이에 10배씩 폭등하는 건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겁니다.

물건이 없어지고, 가장 중요한 식량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니까 단천 같은 곳에서는 돈도 없고 물건도 없으니까 사람이 굶어 죽은 거지요. 그동안 피 흘리는 고생을 하면서 100만 원, 200만 원의 재산을 모은 사람들은 이게 모두 하늘로 사라지는 걸 경험했고, 외화 사용금지 조치로 인해서 외화를 쓰고 있던 간부들까지 타격을 받은 겁니다. 북한 주민 전체가 막 흔들리니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당장은 주민들을 진정시켜야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지난번 방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 재정계획부장인 박남기를 강등시켜서 내보내고, 이번엔 김영일 총리가 ‘잘못했다’고 말한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북한 체제가 자기네의 전반적인 잘못을 인정했다기 보다는 총리가 당의 방침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서, 화폐개혁을 잘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의 경제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시인한 걸로 보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유일영도 체계잖아요. 화폐개혁도 김정일 위원장의 결제를 받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총리가 인민들에게 사과했다는 건 굉장한 의미를 가집니다.

박성우

: 정리를 하자면, ‘정책은 옳은데 집행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사과했다’는 거군요?

고영환

: 네.

박성우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북한 지도부가 앞으로 취하게 될 후속 조치는 어떤 게 있을 걸로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 지금은 북한 인민들이 화가 나 있고, 불만을 표시하고, 사람들이 굶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좀 후퇴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조치들을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종합시장을 다시 열고, 외화 사용을 다시 허락하고, 물건 판매도 일정 정도로 허용하고요. 한 발 더 나가서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은 외국과의 무역을 특별히 강조했어요?. 이걸 보면 아마도 제한된 지역에서, 그러니까 신의주, 나선 특별시, 개성 같은 곳에서 모기장식 개방, 그러니까 철조망을 두른 상태에서 외화를 벌기 위한 개방은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박성우

: 사회주의 경제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일반 인민들의 생활을 좀 더 개선하는 조치를 취할 걸로 보인다는 말씀이군요?

고영환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은 갖고 가되, 농민시장이라는 약간 변형된 틀은 조금 확대해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박성우

: 알겠습니다. 이번엔 주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왕가서 대외연락부장이 지난 주말에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9일 왕가서 부장이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동행했습니다. 눈에 띄었던 점은 북한 외무성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리근 국장과 영어 통역사인 최선희 씨가 이번 북측 대표단에 끼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뭐라고 보십니까?

고영환

: 김계관 부상은 6자회담의 북한 측 대표이고, 리근 국장은 미국 담당입니다. 그리고 최선희는 외무성 번역국의 통역원입니다. 그도 역시 대표단을 계속 쫓아다녔죠. 공교롭게 (왕가서 부장과)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요. 저는 왕가서 부장이 (이들을) 데려온 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이 미리 계획을 짰던 건데, 공교롭게 같은 비행기를 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단이 중국에 간 건, 역시 6자회담의 재개 문제, 평화협정 체결의 문제, 미북 관계개선의 문제 등을 토의하려 한 것이고, 중국 측의 협조를 요청하려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좀 안 좋지요. 위안화의 절상 문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미국 방문, 대만에 미국이 첨단 무기를 파는 문제 등으로 두 나라의 사이가 좀 좋지 않아요. 북한 외교의 특성은 이런 알력 관계를 활용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측의 지원을 받아 미국 측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아요.

북측 대표단은 아마도 미국으로도 갈 겁니다. 미국에서 미국 측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자기네 입장을 개진한 다음, 올봄이 되면 6자회담을 재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박성우

: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최선희는 그냥 통역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도 들립니다?. 어떤 인물입니까?

고영환

: 최선희는 외무성 번역국의 번역원인데요. 아버지가 최영림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책임 서기를 했고, 김 주석이 사망한 다음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을 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8월 평양시당 책임비서를 했죠.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 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선희가 번역원이기는 하지만, 6자회담에 처음부터 쭉 관여하면서 미북 관계에 대한 통역을 해왔기 때문에, 단순히 통역원이라기보다는 회의에 같이 참가해서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이걸 어떤 식으로 영어로 표현할지를 제안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죠.

박성우

: 알겠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북한에서는 화폐개혁의 후폭풍과 관련한 보도가 잇따랐고, 북한도 6자회담과 관련해서 외교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분주한 한 주를 보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 했습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