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한반도] 중, 북한에 충분한 역량 발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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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3일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방중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김 위원장이 공식 집권한 1994년 이후 다섯 번째입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위원님, 먼저 이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어떤 목적이 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방중 목적을 말씀드리기 전에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26일 남한에서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서 정세가 긴장되고 있고요. 그리고 옆 나라인 중국은 상해 엑스포, 그러니까 세계 박람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중국을 방문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러면 왜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릴게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목적은 우선 시기적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 보면 천안함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고요. 또 사고 원인이 발표되기 전에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이것은 결국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외교적인 지지와 이해를 얻어내려는 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 같고요. 또 중국으로서는 상해 엑스포가 열리는 동안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내려는 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는 역시 6자회담과 경제 원조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중국은 지금 6자회담 의장국이거든요. 6자회담을 정상적으로 잘 이끌어 나가야 할 의무를 갖고 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의 핵을 포기시켜야 할 중요한 의무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6자회담이 공전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실험 이후에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상당히 강화됐어요.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서 매년 3천만 달러의 외화가 들어가던 게 중단돼 있고요. 그러니까 경제난도 심해지고 외화난도 심해지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간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서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일본의 니혼TV가 김정일 위원장이 대련을 방문한 모습을 찍었는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왼발을 절고 있고 수행원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거든요. 김정일 위원장이 왜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중국에 가느냐? 그 이유는 역시 북한의 경제 형편이 아주 안 좋다, 급박하다, 그래서 중국에 간 것이고요. 중국은 또 중국대로 북한에 원조를 주면서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언질을 받아내고.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서 이번 중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성우: 김 위원장이 중국을 찾을 때마다 뭔가 특기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 사례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이후에 김 위원장이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게 2000년 5월이었지요?

고영환: 네, 2000년 5월29일부터 31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북경의 실리콘밸리, 그러니까 반도체나 최첨단 전자 기술의 개발 지역인 ‘중관춘’을 참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강택민 주석에게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국력이 많이 증대됐다, 등소평 동지의 개혁개방 정책이 옳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박성우: 두 번째 방문은 바로 한 해 뒤인 2001년이었지요?

고영환: 네, 2001년 1월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그때는 주로 경제 발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해 증권거래소와 정보통신 기업을 둘러봤어요. 그때 같이 동행했던 주룽지 당시 총리에게 “중국이 천지개벽을 이뤘다”고 말했고요. 강택민 당시 주석과의 면담에서는 “중국의 엄청난 변화는 개혁 개방 노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성우: 세 번째 방문은 2004년 4월에 이뤄집니다. 이때는 어떤 특징이 있었습니까?

고영환: 2004년 4월19일부터 21일까지 북경과 천진을 방문했는데요. 이때는 북한으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정세였어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있다’라고 시인했었고,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발표하는 등 북미 관계가 최악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한반도 정세도 긴장되고 있었는데요. 이때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 지도부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6자회담에 적극 참가하겠다’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두 달 후에 6자회담이 정식으로 열렸습니다. 물론 그때 중국은 일정한 정도의 경제 원조를 북한에 줬었지요.

박성우: 김 위원장의 네 번째 중국 방문은 2006년 1월이었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이때는 세 번째 방문 때와 비교할 때 정세가 좀 달라졌지요.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했고,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합의를 담은 2005년 9월19일 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기간은 다른 때보다 좀 깁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상해, 우한, 광저우, 선전 등 주로 경제 개발 지역을 참관했습니다. 방문을 끝내면서 김 위원장은 ‘급속히 변모한 남방 지역 발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박성우: 위원님께서 보시기에는,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걸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고영환: 북중 관계는 상당히 부침을 많이 겪어왔는데요. 좋았다가 나빴다가, 계속 이런 상황을 겪어왔고요. 그때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합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에 이번까지 합치면 모두 5회를 방문하는 게 됩니다.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은 항상 옳았다, 등소평 동지의 정책과 노선은 옳았다, 중국은 천지개벽을 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발전은 나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중국의 마음에 들고 세계인들의 마음에 드는 발언을 합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물론 중국의 지도부까지도 ‘이제는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 개방을 해서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향상시키고, 국방 집중 경제 정책을 돌려세워서 정말 보통 국가들이 하는 정책을 하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졌었거든요.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에 돌아가서는 간부들에게 ‘중국은 수정주의를 하고 있다, 중국은 황색분자들이다, 황색 바람을 우리에게 불어 넣으려고 한다, 우리는 문을 철저히 잠궈야 한다’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항상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에 가서 이야기하는 건 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북한에 돌아와서는 북한식 사회주의, 그러니까 자기네들만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방침을 계속 고수해 왔고, 이것이 4회, 5회에 걸쳐서 계속 중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대련을 방문했습니다. 대련에 가서는 경제기술 개발 지역을 둘러봤고, 건설 중인 제3부두를 시찰했거든요. 이걸 보고 일본이나 일부 외국의 신문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에는 대련 방문을 통해서 개혁 개방을 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보면, 저는 이것은 순전히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원조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가지 여기에 덧붙여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고,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도록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성우: 위원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예전과는 좀 다르게 개혁과 개방의 측면에서 일종의 성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네, 감사합니다.